어느 날 아침이었다. 일찍 눈이 떠졌지만, 이불속에서 한참을 나오지 못했다.
몸이 무겁다기보다, 마음이 망설이고 있는 느낌이었다. 하루를 또 어떻게 견딜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를 피하고 있는 건 아닐까 싶었다.
커피를 내리고, 핸드폰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누군가의 반가운 연락은 없었고, 몇몇 광고 문자만 화면을 채웠다.
창밖으로 햇살이 스며들었다. 그렇게 따뜻한 햇살이었는데도, 마음은 이상하게 싸늘했다.
그 순간, 내담자였던 한 분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분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냥 피하고 싶었어요. 그 상황도, 사람도, 그리고 저 자신도요."
그는 늘 밝고 명랑해 보였지만, 실제로는 관계 안에서 늘 눈치를 보고, 갈등을 피하며 살고 있었다. 어린 시절, 화를 내거나 속상해하는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던 환경 속에서 자란 그는, 언제부턴가 마음을 숨기고 피하는 방식으로 자신을 지켜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스스로를 회피형이라 불렀다.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이건 단순히 '회피'가 아니라, 버티기였구나.
정면으로 맞설 수 없었기에, 멀어지는 방식으로 살아낸 시간이었구나.
그것이 어쩌면 그가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의 말을 듣고 난 후, 나는 내 안에서도 비슷한 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때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음으로써, 때로는 일부러 다른 생각으로 덮어버림으로써, 감정을 느끼지 않는 척, 괜찮은 척 살아왔던 날들이 있었다.
나 역시도, 그것이 유일한 생존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감정은 피한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말해지지 않은 마음은 마음속 어딘가에 남아 자리를 잡고, 어느 날 갑자기 울컥하는 감정의 파도로 되살아나기도 한다.
무언가가 나를 건드리기라도 하면, 그 감정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터져 나온다.
그분은 어느 날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조금씩 말해보고 싶어요. 제가 뭘 느끼고 있는지, 저도 알고 싶고요."
그 말에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회피는 피하고 싶은 마음만이 아니었다.
그건 나를 지키기 위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 선택이, 더 이상 나를 숨기게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살아남기 위해 배웠던 회피가, 이제는 살아가기 위한 '말 걸기'로 바뀔 수 있다면.
그게 회복의 시작이 아닐까.
"상담심리학자로서 수많은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행하며, 그들의 감정과 상처를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슬퍼도 괜찮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수요일에는 미해결 감정이 남긴 흔적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마음속에 고인 슬픔이 어떻게 '이야기되지 못한 이야기'로 남게 되는지, 그 상처의 시간을 어떻게 껴안을 수 있는지를 함께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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