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잘못인 것 같아'는 오래된 주문이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늘 조용한 아이였다.


조용히 눈치를 보고, 조용히 말을 줄이고, 조용히 상처를 삼켰다.


집 안에선 작은 물소리조차 긴장감을 만들었고, 누군가의 한숨이나 문 닫는 소리 하나에도 내 심장은 토끼처럼 쿵쾅였다.


문제가 생기면, 누가 화를 내면, 언제나 내 마음속에 먼저 떠오른 말은


"내가 뭔가 잘못했나 보다."


이 문장은 마치 오래된 주문 같았다. 그 말만 되뇌면 세상이 잠시 조용해질 것 같았다.


나를 지키는 말이면서, 동시에 나를 무너뜨리는 말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선생님이 내 숙제를 분실한 날도 그랬다. 내가 안 냈던 것도 아닌데, 왠지 모르게 얼굴이 화끈거렸고, "죄송해요. 제가 다시 해올게요."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나중에 선생님이 본인 실수였다고 말했지만, 그 순간에도 내 안엔 어떤 속삭임이 들려왔다.


"그래도 네가 뭔가 부족했을 거야."


이 목소리는 자라서도 계속 함께였다.


연인과 다툰 어느 날, 나는 이유도 모른 채 먼저 사과했다.


"내가 예민했나 봐. 미안해."


그 사람은 내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 안에는 이해도, 따뜻함도 없었다.


내 안에 어린 내가 작게 속삭였다. "넌 늘 미안해야 해."


이런 말들을 너무 오래 믿고 살아왔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게.


그런데 상담실에서 내담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말은 내가 만든 게 아니라, 내가 배운 말이었구나."


누군가 나에게, 혹은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네 탓이야"라고 말했기에,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그렇게 믿는 법을 익힌 것이다.


어릴 적, 부모의 말투나 표정, 말하지 않아도 감지되던 기류들 속에서 나는 해석하는 법을 배웠다.


해석은 생존의 기술이었다.


그래서 '내 잘못이야'는 해석이자 방패였다.


하지만 이제 그 방패는 너무 무겁다. 나를 더 이상 지켜주지 못하는 방패. 오히려 내 가슴을 눌러 숨이 막히게 하는 방패.


그 방패를 내려놓는 연습을 나는 지금도 하고 있다. 내담자들과 함께.


그들이 조심스럽게 자기 탓을 멈추는 순간, 그 안에 숨겨졌던 이야기들이 피어난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았던, 당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지 않았던 순간들이 말이 된다.


그리고 그 말들이 숨이 된다.


말을 배워야 숨을 쉴 수 있다는 걸, 나는 상담실에서 배웠다.






"상담심리학자로서 수많은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행하며, 그들의 심리와 감정 흐름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내일 이야기는, 미해결 된 감정과 관계의 균열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삶 속에서 잠시 묻어둔 마음이 어떻게 다시 얼굴을 드러내는지를 함께 나눠보려 합니다.

많이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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