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에, 밤늦게 퇴근하고, 아무도 없는 거실에서 가방을 내려놓을 때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지금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지?"
누가 듣는 것도 아닌데, 입 밖으로 새어 나오는 그 말은 너무 낯설지 않았다.
습관처럼 삼켜온 감정들이 있었다. 화가 나도, 서운해도, 억울해도, 늘 먼저 참는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괜찮아, 그럴 수도 있지."
스스로를 달래는 말이었지만, 사실은 아무도 나의 마음을 물어주지 않는 현실에 익숙해지고 싶었던지도 모른다.
감정이라는 건 나에게 사치였고, 어릴 적부터 익숙한 건 '느끼지 않기'였다.
누구에게 슬프다고 말하면, 괜히 더 민망해졌던 기억도 있다.
"그 정도 가지고 뭘 그래?"라는 반응은 내 감정이 틀린 것처럼 느끼게 만들었다.
그 이후로, 말하는 법을 잃어버렸다.
예전에, 상담을 받던 한 내담자가 조용히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슬퍼도 괜찮다는 말을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어요."
그 말을 듣는데, 어쩌면 나도 같은 말이 필요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은 타인의 반응을 통해 길들여진다.
감정을 꺼냈을 때 누군가가 무시하거나 불편해하면, 그 감정은 마음 깊숙이 숨어버린다.
하지만 감정은 사라지지 않는다.
말해지지 못한 감정들은 몸 어딘가에 남아 뭉치고, 결국엔 무거운 피로감이나 알 수 없는 울컥함으로 되살아난다.
그래서 누군가에게 "슬퍼도 괜찮아"라는 말은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감정을 존재하게 해주는 선언 같은 것이다.
그 말을 처음 들은 날, 울어버린 사람도 있다.
그동안 감정에 이름을 붙이지 못하고 살았다는 걸 그제야 깨달았던 거다.
누군가 내 감정을 이해해 주는 단 하나의 말, "그래도 괜찮아"가 마음의 벽을 녹이는 데는 충분했다.
"감정을 말해도 되는 사람이 있다는 건, 마음이 다시 살아난다는 뜻입니다."
"상담심리학자로서 수많은 내담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동행하며, 그들의 감정을 상징적으로 재구성한 가상의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감정을 꺼낸다는 건, 다시 살아보겠다는 조용한 선언일지도 모릅니다."
"내일은 '감정이 지나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을까'란 제목으로 이야기 나누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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