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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귀자씨 Jan 04. 2020

입을 좀 더 닫아야겠다

몇 달 전 퇴사한 선배 A와 최근 점심을 먹었다. 밤낮으로 술을 찾던 사람이 어쩐 일로 조용히 밥만 먹어 의아했다. “언론사도 아닌데, 낮에 술 마시기가 좀 그래.” 선배는 새로 합류한 스타트업에 폐를 끼칠 수 없다고 했다. “술이 그리워 돌아오시는 거 아녜요?” 실실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야 근데 난 이제 돈을 벌고 싶다.”


금주 중이라는 말보다 돈이 필요하다는 말이 백배 낯설게 다가왔다. 부자될 거면 이 일 왜 하니, 류의 멘트를 입이 닳도록 반복하던 사람으로 기억해서다. 죽을 때까지 그놈의 ‘기자 정신’ 설파할 것처럼 비장하게 살더니 의외로 싱겁게 태도를 바꿨다. 처지에 따라 가치관도 변할 수 있는 인간이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 삶 전체를 통달한 듯 전하는 철학은 역시 경계할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로 돌아오는 길에 몇몇 인연이 더 떠올랐다. 첫 직장에서 만난 선배 B는 틈만 나면 전문기자가 되라고 당부했다. “사회부 20년 한다고 경찰 시켜주니?” 그의 단골 멘트였다. 몸소 과학전문기자의 커리어를 차곡차곡 쌓아가는 듯했던 그는 어느 날 갑자기 사표를 내고 애견카페 사장님이 됐다.


두 번째 직장에서 만난 첫 팀장 C는 우리 팀을 해당 취재 영역의 드림팀으로 만들어보자며 다양한 청사진을 제시했다. 실력과 의리를 두루 갖춘 팀장의 지치지 않는 열정에 홀딱 반해 충성을 다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C는 나를 미국으로 출장 보내놓고 다른 신문사로 이직했다.


지금의 나라면 “헐 뭐야” 정도 내뱉고 넘어갔을 일들인데 그때의 나는 매번 큰 충격에 빠졌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한 내게 가르침을 주는 선배라면 응당 이래야 한다는 일종의 고정관념이 있던 모양이다. 왜 내 앞에서 진리인 양 떠들던 대로 살지 않는지, 왜 내게 같이 해내자고 약속해놓고 도둑처럼 도망가는지, 그때는 전혀 이해되지 않아 여기저기 내가 느낀 실망감을 쏟아내고 다녔다.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별것도 아닌 일들이었다. 당시 선배들은 각자의 위치와 역할에 충실했을 뿐이다. 숱한 약속의 문장이 영원할 거라 맹신한 건 순진했던 나 하나다. 이제는 좀 알 것 같다. 내게 조언하는 사람도 실은 자기 인생 어찌 될지 모르는, 나처럼 후회와 시행착오에 더 익숙한 사람이라는 걸. 어떤 후배는 요즘의 나를 보면서 과거의 나와 똑같은 감정을 내게 느끼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여기까지 적고 보니 신년 목표가 자연스레 정해진다. 2020년에는 말을 줄여야겠다. 난 맨정신에도 술김에도 말이 많은 편이다. 주워 담지 못할 잘난 체와 오지랖, 어설픈 훈계가 그간 얼마나 많은 사람의 귀에 꽂혀 나를 판단하는 도구로 변질했을까. 선배들에게서 느낀 감정을 내게 적용하고 보니, 등골이 오싹해진다. 입을 닫고 귀를 열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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