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3일 화요일
회사 동기와 점심식사를 했다. 그녀는 내게 최근 회사 내부에서 벌어진 이런저런 소식을 전달했다. 파견 오면서 사내 복도통신과 단절된 나로선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았다. 동시에 모처럼 피로감도 느꼈다. 사내 복도통신에는 전달자의 주관이 녹아들기 마련이어서다. 가령 동기가 A라는 회사 사람에 대한 일을 들려준다면, 담백하게 팩트만 전달하는 게 아니다. “그때 그 일 알지? A가 그래서 그런 게 아닐까?“ 등으로 전달자는 자신의 사고 안에서 흩어진 퍼즐 조각을 그럴듯하게 맞추고, A라는 인물을 재정의한다.
동기가 경망스럽거나 험담을 즐기는 사람은 아니다. 편한 동기를 오랜만에 만나 반가운 마음을 쏟아냈을 뿐이다. 어쨌든 나로선 전달자의 해석이 가미된 이야기들이 내가 원래 알던 것들과 충돌을 일으키게 된다. 내 머릿속에 저장된 A라는 인물과 동기가 전한 A가 전혀 다를 때, 난 본능적으로 어느 선까지 곧이곧대로 듣고 어디서부터 걸러내야 할지 계산하게 된다. 흥미로운 동시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유다.
동기와 헤어진 후 친하게 지내는 회사 후배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동기에게 들은 소식을 넌지시 묻자 후배는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놨다. 같은 이슈인데 그걸 받아들이는 방식은 180도 달랐다. 당연히 A에 대한 평가도 동기와 달랐다. 동기와 후배 중 누가 맞고 누가 틀리다를 따질 건 아니다. 그저 난 오늘도 깨달을 뿐이다. 말은 역시 줄이는 게 안전하다, 다른 사람에 대한 다른 사람의 판단은 참고만 하면 된다, 남 이야긴 하지 말자.
(2일 일기를 쓴 후 실수로 3일을 건너뛰고 4일 일기부터 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늦게나마 3일의 흔적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