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연속 다운펌 속사정

2026년 2월 8일 일요일

by 전귀자씨

부모께서 풍성한 머리숱과 직모를 물려주신 덕에 미용실에 돈 쓸 일이 많다. 다운펌은 기본이다. 다만 미용실에 갈 때마다 펌약을 발라대면 두피가 견디지 못할 것 같아 다운펌은 두 번에 한 번씩 한다. 저번에 다운펌을 했다면 이번엔 그냥 한 번 다듬는 식이다.


늦은 오후에 미용실을 방문했다. 순서상 가볍게 다듬을 차례다. 3주 전 다운펌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은 또 펌을 예약했다. 나의 힘찬 직모들이 불과 3주 만에 펌약의 통제에서 벗어서 하늘로 치솟기 시작한 탓이다. 담당 디자이너는 3주 만에 원상 복구돼 나타난 날 보고는 당황했다. “그때 분명 세게 눌렀는데…”


사실 펌이 평소보다 빨리 풀린 이유가 있었다. 3주 전 펌이 끝난 후 처음 보는 남성 어시스트가 샴푸실로 날 안내했다. 보통 다운펌을 하면 눌러놓은 머리카락이 뜨지 않도록 눌린 결을 따라 샴푸를 가볍게 한다. 그런데 이분은 엄청난 쉐이킹 스킬로 내 두피를 마구 마사지하며 머리를 감겨줬다. 저 처음 보시죠, 온 지 얼마 안 됐어요, 시계 이쁘네요, 제가 회사 다니다가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미용일 시작했어요. 늦깎이 신입생은 샴푸 내내 상냥한 말투로 대화를 시도했다.


난 속으로 이러면 펌 다 풀리는 것 아닌가 생각하면서도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이런 상황에 컴플레인을 잘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고, 직장 다니다 꿈을 찾아왔다는 이 친구의 노력을 그 순간만큼은 존중해주고 싶기도 했다. 우려대로 미용실 다녀온 날부터 머리카락들은 붕 뜨기 시작했고, 결국 난 3주 만에 다시 펌을 예약했다.


당황하며 내 헤어 상태를 이리저리 살피는 디자이너에게 슬쩍 ”그분 안 보이네요. 회사 다니다가 오셨다는 분“ 질문을 던졌다. “아, 그분 이제 안 나와요. 저희랑 잘 안 맞더라고요. 컴플레인도 좀 들어왔고요.” 디자이너가 답했다.


그때 나도 그냥 디자이너에게 말하는 게 나았을까, 나라도 컴플레인을 참은 게 잘한 걸까. 미용실을 나오며 잠시 생각해 봤다. 늦깎이 드리머의 꿈이 부디 꺾이지 않았길 바란다. 이까짓 다운펌 또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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