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못할 밸런타인데이

2026년 2월 14일 토요일

by 전귀자씨

초등학교 6학년 때 ‘아기와 나’라는 일본 만화책을 좋아했다. 한 남성이 홀로 형제를 키우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만화인데, 한국어 번역판에서 형제 이름이 진이(형)와 신이(동생)였다. 초등학교 고학년 또는 중학생 정도로 보이는 형 진이는 매우 잘 생겼고,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동생 신이는 귀여운 아기였다.


오래전에 본 거라 희미하지만, 밸런타인데이에 형 진이가 학교에서 초콜릿을 왕창 받아오는 에피소드를 가장 재밌게 본 기억이 난다. 많은 여학생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형 진이에게 초콜릿을 주는 장면을 보면서 만화인데도 부러움을 느꼈다. 단순히 많이 받아 부러웠다기보다는, 뭐랄까 진이가 별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데도 이성 친구들이 몰려드는 설정이 당시 사춘기로 접어들던 내게 강렬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그때부터 마흔을 넘긴 지금까지 ‘밸런타인데이’ 하면 자동으로 내 머릿속에선 아기와 나가 떠오른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아침에 달력을 보면서, 밀려드는 초콜릿더미에 허우적대던 잘생긴 진이를 자동으로 떠올렸다.


평소 와이프와 난 “밸런타인데이나 화이트데이 같은 건 챙기지 말고 서로 생일이나 신경 쓰자”라고 대화해 왔다. 다만 와이프는 그럼에도 작년까지는 가나초콜릿 하나라도 사줘 날 ‘진이 부럽지 않게’ 만들어주곤 했다. 나 역시 그 보답으로 3월 14일엔 아내에게 캔디류를 선물해 왔다. 부부끼리 소소한 재미로 말이다.


그런데 오늘, 2026년 밸런타인데이는 연애 시절부터 통틀어 처음으로, 아내가 내게 아무것도 주지 않고 조용히 지나갔다. 아내는 오늘이 며칠인지 자체를 잊은 듯했다. 서운하다기보다는 뭔가 이렇게 시간이 흘러가는 건가~ 우리도 이렇게 늙어가는 건가~ 싶었다.


진이야… 난 올해 못 받았어… 한 달 후엔 어찌해야 할까… 정답을 알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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