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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집 둘째 딸

서른이 훅 넘은 나이, 상처는 남아있다.

by 그집 둘째딸

내 상처가 전달이 되었을까.

온전히 전달되지 못했을 거다. 상처 받은 이의 고통을 전부 헤아릴 수 있는 가해자는 이 세상에 없으니까. 그 가해자가 잘못을 깨닫고 죄를 뉘우친다 해도 그 전부를 알 수는 없다.


곪아 터지고 시간이 지나 단단한 굳은살로 변해있던 상처가 너무나도 예상하지 못한 평일 저녁 식사 자리에서 터졌다.

아빠가 하는 말에는 늘 반감을 가지고 반응하는 내게 평소보다 예민하게 받아들인 아빠는 내 뺨을 내리쳤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맞은 날이다. 아빠는 자식을 직접 때린 적은 없었다. 대신 울고 있는 자식들 앞에서 엄마를 때리고 물건을 부수고 노모에게 소리쳤다.

등짝으로 전해지는 나이 든 어머니의 매가리 없는 손짓에 마음이 아팠다던 어느 광고 카피가 하필 이 순간에 떠올랐다. 두대나 맞았지만 뺨은 그리 아프지 않았고 광고 카피와는 다르게 나이 든 아빠에 대한 슬픔 또한 들지 않았다. 그냥 반백 발에 자기 분에 못 이겨 부들부들 떨며 화를 내고 있는 아빠가 어린아이 같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오늘 이 순간이 내가 살면서 가장 기다렸던 순간이었던 거 같기도 하다.


나약하고 사회생활에 경험이 많이 없었던 그는 생전 안 하던 고된 일을 시작하면서 그 고됨을 술에 기대었다. 그 대가는 고스란히 나머지 가족들이 받아야 했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20대 중반까지 꽤 오랜 시간이었던 거 같다. 집기들을 부수고, 엄마를 때리고, 노모에게 고함을 치던 매일은 생각보다 나에게 깊은 생채기를 내었고 그 상처와 함께 자란 나는 아버지라는 존재를 절때 받아들일 수 없게 만들었다. 그가 늙어 가는 동안 내 상처를 고스란히 돌려주겠다고 다짐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안타깝게도 정말로 그렇게 자라 상처투성이인 어른이 되었다.


왜 항상 본인의 말에 예의 없게 반응하냐는 아빠의 말에 콧웃음이 났다. 내 반응에 이성을 잃었는지 냅다 따귀를 치는 아빠를 보며 나이가 들면 다시 아이가 된다더니 이렇게 감정적으로 사람이 변하는가 싶었다. 그 순간에도 여러 생각이 들었다. 이때다 하며 들이받을지, 저 쇠뿔 고집쟁이 늙은이가 내 말을 알아나 듣기나 할지. 알아들을까? 하면서 평소에 본 당신에 대한 내 태도는 모두 당신 탓이라고 일러주었다. 이유를 묻길래 이 와중에 가는귀가 멀어가는 그를 생각해 또박또박 큰 소리로 차근차근 말했다. 어린 내가 받았던 상처를 하나하나 말하며 중간중간 겪해지는 감정에 눈물, 콧물도 보였지만 나도 나이가 들었는지 20대 때 이 순간을 상상했던 것처럼 아주 요란하지는 않았다. 20대 때 이 순간을 만났다면 난 아마 아빠에게 나보다 더 큰 상처를 남기기 위해 핏대를 세워가며 발악을 했을 거다. 이런 상황이 오면 하려 했던 말들의 반도 하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선을 넘는 상황을 만들지 않게 되어 오히려 잘됐다 싶다.


지난 시대의 그 여느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집을 위해 돈만 벌고 자식에게 무관심했던 그는 내 상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다. 그 사실이 더 화가 나거나 충격적이지는 않았다. 예상했었으니까.


서른이 훨씬 넘어서야 어린 시절 내 아픔을, 직접 제공한 아빠에게 일일이 알려주었다.

술에 취해 폭력을 행했던 그 날들이 실제로 물리적인 상처를 입은 가족들보다 더 크게 나의 마음에 남았고 나는 그로 인해 당신을 마주하는 것도 어려운 딸이 되었다고. 취해있던 지난 과거를 전혀 기억하지 못하는 당신에게 내가 어떤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었는지 말해주었다.


술 취한 아들이 깨어나기 전 무기가 될만한 물건들을 숨기는 할머니의 모습.

부인의 어머니라 할지언정 인격모독에 가까운 쌍스러운 말로 내뱉는 욕지거리.

그런 그를 감 싸도는 혈육들.

주정뱅이 아래에서 자란 덕에 바닥난 자존감으로 커가며 느꼈던 고통과 가족이란 것에 대한 혐오, 그로 인한 결혼과 육아에 대한 거부감까지.

당신으로 인해 내가 이렇게 컸노라 말해주었다.


나는 아버지라는 사람을 싫어하게 되었다. 내가 딸이라는 사실조차 받아들이기 싫을 만큼 아버지가 미웠다. 내가 살아온 인생의 반을 매일 증오하며 살다 보니 그냥 이유를 불문하고 아버지와 관련된 모든 것에 날이서고 거친 사람이 되었다. 평생을 나를 키워준 감사한 할머니는 그저 큰아들밖에 모르는, 그가 무얼 하든 감싸기 바빴던 구시대의 아들바보가 되었고, 내게 꼬까옷을 챙겨주던 정든 고모는 지금은 하나뿐인 자신의 오빠에게 잘하라며 오지랖 떠는 친척일 뿐이다.


서른이 넘어가고 고된 삶을 살기에는 아빠는 너무 나약한 인간이었다는 사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과정에 많은 상처가 있었지만 어찌 되었든 자식을 위해 겪었을 노고에 감사하며 행복하게 지내보기 위해 나름 애썼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 상처가 없어지진 않는다.

어느 집이든 가정사는 있다. 유난 떠냐고 말하면 할 말이 없지만 다르게 말하면 나처럼 상처를 가지고 성장해버린 가족 구성원 또한 어느 집이든 존재한다. 그저 스스로의 노력으로 상처를 무시하고 기억을 꺼내지 않을 뿐이다.


오늘 아빠의 감정이 어땠을지 나는 모른다.

생전 해본 적 없는 손지검을 나에게 하고 본인도 놀란 모습이었고, 갑작스럽게 줄줄 쏟아내는 지난날의 내 상처와 본인을 향한 원망에 많이 놀랐을 것이다. 깊은 속은 어땠을까. 골이 깊게 파인 채 커버린 나는 그 깊은 속은 그다지 궁금하지 않다.


그리고 오늘 나의 감정 또한 잘 모르겠다.

서른이 훌쩍 넘은 딸에게 지난날에 대해 사과를 하는 아빠의 모습에 큰 감정이 들지 않는 내 모습이 조금 착잡했다. 나는 아빠에게 고맙지도 후련하지도 않았다.


상처를 안고 커버린 어른은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들뿐이다. 상처를 밟고 뿌리내린 채 성장한 사람은 그 아픈 과거를 후벼 파도 그 힘듬이 크지 않는 거 같다. 하지만 아프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익숙함에 크게 요동치지 않을 뿐이지.







시간이 길든 짧든, 정도가 약하든 심하든 가정폭력은 가족 구성원에게 너무나도 큰 상처가 된다. 시간이 지나 모두가 나이가 들면 상처 받은 이가 상처를 준 이들을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이해하고 묻어가며 상처를 잊어간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처 받은 이들의 노력으로 암묵적인 행복을 되찾는 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의 가정폭력은 상처뿐만 아니라 자식의 성격이나 성향, 가치관에 너무나 많은 영향을 준다. 개인적인 경험으로 인간관계나 가족관에 있어 많은 영향을 줄 수 있다. 하지만 이건 무조건 악영향이라고 할 수는 없다. 내가 이런 사람으로 컸어요 라고 해서 악인이 되거나 사회생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니까. 하지만 겪어보니 조금 더 밝고, 조금 더 살갑고, 조금 더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있었을까 하는 아쉬움이 생겼다.


과거에 나와 같은 환경으로 인해 지금 비슷한 고민과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 글을 본다면 그냥 말해주고 싶다.


나와 같은 이는 또 있다. 그리고 그 사람도 그냥 이렇게 살아간다. 상처는 사라지지 않고 아픔도 그대로이다. 하지만 어느 날이 되면 그 상처에서 벗어나 또 다른 행복을 찾기 위해 애쓰며 살게 된다고. 그냥 그렇게 잘 살게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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