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세월을 다 살아야 이해할 수 있는 일.
이제는 익숙하다 하면서도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 엄마의 건망증은 이제는 밥을 떠먹으려면 숟가락을 들어야하듯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다.
겨울 가족여행을 떠나기 위해 이것저것 결제하다 보니 지난봄 가족여행 준비 때 엄마의 건망증 때문에 짜증이 확 올라왔던 기억이 났다. 무언가를 결제하려고 하는데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기억하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일이 일상이 되다 보니 요즘은 우연히라도 한 번에 기억을 해내면 이게 무슨 일이냐며 박수를 칠 판이다. 스스로 만든 아이디, 비밀번호, 해야 할 일은 그저 생겨나는 순간 존재할 뿐 그때가 지나면 사라진다. 다시금 얘기하면 알아채곤 하지만 종종 토시의 비슷한 숫자나 글자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를 보면 이제는 그러려니 하면서도 몇 해가 더 지났을 때의 그녀가 걱정되기도 한다.
조금 더 젊었던 어린 시절 나의 엄마는 원래부터 꼼꼼함과는 거리가 좀 있는 편이었고(라고 생각해왔는데 정작 엄마 스스로는 본인이 상당히 꼼꼼한 편이라고 오늘도 말했다.) 그 당시에도 많은 것을 깜빡깜빡했던 거 같다. 60이 훌쩍 넘어버린 그녀는 이제는 다시 한번 말을 해주지 않으면 웬만한 요청사항은 기억을 하지 못한다. 사는데 문제가 있을 만큼은 아니어도 아마도 곧 그런 날이 올 것이다.
더 어려서는 한창 컴퓨터를 배워보겠다며 공부를 하셨을 때 매번 사이트마다 비밀번호를 다르게 만들고 그 비밀번호를 모조리 잊어버리는 엄마를 보면 속이 터졌다.
이제는 생활화된 엄마의 건망증이 훗날에 대한 걱정이 포함된 짜증으로 올라올 때가 있다. 이러니 저러니 젊은 딸은 이해하기는커녕 결국은 짜증이다. 엄마의 세월만큼 삶이 지나간 후에나 지금의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결국 그날 급하게 비행기표를 끊으려 카드번호를 입력하고 비밀번호를 닦달하다 결국 그나마 저렴했던 티켓을 놓쳤다. 몇만 원이 대수겠냐만은 오래간만에 훅 올라오는 짜증에 비밀번호 찾던 중에 좋은 티켓이 다 날아갔다며 타자를 꾹꾹 쳐서 일부러 카톡을 보냈다. 내 심기를 전하고 싶어서였다(신경이나 쓰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시간이 지나면 이 건망증이 병적으로 더 심해질지 모른다. 아직 하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너무 많은, 이제야 여유를 찾은 그녀가 지금부터라도 많은 경험과 기억을 가지고 남은 생을 살아가길 바라기에 이 건망증이 두렵고 걱정되고 싫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이 걱정과 두려움을 스스로 다독이지 못하고 짜증으로 뱉어버리고 후회를 반복하기 일수다.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좋게 좋게 생각하고 말씀드려야지.'라는 생각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아마도 나는 지금처럼 투박하게 엄마를 걱정할 것 같다. 앞으로도 긴 시간 동안 같은 말과 행동으로 엄마의 사라지는 시간 쪼가리를 걱정하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