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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했다

비혼 주의자는 아니지만 나에게는 너무 아이러니한 '결혼'을

by 그집 둘째딸

비혼 주의자는 아니었지만 딱히 결혼에 관심이 없던 내가 서른 중반을 넘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결혼을 했다. 요즘 결혼 적령기라는 말이 무색하게 다양한 나이대에 결혼을 하지만 내 주변 지인들은 뭔가 정해진 순리를 따르듯 적정하다 싶은 나이대에 결혼을 했고 내가 거의 마지막 순서로 유부녀 대열에 들어섰다.


안타깝게도 내가 결혼에 관심이 없던 이유를 말하자면 행복해 보이지 않아서였다. 우리 부모님도, 결혼을 한 언니도, 가족이나 다름없는 내 베스트 프렌드들도 결혼 후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다. 그들은 늘 행복하다고 하면서 불행한 매일을 불평했다. 입력값이 혼란스러워 헷갈리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하지 않는 게 나은가 하는 아웃풋이 지배적이었던 게 사실이다. 싱글 시절의 나는 행복과 불행이 동시에 생기는 게 결혼이라면 지금은 불행이라 할 것 없이 잔잔하게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으니 현상태를 유지하는 게 훨씬 나을 꺼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결혼을 했고, 솔직히 말하자면 싱글 때와 크게 다른 게 없다. 다만 뭔가 할 일이 더 많아지고 신경 쓸 것이 더 많아졌다. 이 때문인지 먼저 결혼한 기혼자들이 불행을 토해내듯 떠든 후 '그래도 좋아. 행복해'라고 마무리를 짓는 것인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결혼을 하니 언제든 함께할 수 있는, 평생을 내편에 서줄 든든한 나의 편이 생겼다(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남의 편이 된다 하더라). 하지만 신경 쓰고 적응해야 하는 또 하나의 가족이 생겼고 30여 년을 다르게 살아온 내편과 매일 작은 트러블도 해결해나가야 했다.


결혼한 지 9개월 차가 되었다.

이래서 기혼자들이 행복한데 안 행복하다고 하는 거였나?

이래서 기혼자들은 처음에는 '하지 마'라고 단호히 말하다가도 '그래도 한 번쯤은 해볼 만해'라고 하나?

가득 쌓인 집안일을 해야 할 때나 너무 피곤한 상태로 시댁 행사에 참여해야 할 때면 너무나도 아이러니한 그 말들이 조금씩 이해해가는 요즘이다.


하지만 기혼자들이 내게 말했던 결혼의 부정적인 면을 알아가면서도 그들이 여전히 꽁냥꽁냥 잘 붙어사는 이유 또한 조금씩 깨달아 가는 중이다.


언제나 그렇듯 크게 동요하지 않고 무던히 결혼생활에 적응해가고 있다. 부대끼고 깔깔거리고 불같이 화도 내었다가 곧 웃어넘기고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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