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새

#01

by WOOJ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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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아들아, 나는 죽으면 훨훨 날아다니는 새가 되고 싶다. 끝도 없이 높이 날아, 한평생 설움을 그 높이에서 모두 떨어뜨려버리고 유유히 바람을 맞으며 온 세상을 구경하고 싶구나. 유골은 강이나 바다에 바람 많은 곳이면 훨훨 뿌리기에 좋을 것 같구나.’


시원함이 유난한 아침에 바라본 하늘이 너무나 곱게 푸르다. 하늘과 맞닿은 높은 구름 아래 군데군데 솜사탕 모을 때 나부끼는 모양의 몇몇 구름이 아주 가깝게 보이는 것이 특이하지만 아름답다. 며칠 새 간간이 내린 비 때문인지 푸른 하늘과 구름이 선명하고 눈부시다. 평년보다 다소 빠른 추석이 다가오는 9월이어서 그럴까 살아오면서 가을장마는 아마 처음인 것 같다.


나도 어린 시절 맑은 눈망울로 푸른 하늘을 자주 바라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런 눈망울로 아버지, 어머니를 바라보며 살고 싶었던 것 같다. 어느 누가 고통과 절망이 부모로부터 시작될 것이라 생각하고 태어나는 이는 없다. 자연의 섭리처럼 아니 본능에만 충실하여도 나는 그렇게 할 순 없다고 느꼈다. 부모가 나에게 심어준 기억들을 아들에게 들려준다면 그토록 너에게 헌신한 나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알아주었으면 한다. 너 또한 너의 자식에게 분에 넘치는 사랑을 주길 바란다.

내 이름은 이두남이다. 전주 이 가에 두(斗), 남(南)이다. 이름을 개떡 같이 지어 이름대로 대했는지 모르겠다. 1947년생으로 호적 신고가 되어 있지만 실제 내 나이인지는 아직도 확실치가 않다. 본 기억은 없지만 할아버지가 하나뿐이 아버지에게 유복하게 지낼 수 있는 재산을 물려준 것이 더욱더 나에게 불행을 초래하게 만들었다. 일이라고는 할 줄 모르는 아버지는 경상도 어느 곳 태생인 엄마를 만나 나와 오빠, 그리고 남동생 세 명을 출산했다. 이제는 희미한 기억마저도 남아 있지 않은 오빠와 동생은 안타깝게도 홍역에 걸려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공교롭지 않았던 그 시절에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두 아들의 원망이 엄마와 나에게 자연스레 향했던 불행한 아버지.


아들을 가지기 위해 지나친 외도를 일삼아 광주 읍내에 소문난 바람둥이로 탈바꿈하면서 할아버지의 재산은 첩이 생길 때마다 입에 들어가는 음식처럼 사라져 갔다. 당연히 설움으로 연명하던 엄마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지만 나를 두고 집을 나갔다. ‘미안해, 잘 살아라.’ 잊히지 않는 엄마의 음성이었다. 그때 내 나이 여덟 살. 어쩌면 열 살 때였을 수도 있겠다. 엄마의 설움은 더욱더 큰 서러움으로 나에게 전달되었다. 지금에서 엄마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는 하지만 하나뿐인 나를 두고 혼자 집을 나간 것은 용서가 되지 않는다. 나를 데리고 갔었더라면 하는 바람의 생각이 살면서 여러 번 가졌기에, 내 인생이 어떻게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기에 절대 관용을 베풀 수가 없다. 무서운 기억들 중의 하나이다.


아버지가 한창 번갈아 가며 여러 여자들을 집으로 들일 때면 구박과 멸시, 설움도 점점 가중되었다. 호적 나이로 열 살도 되기 전부터 그 어린 손으로 집안일을 하며 견뎌내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아버지와 왜 이런 대우를 받아야 하는지 스스로에게 묻지 못하는 내가 과연 한 집 아래 구성원으로 얼마나 버틸 수가 있을까? 힘들었다. 어디로든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나뿐인 아버지이지만 그때는 벗어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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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가 많지 않던 시절. 허름하기 짝이 없는 광주터미널 한구석에서 겨우 여비가 될 돈과 옷 몇 가지를 넣은 보따리를 붙잡고 쪼그려 있는 눈망울은 주위 경계에 긴장을 놓지 못했다. 여기저기 배회하는 비렁뱅이들이 겁이 난다. 몇 번씩 나를 흘겨보는 그들의 눈과 마주칠까 나는 잽싸게 땅으로 시선을 향한다. 대합실의 시계는 아마 오전 11시쯤에 다다르는 것 같아 나무 벤치에 앉아 졸음에 막 깨는 아주머니에게 시간을 물어본다. 내 예상이 맞았는데 아직 1시간을 더 기다려야 한다.


대구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새벽 일찍 아침밥을 지어 3개의 주먹밥을 마련했다. 물을 길어 가는 시늉을 하며 빈 물통에 보따리를 나지막하게 눌러 담고 집을 나섰다. 막 해가 뜨려던 참이니 터미널까지는 4시간가량 쉼 없이 걸어 도착했던 것 같다. 아버지에게 반항이라도 하듯 마을 어귀에 이르러 물지게를 언덕 아래로 망설임 없이 던져버리고, 동네 사람 눈에 띌까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졸이며 냅다 달렸다. 아버지에 잡힐까 하는 두려움, 해방감, 혼자가 된 불안감, 앞으로의 걱정이 달리는 순간 눈물로 확 쏟아졌다. 엉엉 소리 내며 울었던 게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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