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면 된다는 말의 진짜 의미
죽어라 연습에 매달린 어느 날, 다리가 너무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글쎄, 실금이 간 것 같다고 했다. 엑스레이에는 안 나온다고 MRI를 찍어보라고. 병원 가서 찍고 왔더니, 의사선생님이 대뜸 이랬다.
"당신 대체 뭐 하는 사람이에요? 직업이 뭡니까?"
"저는 그냥... 춤을 추는데요?"
그러고 말았다. 의사 쌤은 내 얼굴을 빤히 보면서.
"이건 국가대표 선수들이나, 발레리나들에게서나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직업이 뭡니까?"
다시 묻길래, 어쩔 수 없이 실토했다.
"아이돌 연습생인데, 이제 데뷔가 코앞이에요. 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내 말이 끝나자마자 칼같이 돌아오는 답변.
"한 달 동안 누워만 있어요. 절대로 움직이지 마세요."
"안돼요!!!"
의사 쌤의 목소리가 한 톤 더 낮아졌다.
"계속 돌아다니다가 양쪽 다리 다 똑 부러지고 싶어요? 똥오줌 받아내고 싶지 않으면, 내가 하란 대로 해요."
"안돼요!!!!!!!!!"
그 순간, 그동안 힘들어도 한 번도 울지 않았던 눈물이 의사 앞에서 절규처럼 터져 나왔다.
"선생님, 제가 빠지면 바로 다른 사람으로 교체될 거예요! 저 좀 살려주세요! 제 인생이 걸린 일이라고요!"
결국 한 달 내내 꼼짝 말고 누워만 있으라는 얘기만 들었다. 눈앞이 캄캄했다. 스무 살 인생에 그렇게 열심히 끝까지 매달려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기에. 6개월 동안 이틀에 한 번씩 겨우 눈 붙이며 밤샘 연습을 하고, 토가 나올 때까지 춤만 췄으니.
그때 딱 결심했다.
'내 다리가 부러지는 건 지금 일어난 일이 아니다.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거야!'
매일 아픈 다리를 부여잡고, 데뷔를 앞둔 사장님에게는 "네! 괜찮아요! ^^" 활짝 웃어 보이면서, 높은 힐 신고 무대 연습을 했다. 혹시 춤추다가 힐이 벗겨질까 봐, 노란 고무줄로 내 발과 구두를 몇 번이고 꽁꽁 묶고. 피가 당연히 안 통했겠다.
밤마다 다리의 고통이 너무 심해서 이런 생각만 했다.
'제발 내일 아침 눈이 안 떠지게 해주세요.'
'내 다리의 고통이 사라지게 망치로 때려주세요.'
"연아, 다리는 좀 어떠니?"
"네! 괜찮아요! ^^"
기획사 사장님의 물음에 밝게 대답하며, 지방 행사를 뛰고 무대 위에 섰다. 밤에 집에 와서는 나쁜 생각에 빠져 하루하루를 버텼다.
'내일 눈뜨기 싫다... 내일 눈뜨기 싫다......'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지만, 나에게는 '멤버들'이 있었다.
우리는 남자 2여자 2 혼성 댄스그룹이었다. 남자들은 3년 4년 계속 연습을 했고 지방 청주에서, 또한 명은 부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가수가 되겠다는 일념 하에 죽도록 노력하였고, 여자 1명은 친구 따라 지방에서 올라와서 앞만 보고 연습 중이었다. 마지막 멤버만 기다리던 상황이었다. 그 마지막 멤버가 바로 나였다.
드디어 뮤직비디오를 찍고, 첫 방송도 잡히고, 행사까지 잡히면서 '진짜 가수가 됐구나' 싶었다. 그런데 그때, 사장님이 갑자기 잠수를 타는 등 뭔가 안 좋은 일들이 마구 벌어지기 시작했다. 뮤직비디오를 찍었던 PD님이 너무 안타까운 나머지 우리를 직접 키워보려 할 정도였다.
하지만 회사에서는 뭔가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계속 터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리 같은 애들은 감당할 수 없는, '어른들의 돈 문제'였던 것 같다.
결국, 원래 꿈이 가수가 아니었던 나는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그런데도 1년 내내 끊임없이 연락이 왔다. 연예계 쪽 사람들과 인연을 완전히 끊어내려고 연락처까지 바꿨는데도 잘 안 되었다. 그때는 내 인생이 그쪽이랑 질긴 인연이 있었나보다.
인생을 살면서 이때 '하면 된다'는 말의 진짜 의미를 깨달았다. 내 앞에 닥친 일들을 머리 싸매고 고민하는 게 아니라, '생각 없이' 그냥 해내는 것.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게 정답인 것 같다. 사실 그때 내가 포기했다면 멤버들이 고생했을 거고, 노래도 못 부르던 내가 음역대까지 넓힐 수 있었을까? 이틀에 한 번 자며 댄스 연습을 한 게 아니었더라면.
'하루하루 숨이 턱 막힌다 해도, 이거라도 안 하면 나의 기회는 다신 오지 않을 수 있다.'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힘들면서도 즐거웠던 시절은 아직까지도 나에게 이때의 추억이다. 내일 눈뜨고 싶지 않았던, 너무나도 치열하고 열심히 살았던, 대충하고 싶어도 대충이라는 건 절대 할 수 없었던 그때.
결국, 내 다리는 어떻게 됐냐고? 딱! 하고 부러지진 않았지만, 그 후로 4년 정도는 정말 고생 많이 했다. 쭈그려 앉지도 못할 만큼. 아직도 비가 오면 쑤신다. 하지만 뭐, 그 덕에 앉아서 할 수 있는 일이면 감사하다. 연예인 못지 않게 버라이어티한 직업도 거쳐왔다. '만렙 치킨집 사장님 와이프', '미소 장착 임원 비서', '광고회사 대표 직원으로 방송 출연' 등등. 캬, 인생 참 아이러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