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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해도 괜찮았다

나름 굴곡진 삶의 소소한 실패담

by 범부범범 Nov 30. 2021
제 삶의 방향이 어디로 갈지 전혀 가늠할 수 없었습니다.


바람의 방향을 알려주는 풍향계처럼 삶의 방향을 알려주는 뭔가가 있다면 길 잃지 않을 수 있을 텐데


저는 2012년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어렵지만 당시에도 취업은 어려웠고 딱히 하고 싶은 일은 없었고 남들보다 잘 되겠다는 야망도 없었습니다. 계획 없이 취업을 준비하던 중 벼락 맞은 것처럼 우연히 PD를 하게 됩니다. 쉽게 선택한 일인 만큼 방송사 인하우스 PD가 되진 못하고 외주 PD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조연출로 외주제작사에 입사했을 때 제 월급은 80만 원이었습니다. 외주제작사에서 일했지만 프리랜서라는 멋진 이름을 불리면서 4대 보험도 가입되지 않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름 사회과학학도였고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으며 주변에 정의당에서 일하는 형들도 있는데 저런 환경에서 일했네요.

그래도 일하는 게 좋았습니다. 다큐, 예능 프로그램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같이 일하는 사람들과 밤새고 입냄새 맡아 가면서 끈끈한 동료애도 느끼고, 결정적으로 내가 만든 뭔가가 전파를 타고 사람들한테 보여지는 보람이 있었습니다. 단순히 '참 보람이 있었다' 수준이 아니라 방송을 하는 순간은 온전히 거기에 집중할 수 있었고 월급이 적고 일이 힘든 건 생각도 나지 않던 시기였습니다. 그렇게 약에 취한 것 마냥 방송일에 취해서 PD로 입봉도 하고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3년 동안 스스로를 갈아 넣어서 일했고 머리가 슬슬 커지니까 방송일에 지치기 시작했습니다. 적은 월급, 말도 안 되는 노동 강도, 양스러운 외주 제작사. 거기에 월급도 밀리고 제작 환경도 안 좋아지고. 쉬어갈 타이밍이라고 생각했고 당시에 맡았던 프로그램을 그만뒀습니다. 외주 제작사는 당연하다는 듯이 퇴직금을 줄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외주 PD 중 누구도 퇴직금 달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전 그 사실이 억울했고 슬펐고, 누군가 총대를 매야한다면 내가 한번 되어보겠다는 공명심도 슬몃이 일어서 노동부에 외주제작사를 신고했습니다. 제작사 대표는 노발대발했고 그 아래 실무를 책임지던 국장은 100만 원에 신고를 취소하고 조용히 넘어가길 원했습니다. 100만 원이면 신고를 하겠다고 마음먹었던 제 결심이 무너질 거라고 쉽게 생각했는지 모르겠지만 전 그 제안에 더 열이 올랐고 받아야 했던 금액 전부를 받았습니다. 그래 봐야 300만 원 조금 넘는 푼돈이었습니다. 그 돈을 받고 이런 환경이라면 방송은 이제 하지 않겠다 결심했습니다. 첫 번째 실패였습니다.


같이 일했던 PD 친구는 웨딩 촬영을 하는 사업을 하자고 제안했고 다른 대안이 없던 저는 PD를 시작할 때처럼 별생각 없이 그러겠노라고 말했습니다. 시장에 대한 막연한 분석과 절박함 없이 뛰어든 사업은 자연스럽게 1년 만에 무너져버렸습니다. 몇몇 프로젝트를 진행했지만 수익이 나지 않았고 3년을 일해서 모아둔 통장잔고는 텅텅 비어 갔습니다. 저는 친구에게 더 버틸 수 없음을 고백하고 다시 방송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1년 만에 두 번째 실패를 경험했습니다.


외주 PD는 막노동이랑 비슷합니다. 프로그램이 있으면 알음알음으로 사람을 구하고 프리랜서라는 멋진 이름을 달고 바로 일을 시작합니다. 저 역시 어렵지 않게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첫 3년을 경험하면서 환멸을 느껴서 떠났지만 방송일은 여전히 재미있었습니다. 더구나 그때와 다르게 꽤 괜찮은 돈을 받으면서 일했고 또 그 일의 즐거움을 즐기며 일했습니다. 그렇게 3년을 방송일을 하면서 이제는 기업에 취업한 친구들 못지않게 돈도 벌면서, 내 일의 1/4 정도는 예술이다라는 뽕에 취해서 지냈습니다. 하지만 그 삶도 그리 길지 않았습니다.

수많은 선배 PD들을 만났고 대부분 좋은 사람들이었지만 예능 프로그램을 하면서 만난 팀장 PD는 나쁜 사람 중의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능력은 없으면서 군기를 잡겠다고 욕을 해대고 더 많은 수익을 가져가기 위해 필요한 인력을 최대한 줄이면서 일을 진행시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제가 선택한 길이었고 악으로 깡으로 그 팀장과 3개의 프로그램 6개월의 시간을 함께 했습니다. 하루에 2시간 쪽잠을 자고 다시 일어나서 편집을 할 때 컴퓨터 앞에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는 문구를 포스트잍에 꾹꾹 눌러쓰면서 인내하고 버텼습니다. 그렇게 버텨내려고 했지만 제 험담을 하는 팀장을 보고 버티는 게 의미 없음을 깨달았습니다. 3일 밤을 편집하면서 지새우고 다시 경주로 내려가서 추가 촬영을 하고 올라오는 KTX에서 팀장에서 내일 나는 나가지 않겠노라, 당신과 일하지 않겠노라고 이야기하고 그다음 날 저는 방송일을 다시 떠났습니다. 이렇게 세 번째 실패까지 적립했습니다.


순간순간 별생각 없이 선택하고 환멸을 느끼고 다시 별생각 없이 선택하고 뛰쳐나오고를 반복한 저의 삶은 보잘것없는 7년의 시간 동안 3번이나 일을 망쳐버린 실패자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사회생활에 후회하지 않습니다. 실패자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선택한 이후 제가 할 수 있는 최대치로 일했고 성장했고 누군가의 기억에는 좋은 사람으로 남아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삶을 경험하면서 제가 알게 된 한 가지는 제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실패한 삶이라도 살아갈 가치와 의미가 있다는 겁니다. 모두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실패한 삶을 살아갑니다. 100% 성공한 삶을 살았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은 사기꾼 밖에 없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이 실패 많은 삶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그 삶이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실패 많은 삶이었지만 그래도 이런 풍경을 보고 찍고 느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합니다.

저는 방송을 그만두고 지금은 조그만 스타트업에서 영상 콘텐츠를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방송이라는 거대한 쇼의 한 부분을 담당하던 때에 비하면 초라해 보일 수 있지만 저를 인정해주는 사람들과 일하고 있고 훨씬 여유로운 삶을 살고 있습니다. 결혼해서 절 사랑해주는 사람과 함께 밥 먹고 웃고 잠들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긴 글을 다 읽으신 여러분이 어떤 상황에 놓인 사람들인지 저는 알지 못합니다. 다만 저같이 많은 실패를 겪은 사람도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에 위안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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