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오늘도 무해한 질문을 빙자한 폭력을 행사하진 않았는지
“그래, 아버지는 무슨 일 하시니?”
점심시간, 주문을 하고 음식을 기다리는 침묵의 시간에 이국장이 물었다. 회사에 입사한 지 며칠 안 된 나와 대화를 이어나가기 위해 하는 질문이었다. 그냥 회사 다니세요. 이번엔 더 구체적인 질문이 날아왔다. "평소에 아버지랑은 친하게 지내?" '아빠'하면 떠오르는 보편적인 정답으로 이 위기사항을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럴수록 이국장은 더 집요하게 물어봤다. 몇 번을 간신히 대답하다가, 나중엔 가상의 아버지로 소설까지 쓸까 싶어 사실대로 말했다. “사실 아빠랑 같이 안 산 지 오래돼서 잘 몰라요.”
약 5초간의 정적이 흘렀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죄없는 수저만 멀뚱멀뚱 바라볼 수 밖에 없는 난감한 상황. 잠시 후 이국장은 요새 '이혼가정'의 수가 많이 증가했다면서 어물쩍 다른 주제로 간신히 넘어갔다. 이럴 때마다 나는 평범하지 못한 사람이 된다. 상대가 기대하는 대화의 흐름을 깨버리는 평범하지 못한 사람. 한부모 가정을 경험하지 않고, 생각할 필요도 없는 사람의 악의 없는 질문은 예고도 없이 시시때때로 찾아왔다.
그렇다고, 내가 매번 무심한 질문에 아파한 것은 아니었다. 나 역시 누군가를 평범하지 못한 사람으로 만든 적이 있다. “전공은 뭐예요?”라고 처음 만난 그에게 물었다. 어느 학교에 다니는지 물어보는 것은 무례한 질문이니까, 어떤 전공인지 물어보면서 대화를 이어나가겠다는 순진한 의도였다. 그는 대학교에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예상치 못한 답변에 당황했다. 내가 ‘대학생’이라는 사실이 너무나 당연해서, 내 또래 사람들을 당연히 대학생이라고 생각했다. 작은 소리로 읊조리듯 말하는 그를 보며 질문을 하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리고 싶었다. 그와 헤어지고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상상했다. 몇 번이고 받았을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하는 그의 모습을. 앞으로도 수없이 들을 질문에 같은 답을 할 수밖에 없는 그의 모습을.
그 누구도 같은 삶을 살진 않지만, 우리는 쉽게 한 대상을 뭉뚱그린다. ‘엄마, 아빠로 이루어진 가정에서 평범하게 자라, 대학에 가고, 직장에 다니고, 결혼하고, 자식을 낳고…’로 이루어진 완벽하고 평범한 서사로 모든 사람을 보편화한다. 그러나 그 서사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난 사람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쉽게 목소리를 내지 못할 뿐.
내가 생각 없이 던진 질문이 누군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낸 것은 아닐까 반성한다. 안부인사인줄 알았던 사소한 질문에, 사소하지 못한 사람의 목소리를 더 작게 만든건 아닐까. 나는 오늘도 무해한 질문을 빙자한 폭력을 행사하진 않았는지. 나는 오늘도 편견이라는 거대한 벽을 더 견고하게 만든 것은 아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