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컨택트’를 보고
그 애는 불쑥 자기는 아빠가 없다고 말했다. 그 말에 놀라 나도 아빠랑 살지 않는다고 난생처음 누군가에게 말해버렸다. 나는 그 애 앞에서만 솔직해지고 자유로웠다. 아빠 욕을 하는 엄마 이야기를 그 애 앞에서만 말했고, 혼자 있는 집이 지긋지긋하면 그 애의 집에 갔다. 나의 슬픔을 들어주는 그 애 덕분에, 나는 덜 아플 수 있었다. 그 애와 나는 그렇게 중학교 2학년 때부터 14년째 연락을 이어오고 있다.
아빠랑 살지 않는다는 사실이 더 이상 슬프지 않은 나이가 된 지금, 그 애 앞에서 하나둘씩 말하지 않는 것들이 생겨났다. 우리는 너무 많이 달라졌다. 더 이상 공통점이 없어 서로의 근황을 묻는 것 말고 할 말이 없을 때. 그 애와 만나도 뭔가 채워지지 않은 허전만 마음이 들기 시작했을 때. 우리가 다른 가치관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아직도 아빠 욕을 하는 엄마 이야기를 그 애 앞에서 하는 건 속 시원하지만, 이제 그 주제가 더 이상 나를 좌지우지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을 때.
왜 우리는 아직도 만나는 건지 알고 싶었다. 오래 알고, 오래 만났다는 이유가 우리를 계속 만나게 하는 건 아닐까? 그동안 쌓아왔던 시간이 무의미해질까 봐 억지로 만나는 게 아닐까? 어린 시절 상처를 공유했다는 사실이 우리의 관계를 한정 짓는 건 아닐까? 나는 그 애와 앞으로 어떻게 지낼 수 있을까? 혼자서 의문을 가질수록 해답을 찾을 순 없었다.
영화 <컨택트>에서 언어학자 루이스는 외계인을 만나 그들의 언어를 습득하면서 미래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 루이스는 미래에 딸이 아파서 죽을 걸 알면서도 딸을 낳고, 이혼할 걸 알면서도 결혼을 선택한다. 현재는 미래의 원인이 아님을 깨달은 루이스는 미래를 바꾸려 하지 않는다. 그녀에게 시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저 현재를 잘 살 수 있으면 그뿐.
왜 우리가 계속 만나는지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한 지금, 나는 그 애를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아직도 고민이다. 그 애에게 받은 편지가 떠올랐다. 14년 같이 늙었으니 54년 더 같이 늙어가자는 편지. 감동적이었지만 우리가 14년을 같이 보냈다는 과거의 사실이, 미래의 관계를 좌지우지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아픔을 함께한 시간의 추억을 극복하고, 우리에게 또 다른 차원의 시간이 오길 기다린다. 루이스처럼 우리의 관계도 시간을 초월해 그저 흘러가는 대로 현재에 만족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