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하다가 소 다섯 마리 본 날
어느 때처럼 평범한 출근길, 갑자기 소를 보았다. 버스에서 잠깐 졸다가 눈을 떴을 뿐인데 말이다. 뭐지? 잠이 덜 깼나? 소의 황토색 털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고, 콧구멍은 바람을 느끼듯 벌렁거렸다. 내가 탄 버스 옆 트럭 뒤 검은색 천막 사이로 소의 얼굴이 간신히 보였다. 차가 빼곡한 도시 속 출근길과 소 다섯 마리가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소의 표정은 약간 흥분되어 있는 것 같았다. 저 소는 오늘 처음 햇빛과 바람을 느낀 건 아닐까. 갑자기 트럭에 실려서 당황하진 않았을까. 어디로 가는 중일까. 앞으로 저 소들은 어떻게 될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할수록, 결말은 비극일 것 같았다. 고통스러웠다. 내가 탄 버스가 트럭을 빨리 추월해 눈 앞의 소가 사라지길 바랬다. 눈을 질끈 감았지만 그래도 소의 까만 눈동자가 계속 머리에 맴돌았다.
소를 우연히 본 그날 점심에는, 육수가 들어간 라멘을 먹었다. 나는 2년 전부터 고기를 먹지 않으려고 노력 중인 채식 지향인 이다. 하지만 괜히 점심시간마다 나 때문에 사람들이 불편해할까 봐 회사에 채밍아웃(채식지향인임을 밝히는 것)은 하지 못했다. 그래서 점심시간엔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메뉴나, 최대한 고기가 덜 들어간 메뉴를 시키는데, 그날에는 평상시보다 더 곤욕스러웠다. "저 오늘 아침에 소를 봤어요." 넌지시 말했다. "오늘은 고기 못 먹을 것 같아요. 자꾸 소가 떠올라서." 옆에 있던 동료가 한마디 곁들었다. "헐 그래도 고기는 맛있잖아요.."
그날 나는 라멘을 많이 남겼다. 아침에 본 소의 눈동자가 계속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채식에 대한 정보는 책이나 텍스트로만 얻고, 영상으로는 찾아보지 않는다. 부리가 잘린 채 에이포 용지보다 작은 공간에 있는 닭을 내 두 눈으로 볼 자신이 없다. 평생을 축사에 갇혀있다가, 처음으로 햇빛을 본 돼지가 신나서 뛰어다니는 영상도 클릭하지 못했다. 내 마음이 고통스러운 게 너무 싫어서. 한번 보면 잊히지 않고 계속 날 괴롭힐 것 같아서.
하지만 그럴수록 나는 희미한 채식 지향인이 되는 것 같았다. 불편한 진실을 감당할 용기가 없어서 고개를 돌려버리는, 회사에선 내 가치관을 숨겨버리는 소심한 채식 지향인. 그렇게 나는 반쪽자리 채식 지향인이 되었다. 그러나, 생생하게 살아있는 소를 본 순간은 예고도 없이 벌컥 찾아왔다.
바삭하게 튀겨진 치킨이나, 육즙이 흐르는 고기를 보면 맛있어 보이는 게 당연하다.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를 보는 게 아니라, 불 위에서 자글자글 익어가는 고기를 보니까 그렇다. 아직도 나는 불편한 진실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게 무섭고 두렵다. 그래서 계속 상상하려고 한다. 1등급 한우를 보는 게 아니라, 억울한 소의 마음을 보려고 한다. 평생을 좁은 축사에서 살아야만 하는 소의 고통을 상상하려 한다. 계속 상상하다 보면 언젠가 나도 당당히 채밍아웃할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