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으로 반년 간 외국에서 살아본 적이 있다. ‘넌 어디서 왔니?’ 너네 나라는 어떻니?’ 등의 질문으로 이야기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하지만 어쩐지 어색했다. 그동안 ‘한국인’이라는 인지 없이 살았는데, 외국에 와보니 ‘한국인’이 아니면 나를 설명할 단어가 없었다. 아, 우리나라는 분단국가였지. 아, 우리나라는 인구수가 참 많구나. 아, 우리나라는 김치를 먹었지. 한국에 살 때는 생각해 본 적 없는 우리나라의 특징이 새삼 놀라웠다.
먹는 음식도 달라졌다. 밀가루, 디저트류를 많이 먹다 보니 살이 점점 찌기 시작했다. 하지만 살이 찌고 있는지도 잘 몰랐다. 나는 늘 넉넉한 바지만 입고 다녔고, 외국에서 사는 동안 짐을 늘리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쇼핑도 잘하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살이 쪄도 나에게 아무도 잔소리하지 않았다.
한국에 돌아오니, 오랜만에 날 보는 엄마의 친구들은 같은 말을 반복했다. ‘아이고 살이 많이 쪘네~’ 그래서 거울을 자주 보게 되었고, 몸무게도 매일 아침 확인하게 되었다. 교환학생이었을 때는 재미로 했던 배드민턴, 수영 같은 운동이 한국에 와서는 살을 빼기 위한 ‘다이어트’로 바뀌었다. 나는 이제 외국인이 아니라 원래 내 자리였던 ‘여성’으로 돌아와야 했다.
그다음엔 주기적으로 옷을 사기 시작했다. 옷에 대한 선택권이 넓어지면서,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일지 집중했다. 스키니를 입을 땐 다리가 날씬하게, 상체는 부해보이지 않게. 하지만 삐죽거리는 손톱 옆 거스러미처럼, 어딘가 불편하고 부자연스러웠다. 왜 사람들은 많이 먹으면서도 날씬한 여성을 착한 몸매라고 하지? 왜 여자 몸의 신체 부위 하나하나에 대해서 평가하지? ‘여자로 살아가는 것’ 대해 자연스레 물음표가 생겼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시인이었던 나혜석의 시 ‘노라’에는 아래와 같이 적혀있다.
나는 사람이라네
남편의 아내 되기 전에
자녀의 어미 되기 전에
첫째로 사람이라네
나는 잠깐 외국인으로서 정체성의 변주를 겪고 나서야, 여성으로 사는 어려움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계속 여성으로 살았다면, 당연한 거라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불합리하고 불편한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지 않고 의문을 제기한 멋진 사람이 있었다. 여성은 아내라는 정체성보다, 어머니라는 정체성보다 ‘사람’이 먼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었다. 시인은 시의 마지막에 말한다.
아아 소녀들이여
깨어서 뒤를 따라 오라
일어나 힘을 발하여라
새날의 광명이 비쳤네
깨어서 뒤를 따라오라고 말했기에, 나는 나혜석을 감히 멋진 선배라고 말하고 싶다. 불편한 건 당연한 게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 여자도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오래전에 존재했다. 나도 그 뒤를 잘 따라가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