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야, 오늘 학교에서 읽었는데 엄청 재밌어. 지금까지 내가 읽은 책 중에 제일 재밌었어."
책 읽기 싫어하는 둘째딸이 흥분하면서 책 이야기를 하는 것도 사실 10년만에 처음이다. 열살이니까 사는 내내 처음인 순간이다.
"무슨 책이야?"
"고양이가 주인공인 책이야. 1권도 읽고 2권도 읽고 3권도 읽었어. 나 내일 또 읽을 거야."
"와, 우리딸. 이제 책 맛 좀 본 거야?"
"뭔 맛? 책 맛은 몰라."
"그래그래, 거기까지만 가도 대단하다. 우리딸."
난 둘째딸을 꼭 껴안아 주었다.
나도 올해 뜨거운 여름이 지나가는 동안 ‘한밤의 아이들’이란 책을 읽으며 경이로움에 빠져었다. 함께 읽은 독서회 언니들의 취향은 아니었나 보다. 나만 흥분했다.
“자기가 이런 글을 좋아하네? 의외다.”
난 이 책을 읽고 나처럼 흥분할 사람, 남동생에게 이 책을 권했다. 남동생은 초반부를 읽어가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동생도 “와, 나는 정신이 하나도 없네. 이 말을 했다가 저기 이야기를 했다가. 누나가 이런 내용을 좋아하나봐. 서사가 많고 현실인 듯 판타지인 듯 모호한.”
그래서 사람들의 취향은 정말 다 다르구나라는 걸 다시 한 번 느끼고 내 느낌을 소중히 여기기로 했다. 영화 반지의 제왕을 봤을 때의 느낌이 너무도 강렬해서 그 후로는 어떤 영화도 그 영화만큼 내 마음을 뺏지 못했다. 그게 벌써 10년 전 아니니? 아, 그 영화도 등장인물이 무지하게 많고 이야기도 무지하게 뻗어나가는 스토리구나. 내가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구나. 사람이 단순해서인지 이야기는 복잡한 걸 좋아하는 건가?
한밤의 아이들은 마음만 뺏은 게 아니라 때가 되어서인지 내 마음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열어버렸다 정도가 아니라 견고한 마음문을 '쿵'하고 날아와 부숴버렸다고 표현하고 싶다. 상상해 보시라. 책 (1,2권) 두권이 날아와 꿈쩍도 안 하는 돌문을 쿵 건드리니 돌문이 와르르 무너지고 마는 영화속의 장면이 내 인생의 장면이다. 그 책을 읽은 뒤로 죽은 듯 깨어나지 않았던 감각들이 일제히 일어서서 촉수를 뻗어가느라 바삐 하늘거리는 움직임을 경험하고 있다.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이제야 내 몸으로 마음으로 깨닫게 되었다. 내 나이 45살에.
경이롭게 읽은 한권의 책은 내 영혼을 깨어나게 하는구나! 경이롭다는 표현도 눈여겨봐야 한다. 충분히 빠져 읽으며 감정의 기복을 따라 읽는 독서를 할 때 내 감정선은 생명을 얻어 살아나고 나라는 존재를 새로워지게 한다. 그 경험을 했다.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중년이 되니 소설책을 읽는 기쁨도 알게 되었다. 신분제로 가슴 아픈 사랑을 해야 하는 인도 여성도 되어 보고 아프리카 흑인, 혼혈인이 되어서 그들처럼 느껴보고 전쟁 한 가운데 살아가야 하는 여러 여성들의 입장도 되어보고 감옥에 갇힌 테러리스트 애인을 사랑하는 한없이 다정한 여인도 되어보고 동성을 사랑하는 남자도 되어보고 나무를 연구하는 여박사도 되어보고 등등, 이런 저런 사람이 되어보는 재미가 참 쏠쏠하다. 예전에는 그냥 읽었다. 3자가 되어서. 구경꾼처럼. 판단하면서. 그런데 이제는 내가 그 인물이 되어진다. 읽을 수 있을만큼 소설책을 읽고 싶다. 눈이 허락할 때까지. 그 다음 단계는 시가 되지 않을까.
한밤의 아이들이 내 마음을 연 뒤로 난 ‘맛’을 진정 알게 되었다. 읽는 맛, 사는 맛, 사람 맛, 살빼는 맛, 느끼는 맛. 내가 가장 간절하게 알고 싶은 맛은 글쓰기 맛이다. 기적같다. 니체가 천개의 눈이 있다고 표현했다면 난 오늘 아침은 탈피라는 단어로 표현하고 싶다. 마음도 탈피를 거듭하나보다. 탈피로 거듭거듭 천번쯤 하게 되면 사람은 (나를 밑으로 잡아 내리 끌어내는 무거운 것들로부터 벗어나) 정말 중력의 법칙을 벗어나 훨훨 날 수 있는 존재가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책으로 탈피, 영화로 탈피, 관계로 탈피, 글쓰기로 탈피, 친절로 탈피, 등등.
문학이 내 인생을 바꾸었다. 책이 나를 구원했다. 45세에 배우게 되는 게 참 많다. 둘째딸도 언젠가는 책의 맛을 알게 되겠지. 큰딸과 막내 아들도 책 맛을 보겠지! 옛 선인들이 왜 꿀을 발라 페이지를 넘기면서 책을 보았는지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