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딸이 좋아, 아들이 좋아?"
둘째딸과 막내아들이 내 얼굴을 빤히 보고 있다.
"내가 낳았으니까 딸도 아들도 예쁘고 좋지."
"엄마는 여자로 태어나서 좋아?"
둘째딸이 또 묻는다.
"엄마는 여자로 태어나서 너~무나 좋아."
"나도 여자가 좋아. 근데 아이 날 때는 정말 무서울 거 같애."
열살난 둘째딸은 출산까지 땡겨서 걱정했다.
"네가 출산할 때면 과학이 더 발전해서 안 아프고 아이를 낳게 될 지도 몰라. 심지어는 네 배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 아이가 크고 있을 지도 몰라. 넌 한 두달간만 품고 있다가 다른 기계가 아이를 열달이 차도록 키우는 거지."
"그럴수도 있겠다. 진짜."
"그뿐이야? 낳고 나면 아이 키우는 기쁨이 얼마나 큰데! 요 맛은 네가 직접 네 아이를 키워보면 알게 될 거야. 여자라서 너무나 행복해요."
난 푼수 엄마처럼 호호호 웃는다.
남편을 따라 죽지도 않은 부인을 생매장 했던 ‘순장’이라는 풍습이 생각난다. 남자들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풍습, 문화라는 이념 아래 여성을 생명이 없는 인형처럼 다루기를 좋아하는 남자들. 여성을 착취하고 노리개로 삼고 한평생의 일생을 빨아먹는 것도 모자라 사랑은 주지 못 하는 남성들. 인간탈을 쓰신 짐승이 아니신가요?
‘노예 12년’이라는 영화도 생각난다. 노예 수입이 금지 되자 흑인 납치 사건들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시대적 배경 속에서 백인 남자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는 흑인을 극도로 싫어하는 걸 넘어 혐오해서 벌레보다 징그럽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밤마다 흑인들이 자는 지하로 내려온다. 흑인들은 남녀구분 없이 한 공간에 침대를 책상처럼 늘어놓고 자게 했다. 그래도 흑인들은 인간다움을 지키려고 서로 배려해주고 노래하며 인생을 견뎌내던 참이다. 그런데 백인 남주는 한 흑인 여자에게 다가와 치마를 들추고 자신도 엉덩이 부위만 살짝 내리고 그짓을 했다. 한두번이 아니다. 벌레보다 더럽다고 여기는 흑인에게 왜 그런 짓은 하는 거지? 백인 여자들도 많고 부인도 있는데, 더럽다면서 왜 자꾸 자기 몸을 더러움에 처박지? 진짜 지옥구덩이에 쳐 박히고 싶군요?
책 빌러비드도 생각난다. 이 책도 실화를 바탕으로 쓴 흑인 여성 작가의 책이다. 자신의 아이를 자신이 직접 칼로 목을 그어 죽이게 한 사건. 주인인 백인 남자들이 도망친 흑인 여성을 잡으러 왔다. 자신의 딸이 자신처럼 인간도 아닌 벌레만도 못 하고 살게 될까봐(피부색이 까맣게 태어났다는 그 사실 하나로 벌레가 되어야 하나요?) 백인들 앞에서 칼로 목을 그어 죽여버린다. 적반하장격도 유분수지, 백인들은 흑인은 자신의 자식을 죽이는 인간도 아니라며 몰아가더니 사형시키기 위해 결국 법정까지 끌고갔던 사건. 책을 읽고 있자면 욕이 내 마음 속에서 자꾸 창조되는 걸 느낀다. 백인 쓰레기들을 향해. 오죽했으면 자신의 딸을 백인 손에 내어주지 않으려고 죽여버렸을까, 그 절절한 심정이 느껴져서 읽기 힘들었던 책이었다. 피부 흰 게 뭐 자랑질입니까, 껍질 한 번 벗겨드릴까요? 와우, 나도 완전 잔인하게 나가고 싶다.
‘안산’도 생각난다. 이번 올림픽을 치르며 난 속으로 ‘쟤가 제일 먼저 광고를 찍겠구나. 3관왕에 얼굴도 이쁘고 키도 170이 넘어 훤칠하고 강인하고 흔들리지 않는 담대한 여성’ 이었다. 그런데 웬걸. 머리가 숏카트라며 혐오논란에 휘말렸고 안산은 지금까지도 cf광고를 찍지 못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숏커트, 강인함, 담대함은 남성들이 원하지 않는 여성상이었던 거다. 미치신거 아닌가요?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책도 생각난다. 세잌스피어에게 여동생이 있어서 세잌스피어와 똑같은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세잌스피어의 여동생은 어떻게 살게 되었을까, 상상으로 끌고 간 부분이 인상에 남았다. 여성은 그렇구나. 울프 그녀도 교회 안에 들어가 산책하고 싶었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거절당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여성은 자기만의 공간과 지금 시세로 한 5000만원쯤 될까, 나만의 공간과 1년 동안 이만한 돈이 규칙적으로 들어와야 여성이 인간답게 살 수 있다고 말했던 책. 난 이 책을 읽고 페미니즘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했던 것 같다. 여성이 아닌 한 인간으로 살기 위해 그 두가지를 마련해야 겠구나. 울프 그녀도 돈이 없어 가난했을 때는 근근히 할머니들에게 글을 가르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았지만 알지 못하는 먼 친척뻘 되는 숙모가 자신과 이름이 똑같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울프에게 거대한 유산을 남겨줬고 울프는 그 뒤로 안정감 속에서 글만 쓰게 되고 작가로 거듭나게 된다.
쓸모없는 돈들은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 것인가? 도박판의 돈. 그 돈 때문에 뺏긴 무언가를 뺏긴 사람에게 되돌아와야 하는 돈. 돈, 너도 속죄해야 한다며 별의별 생각이 다 든다. 나도 스승님도 건물주가 되어서 전업작가가 되기를 간절히 희망하고 있기에 빨리 내게 와야 할 돈을 내 놓으라고 우주에게 서편을 보내놓았다.
남성들이 만들어 놓은 여성상. 팔다리가 길고 가늘고 날씬하고, 피부가 매끄럽고 얼굴이 이쁘고 거기다 너무 심오한은 말고 약간의 생각할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그런 여성들은 남성의 사랑을 갈구해야 한다고, 태어난 이유가 자신들의 눈짓 한 번 받기 위해서라고 착각하는 남성들은 오늘 다 뒤로 꽈당 하고 한번 넘어지기를 바란다.
내가 사는 곳에도 히잡을 쓰고 다니는 여성들이 간간이 보인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이슬람 종교의 남편이 여러명의 부인을 두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일 가능성이 많다. 아이들이 10명도 훌쩍 넘어 한 반 수만큼 이룬 걸 나도 봤다. 이 좋은 가을 바람에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 놓고 다녀야 하다니. 그건 그들의 종교적 신념이 아니라 인간에게 해서는 안되는 걸 강요하는 비인권적인 행위가 아닐까요?
여성을 깨우칠 가장 좋은 방법은 뭘까. 남성처럼 되는 게 아니라 여성성으로 인간다움에 이르는 길을 발견하는 방법. 앞선 현명한 여성들이 글쓰기라고 누누히 말했다. 여자들은 특히 더 남성들보다 2배도 넘게 글을 쓸 지어다. 그래야 여성들이 바라는 세상이 성큼성큼 큰 걸음으로 오지 않을까.
그 세상에서는 딸을 낳아도 서럽지 않을 것이다.(물론 우리나라는 아니지만) 당당한 걸음걸이로 찬란하게 살아가는 엄마들의 딸들, 그 멋진 뒷 모습을 보게 될 것이라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