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몸을 해방시키노라

몸의 해방과 함께 찾아온 책의 맛, 안팎의 즐거움

by 오아시스

"어머니가 물어보시니까 제가 말 할게요."

막내 아들 선생님과 우연히 통화를 하게 되었다. 편식이 심해져서 급식 시간에 밥을 자꾸 남기고 간식으로 나온 핫도그 하나만 달랑 먹는다면서 걱정된다고 문자를 보내 왔다. 나는 내친 김에 선생님께 전화를 걸었다.

"요새 학교 생활은 잘 하고 있나요?"

"제가 힘들어서 죽을 지경이예요. 2학년을 처음 맡았는데 2학년이 끝나갈 즘에는 아이들이 그런다고 다른 샘들이 알려주시기는 하더라고요. 놀 생각에 수업도 대충, 과제도 대충, 글씨도 대충, 대충대충, 예전에는 안 그랬거든요. 수업 시간에도 친구랑 이야기를 하는데 수업하는 저만큼이나 말을 하고 있고 말대답도 곧잘 하고....저랑 우리반 아이들이 다 깜짝 놀랬어요."

"죄송해요. 선생님. 제가 집에서 데리고 이야기 할게요."

"00뿐만 아니라 같이 노는 패거리라고 해야 하나요? 서로 놀 궁리만 하고 있어요."

"..........."

내 깊어가는 한숨 소리가 가을 바람이 되어 휘익~ 서늘하게 불어온다.


내 안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알게 됐다. 난 차분하게 앉아서 느끼고 무얼 하는 정적인 타입이 아니라 몸으로 움직여 놀고 행동하는 사람이었다는 걸. 중학교 이후로 책상에 앉아 공부하고 직장도 출판사에 다녔고 결혼 후로도 움직이는 게 싫어 극도로 게을렀던 나. 그런데 가장 나다운 어린 시절을 자꾸 떠올리니 나는 몸으로 놀아야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내 아들처럼, 내 조카 00처럼.


나는 매순간 몸으로 놀 생각이 가득한 아이였다. 되짚어보니 난 앉아서 책을 읽어본 적이 뜸하다. 책을 읽기에는 재밌는 바깥 놀이가 너무나 많았다. 고등학교 체육 시간에는 자유 시간을 주면 보통 아이들은 교실에서 앉아서 놀거나 수다를 떨고 책을 읽고 공부를 했지만, 나는 꼭 운동장으로 나가 교복 아래 체육복을 입고 축구를 하며 뛰어다녀야 했다. 뛰고 나서의 그 상쾌한 기분. 그래야 마음이 풀렸다.


그런 내 몸을 움직이지 않고 가두고 있었으니 내가 얼마나 기쁘지 않았을까. 올해는 내가 내 몸도 해방시키는 해가 되는구나! 몸의 해방과 함께 더 놀러만 다니려고 바깥으로 쏘다닐 거 같지만 난 올해 책의 맛도 알아버렸다.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알아버린 것이다. 그래서 책을 읽기 전 사랑하는 사람처럼 설레임도 처음 느껴봤다. ‘이 책은 내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 올까?’ 책 읽을 생각에 훙분하기 시작했다. 책을 읽기 위해 나만의 조용한 공간으로 찾아가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가서 단 둘이 데이트를 하고 싶다. 은밀하지만 깊이 널 만나고 싶다는 책에 대한 애정이 쑥쑥 솟는 중이다.


책에 빠지는 길로 접어들었다. 아직 완전히 초입이지만 들어섰다는 데 의의가 있는 길을 찾아낸 것이다. 그 계기를 열어준 책은 한밤의 아이들. 잉태하도록 생명을 불어넣어 준 책은 존 버거의 A가 X에게. 두 권의 책은 내게 단숨에 책에 미치고 싶다는 열망을 불어넣었다. 어떤 점이 그랬냐고 내게 물으면 난 조목조목 말할 자신이 없다. 그저 경이로운 마음이 들어버렸고 그 경이로운 마음은 내 가슴을 활짝 열어젖혔다고 말할 수 밖에 없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경이롭다는 마음은 느끼지 못 했던 것 같다. 때가 되었겠지. 내가 중년에 들어선 까닭이기도 하겠지. 나이가 주는 성숙함의 길로 들어선 때가 맞아떨어지기도 했겠지. 내 사주가 올해 거지에서 대통령으로 바뀌기 시작한 해니 마음이 바뀌어야 하는게 지당한 이치기도 하겠지.


여하튼 여러 우연과 운명들로 난 책과 사랑에 빠지기 시작했고 이로써 내 운명은 더 급격한 곡선을 그리며 변하지 않을까 예상된다. 날씨 예보처럼 내 운명의 예보가 예고한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폭망하는 사람은 없고 책을 사랑하는 사람치고 자신의 운명과 존재를 잘 꾸려가지 못 하는 사람도 없기에 나도 그렇겠구나라고 내 자신에게 말을 건넨다.


‘넌 이제 대박이야. 책 맛을 알아버렸으니! 정말 너답게 살게 될 거야. 진짜 너에 이르고야 말 거야.’

몸의 해방과 더불어 찾아온 책의 맛. 난 안팎으로 기쁨을 누리며 살게 되겠구나. 이 사랑에 욕심부리지 말아야지. 무리는 하지 말아야지. 내게 인연으로 다가온 여행지와 책들만을 어루만지며 애정 가득 충분히 마음 주고 시간 주고 깊이깊이 알아 가야지. 한발한발 내 몸으로 온전히 책들이 스며들때까지 부둥켜 안고 있어야지.


아들이 지금은 나처럼 몸으로 놀고 싶어서 주체 못 할 시기를 겪고 있는 거겠지. 잠시만 기다려줘야지. 아들도 곧 책 맛을 알게 되서 안팎으로 느끼는 즐거움을 알게 될 테니까. 아들은 내 마음을 미리 알았는지 제안을 하나 해 온다.

"엄마, 내가 책 450권 읽으면 핸드폰 사줄 거야?"

"그래, 당연하지."

"정말?"

난 고개를 끄덕인다. 아들은 책 450권보다 핸드폰에 마음이 꽂혀서 좋아하기만 한다. 그래, 맘껏 읽어라. 450권이 채워지도록 마음껏 읽어라. 책 맛을 먼저 알아버려라. 그럼 핸드폰이 문제겠니?

그런데 우리 아들이 책을 10권이라도 읽어낼지...또 믿어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