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아시스 Dec 23. 2021

+++ 인생

군더더기와 풍요를 가르는 기준선은?

"엄마, 마이클잭슨은 WHO 책에 있는데 왜 퀸은 WHO 책에 없어?"

"글쎄. 기준이 뭐지?"


아침 7시가 되면 라디오를 켠다. 마침 라디오에서 퀸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둘째딸은 부시시 깨다가 퀸 노래를 듣더니 마이클 잭슨이 떠올랐나보다. 마이클 잭슨은 왜 WHO? 책에 있는데 퀸은 왜 WHO? 책에 없는지 궁금해 하더니 마이클 잭슨 책을 가져와 읽고 있다. 둘째딸은 00를 더하고 있다. 이 단어를 뭐로 쓰면 좋을까?


그러고 보니 우리는 늘 더하기의 인생을 살고 있다. 살아간 날 수 만큼 더해지는 삶은 당연한 귀결처럼 여겨진다. 그런데 군더더기를 더할 수도 있고 풍요를 더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끝차이다. 군더더기인지 풍요롭게 하는 건지? 풍요는 더해야 하지만 군더더기는 빼서 없애야 하는 게 맞다. 어디까지가 풍요고 어디까지가 군더더기일까? 군더더기 없는 삶의 행복. 군더더기 없는 사랑, 군더더기 없는 옷장, 군더더기 없는 살림, 군더더기 없는 소망, 군더더기 없는 양육, 군더더기 없는 몸, 군더더기 없는 ...군더더기를 없애는 일은 참말로 고수의 경지다.


5월말에 시작한 다이어트가 벌써 5개월을 지났다. 처음에는 약도 먹었는데 3kg의 군더더기만 빠져나갔을 뿐이다. 나가줘야 할 군더더기가 아직도 많이 있지만 빠지지가 않는다. 먹는 걸 좋아하는 나는 어제도 아침부터 김치찌개, 고구마, 과장 한 봉지, 모자라서 과자 두봉지를 더 먹고, 도넛에 커피도 마시고, 상추쌈 3번 싸 먹고, 어제 먹다 남은 자몽티를 데워서 먹고 또 도넛을 먹고 딸이 끓여준 라면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와, 영양가 없는 음식을 왜 이리도 많이 먹었지? 차라리 제대로 된 밥을 한끼를 먹지? 생리가 시작되려고 낌새만 보이니 내가 자꾸 과자를 먹고 싶다. 이상하게 생리전은 과자를 부른다. 하루만에 이리 군더더기를 많이 만들어버렸다. 오늘 내 몸은 어제 덕지덕지 붙여놓은 군더더기를 그대로 갖고 있다. 몸은 그래도 마음보다는 정직한 아이라 자신의 모습을 스스럼 없이 노출시킨다.


딸은 퀸의 노래를 듣고 마이클 잭슨을 떠올렸지만 난 갑자기 삶에 대해 일체의 시스템을 바꾸어 버린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들의 삶이 궁금해졌다. 말로만 듣던 스콧 니어링의 삶을 직접 읽고 싶다. 자본주의 바깥의 삶을 꿈꾸던 부부. 그들은 도시를 버리고 시골로 내려가 자기들만의 농지를 꾸렸다. 1년간 들어갈 최소한의 생활비를 계산하고 그 돈을 벌기 위해 농사를 짓고 메이플 단풍 시럽을 만들어 팔았다. 필요한 만큼의 비용을 버는 순간 일체의 노동을 멈추고 그때부터는 마음껏 하고 싶었던 일, 읽고 쓰고 사랑하고 음악을 듣고 연주하며 하루를 보내며 살았다고 한다.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싶은 하루다. 하루하루는 더 해지는데 어떻게 군더더기 없는 본질에 충실한 인생을 살아냈는지 함께 해 보고 싶다.


내 나이 벌써 45살. 전환점에 섰다. 소소하게 버려야 할 물건도 있고 소소하게 버려야 할 생각들도 있지만 인생 시스템을 완전히 바꾸어야 할 나이이기도 하다. 스콧 니어링 부부는 다른 삶을 살기 위해 도시에서 시골로 이동을 했다. 공간을 새롭게 함으로써 시간도 새롭게 했다. 나도 이리 하고 싶다는 막연한 열망이 인다. 공간을 새롭게 하면 시간도 새롭게 흘러갈 가능성이 커진다. 시간도 날개가 있어서 새로운 종류의 날개를 돋아나게 해 주면 동그란 시계속에서 빠져나와 훨훨 날아갈 수 있을 것이다. 발목을 붙잡는 건 늘, 생활걱정. 아이들을 책임져야 하니 지금 시스템 안이 안전해 보인다. 충분하지도 않지만 실패할 시점도 아니니까. 조심조심 살살 가려고 하는 거지.


그런데 인생에 전환점이 오고 말았다. 마음에 열망의 바람이 부는 건 때가 왔다는 하늘의 신호다. 내 인생의 시스템을 어떻게 바꾸어보면 좋을까. 남겨야 할 본질의 풍요만 더하고 군더더기는 다 덜어내서 바꿔야 한다면 내년의 내 인생은 어떻게 설계해보면 좋을까. 새 판을 짜야 하는 건 정치계 쪽만의 이야기가 아니었구나. 오늘 아침 딸의 질문에 내 인생의 새 판 짜기까지 생각이 이어졌다.

 

군더더기와 풍요를 가르는 기준선은 뭘까? 내게 오늘은 이 질문을 던진다.             

작가의 이전글 시간에 친절한 마음이 유머일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