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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아시스 Jan 10. 2022

여행이 던진 질문

나의 최대치를 상상해 봤니?

새해맞이 여행은 누구도 달가워하지 않았다. 12월의 어느날 쯤 새해가 오면 여행을 가야할 것만 같은 마음이 갑자기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검색없이 내키는대로 휴양림 싸이트에 들어가 빈 숙소가 있는 방을 잡았다. 마침 낙안읍성 민속마을 휴양림에 숲속의 집이 한 채 남아있었다. 낙안읍성은 가을에 한 번 꼭 가보리라고 마음 먹었지만 못 가본 곳. 기어코 가야만 했다. 겨울이어서 내가 본 아름다운 색채의 풍경은 볼 수 없었겠지만 그냥 떠나는 걸로 결정했다.


아들은 안 가겠다고 떼를 썼다. 그냥 따뜻한 집에서 맛있는 걸 먹으며 텔레비전을 보고 싶다고 했다. 둘째딸은 얼마나 걸리냐고 20번쯤은 물어봤다. 난 그때마다 "1시간도 안 걸린데. 50분쯤?"이라고 대답했다. 지인에게 들은 말을 믿었다. '1시간 정도는 운전하고 갈만해.' 가는 거리랑 위치를 확인하지도 않은 채 여행 당일이 되어서 카카오네비를 켰다. 검색을 해 보니 최단 거리가 1시간 40분이었다. 왓! 뭐지? 40분이 아니고 1시간 40분?


마음이 복잡해졌다. 막내 아들도 둘째딸도 겨우 달랬는데. 내 마음에는 운전에 대한 기본 세팅이 1시간이라는 걸 그 순간에서야 알게 되었다. 1시간은 ok지만 1시간이 넘어가면 난 고민에 빠진다. 갈까 말까? 난 천천히 운전하는 스타일이니 낙안읍성이 2시간 정도 걸린다는 걸 알았다면 애초에 여행지로 탈락이다. 그런데 이제는 취소할 수도 없었다. 1박할 짐도 다 쌌기 때문에 직진만이 답이었다. 내비를 켜고 목적지를 검색하고 안내를 시작하자 두 아이들이 화들짝 놀랬다. "뭐야, 1시간도 안 걸린다면서? 1시간 40분이 걸리잖아? 엄마 스타일대로 하면 2시간도 넘겠어. 휴." 두 아이들이 뒷자석에서 체념을 했다. 큰딸이 동생들 기분을 풀어주려고 신청곡을 받았다. 아이들은 돌이킬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금새 풀어졌다. 앞다투어 노래를 신청하고 큰딸은 지니 뮤직으로 노래를 선곡해서 들려주었다.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산과 도로를 휙휙 지나치니 그제야 여행하는 기분에 슬슬 발동이 걸린다.

 

1시간을 기준으로 가고 머뭇대던 내 모습.  내가 가고 싶은 곳을 한참이나 머뭇대다 포기해야 했던 거리. 난 왠지 장거리 운전은 꺼려지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 그런데 목적지가 분명하니 가고야 만다. 근처근처만 기웃대며 살래? 이번 여행이 내게 질문을 던졌다. 네가 가고 싶은 곳을 가. 운전해서 강원도까지 가야하는데, 갈 길이 멀잖아?           


이 여행은 내 마음에까지 파장을 일으켰다. 지금 현재의 모습을 기준으로 조금만 더 늘리고 확장해보려는 내 소망. 불과 1시간처럼 내 변신할 모습도 그런 손바닥만한 한계점에 붙잡혀있는 건 아닐까. 내가 되고 싶은 나를 과감하게 꿈꾸지 못 하는 나. 운전해서 강원도에는 갈 수 없다고 버티는 나. 도달할 이미지가 선명하지 못 하니 내 태도는 흐지부지 어정쩡하다. 이 여행은 내 마음에도 질문을 던졌다. 넌 너를 어디까지 생각하지? 너의 최대치는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 봤어? 내 마음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피하고 싶었나 보다. 이미 40세가 넘었고 이룰 사람들은 이미 다 이루었고 벌써 50세에 접어드는데 지금 힘을 내서 무엇하랴, 라는 속삭임이 내 마음을 무릎 높이만큼 둘러싸고 있다. 무릎 높이만큼도 다리를 벌리고 싶지 않은 거지. 그런데 난 관인상생형. 관인상생형은 깨달음이 와야만 빛을 발하기 때문에 대기만성, 늦게 하고자 하는 바를 이루는 유형. 난 어쩌면 이제부터 시작일지도 모르는데 나이에 스스로 가두려는 유혹에도 홀리고 있다. 난 60세도 되고 말 텐데 60세에는 어떤 나가 되어 있을지, 꿈꾸기 나름일텐데. 꿈만 꾸는데 돈도 안 드는데 내 자신에게 왜 이리 인색한거지? 최대치의 나로 도대체 확산이 안 되고 배치가 안 되고 뒷걸음치며 5센티 안의 범위 안에서 움직이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혹시 알아? 60의 나는 기똥찬 인생을 살고 있을지? 난 이제 인생의 입학생이 되었을 뿐이야. 열심히 꿈만이라도 꿔보라고.


45,46,47,48,49,50세 초등 졸업, 51,52,53 중등 졸업, 54,55,56 고등 졸업, 57 인생대 입학. 60세까지 시간이 충분하다. 영롱한 존재가 될만한 충분한 시간이 있다.  난 이제 2학년에 올라갔다. 인생 초등 학교 2학년. 이번 여행은 운전 세팅을 2시간으로 올리고 내 존재의 변신 범위를 2배쯤은 넓혔다. "되고 싶은 모습을 먼저 결정해. 그리고 가. 얼마나 걸릴지, 얼마나 힘들지 고려하지 말고. 조바심 내지 말고 천천히 내 속도대로 가면 되잖아. 우선은 꿈꾸는 네 모습을 설정해. 나머지는 우주가 알아서 해."라고.


새해 맞이로 떠난 여행. 내게 좋은 질문을 던지며 새해를 시작하게 한다. 다음 여행은, 내게 어떤 질문을 던질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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