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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07. 시니컬한 파리지앵

뒷담화의 어두운 얼굴

여행 중에도 쉬는 날이 필요했나 보다. 걷는 것도 지치고 마음도 왠지 울적하니 한국에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날이었다. 늦게까지 푹 자고 일어나서 여행 말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근처에 실내 수영장이 있길래 숙소를 나섰다. 수영복 하나 대충 사서 들어가서 수영으로 몸을 좀 풀고 나니 혈액 순환도 좀 되고 기분도 돌아오는 듯했다. 따듯한 햇빛을 즐기려고 통유리 앞에 앉았다. 조금 후에 혼자 온 듯한 여성 한 명이 곧 내 옆에 자리를 잡았다.      


멕시코에서 파리로 유학온 지 2년 차라는 그녀는 파리 사람들의 오만함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논쟁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단순하고 쉬운 문제를 가지고도 말을 얼마나 많이 하는지, 동네 마트만 가도 말이 많다며 아주 피곤하다고 했다. 또 얼마나 오만한지 누군가를 도울 때도 그들은 상대를 진심으로 위하는 마음보다는 자신의 도덕적 우월함과 우아함을 보이고 싶은 것이며 상대를 낮춰서 보는 나쁜 자세가 있다고 했다. 그러니 누가 도움을 주면 파리지앵은 그런 마음을 갖고 도움을 주는 것일 수 있으니 알고 있으라고 했다.     

그녀도 파리에서 2년의 세월로 쌓인 수다 실력이 만만치 않았다. 남의 험담을 들어주다가 피로감만 쌓여 지친 마음으로 수영장을 나섰다. 아- 오늘 하루 이 도시에서 내 지친 마음이 쉴 수 있는 곳은 어딜까. 


왜 뒷담화를 할까?     

당신은 어쩌면 이미 뒷담화 그룹의 주도자나, 경청하는 참여자나, 또는 그 뒷담화의 주인공 중에 한 명일 수 있다. 그만큼 사회 생활에 빠지지 않는 것이 뒷담화이다. 동조를 받는 짜릿한 카타르시스와 함께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감정을 가볍게 해소할 수 있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다수의 뒷담화는 의도적인 공격성을 내포하는 위험이 있다. 이런 종류의 뒷담화는 어두운 감정을 기반으로 하고 있으며 집단 동조를 통해 부정적인 에너지를 강화할 수 있으므로 이 뒷담화의 근본적인 욕망이 무엇인지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부정적인 뒷담화는 질투와 열등감을 기반으로 한다. 질투는 자연스러운 것일 수 있다. 번식과 생존을 위해 바로 옆에 있는 상대와 우열을 가리려고 더 나은 위치를 차지하려는 본능과도 연결되어 있으므로 진화론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질투의 감정이 위험한 이유는 자신에 대한 열등감, 현재 상태에 대한 불만족, 내가 갖지 못하는 것을 다른 사람이 누리는 모습을 볼 때 생기는 분노와 공격성이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진화심리학적으로도 사회적 비교 평가와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는 생존 본능에 연결되어 무엇보다도 강력하다.      

약한 나르시스트의 경우 자신의 감정이 질투라는 점, 열등감에 기반한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으므로 자연스럽게 자기 방어적으로 이런 마음을 숨기게 된다.      

흥미로운 것은 자존감이 낮을수록 타인의 실패를 통쾌하게 느끼는 강도가 크고 자존감이 높은 경우 타인의 실패를 통쾌해하지 않는다는 점이 각종 사회실험을 통해 확인된다는 것이다.     

뒷담화는 집단소속감을 통해 자존감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사회실험에서 무작위 그룹을 만든 후 우열 판단에 대한 설문을 하였는데, 대부분 자기가 속한 집단이 다른 집단보다 우월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을 확인하였다. 집단성이 강해지면 소속인들은 평가 기준이 객관적이지 않더라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남을 폄하하면 타인의 열등함을 드러냄으로써 오는 심리적 편안함과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하향 비교는 수동적이거나 적극적인 방법을 취할 수 있다. 전자의 경우 기사나 떠도는 소문처럼 주변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기회를 찾아내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우리는 적극적으로 남들을 폄하하거나 고의적으로 해를 끼치면서 하향 비교의 기회를 만들어 낸다. 여기에 가미되는 유머와 웃음은 타인 폄하에서 얻어지는 우월감을 극대화 한다.      


유머는 타인에 비해 자기가 우월해진 기분이 들 때 발생한다. 여기에는 자존감에 대한 위협도 관련된다. 윌스에 따르면 많은 유머가 성 기능 부진, 상사와의 불편한 관계, 인종적 열등함 등 관객이 '불안'을 느끼는 문제를 소재로 삼는다. 유머는 삶의 많은 측면에서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내 기분을 으쓱하게 해줌으로써 불안감을 덜어준다. (「쌤통의 심리학」, 리처드 스미스 저)     


집단적인 뒷담화는 몇 가지 이득을 준다. 첫째, 상대방의 자격을 박탈하려는 욕망을 집단을 통해 표출하고 그 속에서 개인이 가진 열등감과 공격성을 숨기거나 정당화 할 수 있다. 둘째, 상대방의 위치가 영원히 박탈할 수 없는 것이라면 부정적인 감정을 확산하고 공감받으면서 자기 위안을 삼는 것이다. 열등한 상태를 영원히 극복할 수 없을 것 같을 때 타인의 성공은 불공정하다는 논리를 펴기도 한다. 셋째, 타인의 열등함을 만인에 드러냄으로써 상대적인 우월감을 통해 열등감을 극복하고 자존감을 회복하는 심리적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뒷담화를 피할 수는 없더라도 그 대화의 본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가볍게 해소하는 수준인지 아니면 어두운 감정을 숨기고 확산하는 것은 아닌지. 때로, 그 대화를 들어주고 동조함으로써 누군가의 열등감과 불안 해소를 위한 희생량이 될 수 있으니 주의하자. 적당하고 최소한의 반응만 하거나, 뒷담화 하는 사람에 대하여 주의하는 분위기를 만든다면 나와 집단에 부정적인 에너지가 확산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 


다른 반응으로 뒷담화가 어떻게 다르게 흘러가는지 두 가지 경우를 경험한 적이 있다. 한 조직은 확산된 뒷담화가 사실과 다름에도 불구하고 실제인 것 처럼 큰 오해를 산 경우였다. 집단적 믿음이 커지면 그때 부터는 사실 여부가 큰 의미가 없어진다. 오해와 시기 질투가 뒤섞인 말들은 결국 당사자에게 위협이 되고 이를 보는 조직원들에게 혼란을 준다. 이는 좀더 확대해 보면 연애인들에 대한 소문과 그 고통이 자살로 이어지는 일과 같다. 

또 다른 조직은 '누구는 뒷담이 좀 많으니 조심합시다' 라고 서로 얘기해 주면서 뒷담화 문화를 경시하고 그 사람을 조심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문화에서는 에너지가 서로 지지하고 돕는 방향으로 결집이 된다. 


말에는 힘이 있다. 여러사람이 전달하는 말은 질투, 시기, 열등감 등 여러 자아가 혼재되어 어두운 괴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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