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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06. 떠나지 못하는 영국 음대 교수님

성인의 독립

와- 영국에 이렇게 화창한 하늘이라니! 흔치 않은 화창한 영국은 갑자기 다른 공간으로 이동한 것 같은 묘한 매력이 있다. 


선선한 가을 바람과 따듯한 오후 햇살, 푸른 하늘을 즐기며 런던의 하이드 파크를 산책하는 중이었다. 멈춰서서 호수에서 노니는 백조를 보고 있는데 한 노인이 말을 걸어왔다.      


‘한국에서 왔나요?’

‘네 한국에서 왔어요, 오늘 날씨가 정말 아름답네요.’     


함께 호수를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던 노인은 갑자기 아리랑을 나지막이 부르기 시작했다. 신기함과 반가움에 웃음이 났다. 이분은 런던왕립음악대학 교수이고 일본과 한국으로 피아노 리사이틀을 다녀온 적이 있다고 한다. 그때 한국의 5음계와 아리랑에 대해 알게 됐다고 했다. 매일 3시에 산책과 티타임을 한다며 같이 산책을 제안해 주셔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이날 먹은 갖 구운 스콘에 뜨끈한 잼, 밀크티는 잊히지 않는다. 음식의 불모지라는 영국에도 이렇게 그리워 할 만한 음식이 있다.      


이 교수님은 50대 중반 쯤 되어 보였는데 3살부터 피아노를 만지다가 5살부터 본격적으로 피아노를 시작하여 피아노 말고는 다른 세상을 알지 못한다고 했다. 이야기를 좀더 들어보니 음악 외에도 평생의 동반자가 더 있었는데, 바로 어머니였다. 


자신은 피아노 말고는 세상 물정도 잘 모르고 지금은 어머니가 아프셔서 옆에 있어야 하니 더욱 갖힌 세상에 사는 것 같다고 했다. 그어진 선 밖으로 발을 내밀 용기가 없어 답답하고 쓸쓸한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사람의 마음은 시시각각 변화하니 공감했던 그의 쓸쓸함은 그 순간의 것일 수 있다. 하지만, 어머니에게 갖힌 마음은 독립되지 못한 채 그의 발목을 평생 잡을 수 있다는 점은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성인이 되면 독립이 매우 중요하다. 혹자는 이 말을 부모를 저버리거나 반항하는 것으로 오해하기도 하는 데 전혀 사실이 아니다. 


인간이 태어나 온 마을의 도움으로 사회화 과정을 지나고 나면 이제 성인의 독립기로 넘어가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끊임없이 부모의 애정을 갈구하는 자아, 인정받아야 하는 자아, 순종하는 자아, 끊임없이 주거나 의지할 대상을 계속 찾는 자아 처럼 경험된 자아의 형상 속에서 계속 챗바퀴 처럼 벗어나지 못한다. 


자식이 너무 많아서 다 챙기지 못한 어미의 관심을 받으려고 분투하던 설움 많은 아홉째 막내 딸이 어머니의 장례식에서 쏟아내는 통한의 눈물은 어머니에 대한 사랑일까, 아니면 더 이상 평생동안 애정과 인정을 갈구하던 대상을 잃어버린 것에서 오는 상실감일까. 


겉으로는 모두 같은 효심이지만 내면을 깊이 보면 독립된 성인의 사랑과 의존적 성인의 사랑은 결코 갖을 수 없다. 


대상과 대상과의 관계를 옳바르게 보고 진실한 사랑의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성인의 독립기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는 부모를 떠나라는 의미가 아니라, 종속되지 않은 정신을 말한다. 


성인의 독립은 실패가 두렵더라도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는 연습, 부정적인 목소리에 대하여 멀리하거나 No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주체성이다. 그리고, 나의 페르소나를 하나씩 이해하고 본연의 나와 구분해 가는 과정이다. 성인의 정신적인 독립은 정신적인 자유를 향한 중요한 첫 걸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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