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성이 주는 힘
독일의 기차 안에 나와 마주 앉은 아주머니는 동양인이 신기하기도 하고 딸 같은 나이라 정감도 같던지 조심스럽게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독일어로 물어오는데 그 언어를 모르는 나도 왠지 알아들을 수 있었다.
“네 맞아요. 여행 중이예요.”
“한국에서 왔어요. 네 맞아요 싱글이예요.”
이 대화가 재밌었는지 옆에 앉은 독일 남자와 스위스 여성이 통역을 맡아주었다.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어디서 묶는지 나이가 한창인데 결혼해야지 이렇게 다녀도 되는지 등등 여느 한국 어머님을 만난 듯 정겨운 질문들이었다. 오래전에 남자 친구랑 헤어졌다고 하니 진심으로 안타까움도 표현해 주셨다.
네명이서 독일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정겹고 시끌벅적하게 아시아 여행객 신상 털기(?)와 사는 얘기들이 오가고 아주머니와 독일인 청년이 내렸다. 마침내 내 옆에 앉은 스위스 여성분과 본격적인 대화가 시작되었다. 이 분은 나이가 이제 막 50살이 되었었는데 그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날씬하고 큰 키에 스키니 진과 금발 숏컷으로 세련되고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녀의 결혼은 행복하지 않았다고 했다. 남편은 부유했고 여자를 사랑했다고 한다. 여자는 크루즈를 타고 다니며 세계 여행을 다니고 원하는 건 다 가질 수 있었지만, 삶은 지루했고 내 힘으로 뭔가를 하고 싶다는 갈망이 있었다고 한다. 결국 긴 결혼 생활을 끝냈지만 여전히 전 남편에게 고맙다고 했다. 그리고, 몇 년 전부터 스위스의 병원에서 근무하면서 개발팀을 이끌게 되었으며 주체적으로 돈을 벌어서 쓰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 가는 목적지는 학창 시절 첫 사랑을 만나기 위해 떠나는 길이라며 설레임이 가득한 웃음을 보였다. 얼마 전에 첫 사랑과 연락이 되었고, 그가 오랫동안 짓고 있던 집이 완성되었다며 초대받았다고 했다. 어떤 집일지 기대된다며 그가 보낸 집의 사진들을 보여줬다.
힘차게 떠나는 기차처럼 그녀가 만나고 선택할 앞으로의 인생 여정이 힘차고 새롭길 응원했다.
어떤 사람이 나와 맞는 사람일까?
결혼 적령기에 이 처럼 어려운 질문이 없는 것 같다. 앞으로 남은 최소 60년 인생이 까마득한 데 그 길을 같이 걸어갈 사람을 어떤 기준으로 고르란 말인가!
「욕망의 진화 (데이비드 버스)」에 따르면 여성과 남성은 기회 손실 정도에 따라 짝을 찾는 본능이 다르게 발달한다고 한다. 남성은 관계 이후 정자 손실량이 적고 번식과 활동의 기회 주기가 짧아서 번식의 본능이 발달하는 반면, 여성은 최소 9개월에서 5년까지 신체적 투자를 해야 하므로 지속적인 사랑과 보호를 제공할 수 있는 남성을 찾는 다고 한다. 여성은 자신과 자식의 안전을 책임질 생존에 대한 본능이 발달하였고, 이 본능에 따라 남성의 신체적 능력, 재력, 헌신과 사랑에 반응한다. 이 이론에 비추면 남자의 “예뻐?” 여성의 “돈 많아?” 라는 질문은 인류 번식을 위해 발달 된 뿌리 깊고 본능적인 반응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의 본능은 그리 단순하지 않다. 생물학적 본능은 사회적 동기와 충돌한다. 매력적이고 부유한 남자를 본능적으로 찾다가도 꿈틀대는 자아실현의 동기가 불쑥불쑥 올라온다. 미래 가능성에는 불확실성도 크기 때문에 그로 인한 두려움은 남성의 우월적 지위를 선택함으로써 안정감을 확보하고 싶은 본능을 강력하게 자극한다. 본능적인 동기와 사회적인 지향점이 충돌하면서 이랬다가 저랬다가 내 마음을 나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독일의 기차에서 만났던 스위스 여성은 남성의 보호와 사랑을 획득하여 생존의 본능은 해소하였으나, 사회적 성장 동기가 억압된 삶을 살았을 수 있다. 사회적 동기가 강한 사람의 경우, 스스로도 충분히 안전할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면 숨어있던 갈망이 더욱 선명하게 살아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나와 맞는 사람일까?‘라는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 ‘나는 어떤 성향의 사람인가’를 먼저 물어야 한다. 무엇을 원하든지 돈이 다 해결할 것 처럼 얘기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다. 각자가 지닌 삶의 동력과 불안이 다르고 성향도 다르기 때문이다. 특히 생물학적 본능보다 사회적 동기와 이성이 강한 현대시대는 더욱 그렇다.
이 것이 복잡할 때는 이렇게 자문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사람과 함께 있을 때, 내가 존중받는가? 내가 자발적이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는가?
회사생활에서 누군가의 아래에서 의존하고 지시를 받을 때와 내가 생각하고 주체적으로 움직일때의 동기와 활력은 천지차이이다. 하물며 내 삶에서야 말할 것도 없지 않을까!
스스로 돈을 벌고 첫사랑을 찾아 설레는 마음으로 떠나는 그녀 Bravo lif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