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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01. 감정이 소리를 내었다.

이성은 잠시 끄셔도 좋습니다.

산티아고를 다녀온 후 서서히 내 안의 소리를 깨워가던 중, 어느 평범한 주말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는데 몸이 이상하게 바들바들 떨렸다. 열이 나는 것도 아니기에 평소 주말 아침처럼 청소를 하는데, 여전히 떨림이 진정되지 않기에 소파에 앉아 눈을 감고 천천히 호흡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울음이 터졌다.      

갑자기 와왕- 울음이 터졌다.  내가 울고 있긴 한데 이게 나의 의지가 아니었다.      

폭발하듯 터져 나오는 통곡에 꺽꺽대는 나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놀란 내가 동시에 있었다.      

한참을 울다가 겨우 진정이 되었다. 떨림은 여전히 멈추지 않았고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다.     

눈을 감고 호흡하며 진정시키려고 애쓰며 그날은 그렇게 쉬고 다음 날이 되었다.     

주말이라 놀란 마음 그대로 좀 더 머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왜 그랬을까. 지난번에 본 영화에 놀란 마음이 튀어나왔나? 뭘까? 변화가 일어나려고 마음이 신호를 보내나? 대체 뭘까.     

잠깐 외부 볼일을 마치고 집으로 오는 길에 곰곰이 생각에 잠겨있는데 갑자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어떤 사건들이 순식간에 파노라마 필름처럼 휘리릭 휘리릭 빠르게 지나갔다.     


"두려움"의 감정이 숨어있던 지난날의 사건들이었다.     

남아선호 사상이 유별나게 강한 엄마가 '여자가 말이야!'라고 할 때마다 그런 게 어딨 느냐고 울며 반항하던 5살 꼬맹이도 보였다. 엄마가 무서워 웅크리고 울고 있었다.      


해외에서 거침없이 일하던 나의 모습도 있었다. 당당한 내 안에 낯선 환경과 압박감에 무섭다고 떠는 아이가 있었다.  무섭다고 우는 아이와 그 아이를 숨도 못 쉬게 눌러버리는 매몰찬 나도 보였다.     

"네가 아직 세상을 다 몰라서 그래. 더 거친 세상을 경험하면 아무것도 아니야! 그냥 해! 버텨!"      

맙소사. 세상천지에 나한테 제일 모진 사람이 바로 나였구나. 그동안 얼마나 감정을 눌러댔으면, 이렇게 폭발하듯이 나올 수밖에 없었을까.  


지하철역을 막 빠져나오는 중이었는데 갑자기 그 감정이 존재했던 많은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빠르게 전개되었다. 순식간이었다. 걸음을 멈췄다. 후유- 깊은숨을 뱉었다. 호흡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내 안에 있던 "두려움"이 뛰쳐나왔구나. 세상에나. 이렇게 무서운 순간이 많았다니.  

    

내가 오래도록 해 온 말이 있었다. "내 안에는 무서움이란 게 없나 봐, 느껴 본 적이 없어, 뭐든 그냥 하면 하는 거지" 이렇게 자신을 모르고 살아온 내가 기가 막혔다. 


마음의 힘이 너무 세서 내 이성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애쓰지 않고 마음이 하고 싶은 데로 두기로 하였다. 조용히 앉아서 아무 생각하지 않고 이성은 최대한 멈추고, 아주 가끔 이 말만 되뇌었다.     

”그동안 정말 미안해. 하고 싶은 말 다 하렴. “     

나는 마음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이 기회가 기쁘고 감사했다. 어떠한 생각과 의지도 버리고 마음이 느끼는 대로 내버려 두고 집중하였다.      

  

그렇게 매주 하나씩 하나씩 감정이 튀어나왔다. 두려움 다음엔 슬픔, 슬픔을 충분히 위로하고 나니 사랑, 그리고 기쁨. 여전히 바라보는 나와, 말하는 나는 분리된 상황이었다.    

각 감정은 예고 없이 격렬하게 튀어나왔고, 나타날 때마다 그 감정들이 존재했던 순간의 영상이 파노라마 같이 지나갔다. 나타난 감정을 붙들고 명상을 하면 그 줄기를 따라 땅속 깊이 뿌리까지 닿을 수 있었다. 깜깜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나타나는 뿌리들은 캐면 캘수록 놀라웠다. 내 안에 그렇게 많은 감정들을 누르고 살았다니.


우리는 인지, 감각, 감정 이 세 가지 기관을 통해 종합적인 상황 판단을 할 수 있도록 타고났는데 현대 사회는 이성이 과도하게 발달하고 감각이나 감정은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인지 능력은 자체 처리, 왜곡 능력이 있는 것이 문제이다. 내가 상처받지 않도록 방어기제로 작용하거나 내 신념이나 이익에 맞게 상황을 왜곡하는 것이다. 반면, 감정과 감각은 처리능력이 없어서 그대로 순수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 세 가지가 균형 있게 발달되어야 세상을 좀 더 명확히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매 맞는 아내의 이성은 이렇게 말한다. '그는 여전히 나를 사랑해' '그도 불쌍한 사람이야'. 이런 이성의 왜곡은 그녀의 심리적 자존심을 지키고, 버텨야 할 갖가지 이유를 만들어서 가정이나 경제적 안전지대를 지켜낸다. 하지만, 그녀가 고통스러운 감정과 아픈 감각 자체에도 귀 기울였다면 이 상황을 벗어나야 된다는 생각도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이성이 과하게 발달한 편이었고 감각과 감정을 거의 마비시킨 상태로 살다 보니 기억에 오류가 많았다. 감정들이 생생히 살아나 재조명한 과거는 나의 기억과 다른 것들이 많았다. 두려움, 화, 슬픔, 상처, 사랑, 기쁨, 재미 - 하나씩 하나씩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 주니 깊은 바닥에 있는 것까지 다 올라올 수 있도록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를 완전히 비우는 것 생각을 멈추는 것이 중요했다. 이성과 자아는 최대한 힘을 빼고 생각을 완전히 멈추고 나를 끊임없이 비우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겉으로는 일상이 똑같이 흘러갔지만, 내면은 나를 비우는 상태, 명상 상태로 더 몰입해 갔다.      

연금술사의 모래 폭풍같이 빠른 속도와 크기로 마음은 자신을 드러내었고 나도 그 마음속에 나를 완전히 던졌다. 그렇게 한 달이 휘몰아치듯이 지나가고 마침내 고요함이 찾아왔다.     


산티아고 길에서 생각의 멈춤이 영혼에 공간을 내어 주듯, 잠시 이성에게 쉴 시간을 주고 가만히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여 보자.


처음에 감정을 느껴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슨 생뚱맞은 소리인가 싶었다. 어른은 감정을 참고 사는 거지 어떻게 느끼고 사나?라고도 하였다. 이렇게 감정 느끼기가 어려운 사람이라면, 감각부터 시작해 보자. 산티아고에서 몸의 감각에 집중하며 걷다 보니 7일째 마음의 문이 열린 것과 같은 방법이다. 

몸의 감각을 집중하되 애정을 갖고 느껴 보는 것이다. 평소 무심했던 내 몸의 느낌들에 반복하여 애정을 쏟다 보면 몸을 넘어 마음에 닿는 순간이 올 것이다. 


[감각 연습]

밥을 먹을 때 혀에 밥알이 닿는 감각, 밥이 넘어갈 때 목, 위장의 느낌들에 집중해 보기

손가락이나 발목을 가볍게 움직여 보면서 근육, 피부, 관절의 움직임에 집중하기 

바람이 내 피부에 닿는 느낌에 집중하기

들숨과 날숨이 내 몸속을 지나가는 느낌에 집중하기

눈을 감고 들려오는 소리와 냄새에 집중하기


[감정 연습]

내가 지금 느끼는 느낌과 최대한 가까운 감정 단어로 표현해 보기. 감정 표현이 어렵다면 이 책의 참고란에 '감정단어'를 보고 지금 감정과 가장 가까운 단어를 선택하여 말해본다. 그리고 생각을 멈추고 내 안의 감정을 그대로 다시 느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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