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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02. 이태리, 낯선 마을에 내리다

잠시 길을 잃어도 좋습니다.

제노아 Genoa라는 낯선 도시의 골목을 걷고 있다. 이런 도시가 있는 줄도 몰랐는데 기차가 이 근처 역에서 멈추어 버렸다. 목적지가 다른데도 사람들은 흔한 일이라는 듯 별 불만 없이 내렸고 나는 어리둥절한 채로 우왕좌왕하다가 그 기차역 벤치에 앉았다.     

한적한 야외 기차역에서 바다가 보였다. 너무 작은 마을이었는지 역사는 금세 텅 비었다. 혼자 앉아서 조용히 바다를 보고 있자니 이름도 모르는 도시의 바다 내음이 설레고 신선했다. 그나마 이렇게 길을 잃은 것이 해가 쨍쨍한 대낮이라 다행이었다.      

이왕 이렇게 길을 잃은 거 즐겨보자 싶어서 그 역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 제노아에서 즉흥적으로 머물렀다.      

아무 사전 정보가 없는 도시를 발 닿는 대로 걷는 것, 이태리에 흔하디 흔한 돌길과 오래된 집들, 광장을 가로질러 가는 학생의 웃음소리조차 모두 새롭고 신선한 자극이 되었다. 특별한 목적지가 없어도 그 길 위가 충분한 여행지였다. 그리고, 제노아는 정말 아름다웠다! 

     


나는 종로의 골목을 좋아한다. 지하철 역에 나와서부터 발 닿는 대로 걷기 시작하면 자발적 길 잃기가 시작된다. 자주 오던 곳이어도 몰랐던 골목이 보이고 신선하게 느껴진다. 목적 없이 그렇게 걷다 보면 내가 바람이 된 듯, 내 마음이 마치 여행을 하듯 설레고 자유롭다.      


인생은 항상 내 맘 같지 않다. 왜 이렇게 어두운지, 언제 끝날지 두려울 때가 있다가도,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아도 술술 잘 풀리는 것이 이상하고 낯설게 느껴질 때도 있다. 


내 의지로 뭔가가 되지 않을 때는 힘을 빼보자. 마음을 비우고 길을 잃을 여유를 잠깐이라도 허락해 보자.


이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소이자 최선의 일은 매일 같이 몸을 가지런히 잘 정돈하는 것이다. 김민철 야나두 대표님은 모든 것을 잃었을 때 딱 하나만 열심히 했다고 한다. 아침에 눈을 뜨고 양치하는 것. 이 단순한 것을 매일 할 수 있는 힘이 있다면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잠시 길을 잃었다면 내 맡겨 보자. 길이 이끄는 대로 바람이 미는 대로 그저 한 걸음씩 발을 내디뎌 보면 이름 모를 아름답고 새로운 도시 제노아가 나타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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