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 얼마나 찬란하게 아름다운지!
초등학교 1학년 친구였던 도온이는 서로 알고 지낸 세월이 인생의 첫 8년을 제외한 나머지라는 것과 앞으로도 함께 쌓아갈 시간과 추억을 생각하면 정말 신기하고 귀한 인연이다. 친구가 5학년 때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 우리는 일기나 다름없는 글들을 우편으로 주고 받았고 스스로 돈을 벌기 시작한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몇 년에 한 번씩 뉴욕과 한국을 오가며 만나기 시작했다. 직업을 고민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친구의 삶을 멀리서 지켜보고 응원하는 마음은 기쁨이었다.
마침 친구가 둘째를 낳고 육아휴직을 들어간다기에, 휴가를 내고 가겠다고 하였다. 육아 경험 없는 내가 얼마나 도움이 될까 걱정도 됐지만, 힘든 순간에 한 번도 옆에 있어 주지 못했던 것이 늘 미안했던 터라 이번엔 꼭 함께 있고 싶었다.
이번에 친구를 만나기 위해 향했던 곳은 시애틀이었다. 몇 년 전부터 가족을 위한 여유 시간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친구는 뉴욕의 바쁜 삶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 원하는 것이 분명하고 추진력과 행동이 빠른 친구는 자연이 아름다운 시애틀로 이사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였다.
처음 가보는 2월의 시애틀은 바다와 산을 두루 끼고 있어서 자연 속에 작은 도시가 정겨웠고 시야가 트여 상쾌했다. 날씨는 비가 오다 말다 흐리다 말기를 반복하면서 묘하고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5일 정도 집에서 친구의 육아를 도우며 일상을 보내다가 드디어 혼자 바람을 쐬러 시내로 나갔다. 대표적인 관광지인 파이크 플레이스 마켓(Pike Place Market)과 쇼핑 거리, 커피숍, 식당을 즐기고 여유 있게 치훌리 가든 앤드 글라스 미술관(Chihuly Garden and Glass, 이하 치훌리 가든)을 방문하였다.
치훌리 가든은 유대계 미국인 데일 치훌리의 유리공예 작품이 모여있는 곳이다.
“유리는 그 어떤 재료보다 신비롭다. 특별한 방식으로 빛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예전에 경험하지 못한 방식으로 빛과 컬러에 압도되는 경험을 제공하고 싶었다.” - 데일 치훌리
데일 치훌리의 비전은 작품에서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사람의 숨과 손기술이 유리 소재의 특성과 만나 자연스럽고 오묘하게 만들어내는 작품들은 자연스러웠고, 강렬한 빛과 색감은 오브제의 생동감을 한층 살아있게 표현하였다. 사전 정보가 없어도 ‘이곳은 생명과 탄생을 이야기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을 충분히 할 수 있었다. 다만, 그것이 작품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 생명에 대한 강렬한 에너지가 나를 휩쓸고 있다는 느낌은 다른 미술관에서 경험하지 못하는 특이한 것이었다. 다른 사람의 감상은 어떤지 궁금하였는데 한쪽에 관람객의 작품 감상기를 그림으로 그려서 걸어둔 것을 보니 모두 폭발적이고 환상적인 느낌을 표현한 그림들이어서 공감받는 느낌이었다. 작품은 실내뿐 아니라 실외에도 유리로 된 꽃, 나무, 식물들이 설치되어 있어서 독특하고 환상적인 가든을 감상할 수 있다.
이날 마침 원데이 요가 클래스가 열려서 전날 밤에 예약해 두었다.
외국인들과 요가를 하는 경험은 처음이라 구석에 자리를 잡고 주변을 둘러보며 잘할 거 같은 사람을 눈여겨본다. 내 동작이 맞는지 자세를 힐끗거리며 한 시간을 정신없이 몸을 움직이고는 마침내 마무리로 바닥에 누워 눈을 감고 호흡을 정리하는 ‘사바아사나’ 에 들어갔다. 긴장이 풀어지니 머릿속 마음속 여기저기 있던 별별 잡다한 생각들이 시끄럽게 올라왔다. 그때 요가 선생님의 말씀이 들려왔다.
‘지금 올라오는 생각들은 어쩌면 중요하지 않은 것일 수 있어요. 잠시 멈추고 현재에 집중해 보세요’
‘맞아, 지금 여기 먼 곳까지 와서 보내는 이 귀한 시간에 이런 잡생각들에 휘둘리지 말고, 나에게 집중하자!’라고 생각하고 깊게 호흡을 들이마시는 순간이었다.
몸이 순간 휙 빨려가더니 내가 있는 곳은 다른 세상이었다. 순식간이었다.
우주다!
나는 깜깜한 바다와 같은 우주 속에 있었고 내 몸은 붕 떠 있었다. 너무나 경이로워서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는 중에 멀리 하얀 빛이 보였다. 놀라움과 경이로움 속에 몸을 움직여 유영하듯이 그곳에 다가가니 하얗고 투명한 무엇인가가 있었다. 우주만큼 경이롭게 아름다운 무엇이었다. 탯줄이 눈에 들어왔다. 태아였다! 그리고 그 태아가 나임을 깨닫는 순간 너무 놀라 움찔하자 순식간에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쏟아졌다.
집으로 돌아온 나를 보고 도온이가 내 눈을 가만히 보더니 말을 했다.
‘너 뭔가 달라졌어.‘
’응, 그런 거 같아‘
그 이상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어떤 단어와 문장으로 표현해야 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생명에 대하여 경이로울 정도의 아름다움에 대한 찬양, 그리고 그 아름다운 존재, 찬양의 대상이 바로 나였다는 것은 나의 자존감을 근본적으로 회복시켰다. 생명 근원에 대한 자각은 나를 넘어서 모든 생명의 존귀함을 느끼게 한다.
’모든 생명의 존귀함은 탄생 이전부터 독립적이고 완전해요. 이는 모든 생명에게 동일합니다. 어디서 어느 곳에서 태어나는 것과 상관없이 태어나기 전에 또는 태어날 때부터 이미 그렇다는 뜻이에요.‘
’걷지도 못하는 아이를 부모가 얼마나 힘들여서 키웠는데 그런 말을 하세요‘ ’아이는 의존해야 살아갈 수 있어요.‘ ’아직 아이를 안 키워봐서 모르시네, 부모님이 어떻게 키웠는지 생각해 보세요.‘ 이렇게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는데, 부모님의 양육 과정과 노고를 무시하는 말이 전혀 아니다. 영혼이 어떤 환경과 모습으로 이 세상을 만나는가와 별개로 탄생 이전 부터 근원적인 존귀함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탄생은 우주의 기적이 실현되는 순간이다. 탄생의 순간에 이미 기적은 완성되었다.
까만 우주 공간 속에 새하얗게 빛나는 경이로운 태아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고요함 속에 충만하게 가득찬 느낌. 이 상태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단어는 '사랑'이고 '참나'이다. 그리고 내가 마주하는 모든 생명이 그 아름다운 기적임을 알면 자신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이들이 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