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 영화와 아마존의 후속 시리즈를 어찌나 재밌게 봤는지. 이걸 이제야 보다니!
<반지의 제왕>에서 사우론 Sauron은 눈(the Eye)으로 등장하는데, <The Lord of the Rings>는 그 이전에 인간의 모습을 한 사우론의 서사이다. 사우론은 부하 아다 Adar의 배신 이후, 홀홀 단신 세상을 떠돌게 되는데, 그는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니다. 사람들의 (선하든 선하지 않든-) 열망이 그의 동반자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여전사 갈라디엘 Galradiel의 열망은 '사우론이 세상을 정복하는 것을 막는 것'이었는데, 그녀는 이 열망에 가득 차 누메노아 Numenor 부대를 전장으로 끌어내어 크게 자멸하고 만다. 장인 캘레브림보 Celebrimbor의 열망은 '재능을 가진 자로써 완벽한 반지를 만들어 엘프를 구원하는 것'이었다. 완벽한 물질을 만들어 보여주겠다는 열망이 앞서, 그의 모든 지혜와 인력을 쏟아붓고 마침내 사우론이 원하는 반지를 만들어낸다.
사우론의 열망은 '어둠 속에 세상이 영원히 평온한 것'이다. 어둠 Darkness 만 빼면 '세상의 영원한 평온'은 모든 선한 자들의 열망이다. '선한 것을 위해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칠 준비'가 된 이들은 이 모호함에 빠지는 찰나에 판단력을 잃고 사우론에게 모든 것을 기꺼이 바친다. 물론, 자신이 그런 상태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한다.
나의 흥미를 화락 사로잡았던 것은 사우론이 세상을 정복하는 방식은 엄청난 마법이 아니라, 선한 자들의 열망을 역으로 이용한 심리전이었다는 것이다. 영화를 본 후 느낀 점을 정리해 본다.
1. 방향을 잃는 순간, 자멸한다!
방향은 어디를 향해갈지 미래에 대한 비전인데, 얻고자 하는 것은 이미 지금 여기에 존재하고 있으며, 이를 마음과 행동으로 증명해야 한다. 간달프 Gandalf는 기억을 잃은 상태에서, 선과 악의 갈림길을 반복적으로 마주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가야 할 길보다 친구 노리 Nori를 보호하는 것을 선택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선한 마법사로 거듭나게 된다. 엘론드 Elrond 역시, 엘프족의 미래가 달린 중차대한 일이니 급히 밀어붙일 수도 있었지만, 돌아가더라도 친구와의 신의를 우선으로 하여 그 과정 속에 더 단단해진 우군까지 얻는다. 안위, 풍요, 평화를 미래에 얻기를 바라며, 현재의 소중한 가치를 아주 잠깐 희생하는 찰나- 자멸한다.
이 스펙터클한 스토리는 우리 삶 속에도 다양하게 펼쳐진다. 미래에만 시선을 두고, 현재를 희생하는 순간들은 부지기수이지 않는가. 영화는 이렇게 방향을 잃어버린 자들을 드러내고, 미래의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현재의 그것을 귀하게 여기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의 씨앗이 없으면 나중에도 없으니 당연한 말이다. 그러나, 우리 삶의 경험은 그 당연한 것을 잊기가 더 쉽다는 것을 영화보다도 더 여실히 보여준다. 찰나에 일어나는 조급함, 유혹, 질투, 욕망, 분노, 슬픔, 두려움들이 바로 사우론의 휘익- 채어갈 맛난 먹잇감이리라.
2. 연약함을 인정하는 자가 다시 일어난다.
갈라디엘이 방향을 잃은 내면의 분노를 마주하고 재기할 때, 켈레브림보가 후회와 슬픔을 꺾이지 않는 용기로 전환할 때, 그들은 모두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함으로써 더 큰 힘으로 일어나게 된다. '빛 The Light 이 어둠 The Darkness를 이긴다'는 믿음 앞에 개별적인 자만과 열망을 내려놓고 연약함과 부족함을 드러내는 장면들은, 종교적인 색채가 짙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삶이 흐른다는 것을 깨달은 어느 때부터, 나의 기도가 나의 연약함을 드러내는 것으로 바뀌었을 때, 나는 자유와 평화를 경험했다. 그래서, 이 장면들에 감정 이입이 되었다. 나의 평화가 또 다른 힘으로 전환될지는 더 경험해 봐야 할 것 같다. 마치, 엘프라도 된 것처럼 바라보건대, 빛 안에 더 큰 힘으로 일어나길. 그렇기 위해 지금 가진 사랑, 기쁨, 평안을 놓지 않기를.
3. 방해하는 목소리들은 늘 존재한다. 고요하라.
누메노아의 여왕 미리엘 Miriel은 전투 이후 누구와 손을 잡고 무엇에 대항해야 하는지 목적을 선명하게 알게 되지만, 국민과 반역자에 의해 왕관을 내려놓는다. 아다 역시 그를 의심하는 부하에 의해 살해된다. 스스로도 오락가락하는 자들이 무엇이 옳고 좋은 것이다라고 외쳐대는 통에 마음뿐 아니라 삶이 혼란스러운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미리엘은 파도 속에서 고요함을 잃지 말라고 말한다. 그것이 전투 속에 우리가 시험받는 유일한 것이라고 말이다. 갈라디엘이 죽음의 전장으로 뛰어들 때, 켈레브림보가 반지를 완성할 때, 사우론은 힘과 용기를 주는 동반자로서 함께 한다. 아마, 영혼의 전쟁에서 위대한 사기꾼 Great Deciever (켈레브림보가 사우론을 칭한 말)을 분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달리는 전장에서도 고요할 수 있는 힘, 그 고요함 속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