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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3. 대화

아침에 남편과 대판 싸우고, 하루를 쫄딱 굶었다.


엔지니어인 그는 어떤 것이든 Yes, No의 알고리즘과 뒷받침할 논리의 연결점이 사소하게라도 비거나 모호한 것을 못 참는다. 반면, 빠른 일처리가 강점이었던 나는 대세에 지장이 없다 싶으면 이해가 되지 않아도 그러려니 지나간다.


끝없이 "왜?"라는 말을 던지는 그에게, 그 질문들의 최종 목적이나 의도가 대체 뭐냐고 물었다. 짜증으로 잔뜩 격양된 상태였다. 그리고, "목적은 없어. 궁금해서, 알고 싶은 거지"라는 대답에 폭발하고 말았다. 그게 뭐가 중요한데!!! 왜 계속 묻고 또 묻는 건데!! 나도 모른다고!!!


그 말에 그가 답했다. "아, 모르는구나. 모른다고 하면 되는 거였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지라고 하면, 잘 모른다는 걸 알 수 있지 않아? 그럼, 질문을 그만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니지, 모른다는 말을 하지 않았으니까 알 수도 있는 거지. 모른다고 했으면 그만했지"


아, 맙소사! 이 사람은 나와 달라도 너무 다른, 그냥 다른 종족이구나!!

도대체 뭘 위한 의미 없는 대화냐며, 나는 참았던 짜증이 터져나와 길길이 날뛰었고, 하루 종일 마음이 좋지 않아 먹을게 들어가질 않았다. 순수한 탐구 정신(?)으로 질문을 던지던 남편은 급발진 폭탄을 얻어맞고 억울하고 슬픈 마음에 밥을 굶으셨다.


낮의 불같은 마음은 서늘한 저녁이 되니 기세가 낮아졌다. 그제야, 상처를 준거 같아 서로 마음이 짠하여 어찌할지를 몰랐다.

두 시간쯤인가, 긴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서 해소가 되었을까?

여전히 잘 모르겠다. 그도 아직은 나를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다고 한다.


다만, 이건 알게 되었다. 나의 '왜'는 목적에 대한 것이고, 그의 '왜'는 사실에 대한 말이다. 나의 듣기는 화자의 숨은 의도도 함께 찾는 일이고, 그의 듣기는 화자가 표현한 만큼만 인지하는 것이다.

나는 목적이 먼저 있어야 하고 그 목적에 도움이 되는 것 외에는 에너지를 잘 소비하지 않는다. 남편은 과정의 명확성이 중요한 사람이다.


가벼운 일상어 속에도, 한 인간의 역사가 녹아있구나. 하나 배웠다. 그렇다고 뭐, 해답은 잘 모르겠다만.


남편에게,

당신의 '왜'는 이해 못했지만, 이 마음만큼은 선명해.

미안해.

앞뒤 없이 또 건너뛴 건가?

마음이 생기는 프로세스는 나도 모르겠어.

근데, 어쨌든 그래.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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