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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2. 내가 있는 곳

자연을 좋아한다. 자연과 닿아있지 않으면 생기를 잃으니 전생에 나무였을지도 모른다. 바다, 산, 나무, 최소한 풀이라도 내 눈이 닿는 곳에 있으면 기분이 좋다. 물속을 첨벙하거나 산을 오르고 있으면 온몸이 살아나는 느낌이다.


노르웨이의 산속에서 깊이 호흡을 하다가 내쉬는 숨에 '후우- 아아, 살겠다!'는 외침이 저도 모르게 튀어나와서 웃었다.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 아하, 나는 자연과 함께 있어야 사는구나.


'차도녀인 줄 알았는데 의외네?' 종종 듣던 말이다. 한강 남쪽에서 태어나서 40년 훌쩍 넘게 도시에 살았고, 20년 직장 다니는 동안은 빽빽한 고층 빌딩 속에 있었으니, 그런 소리가 이상할 것도 없다. 그러나, 겪어온 환경을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강남이 개발되기 시작할 때 아파트 뒤로 아직 남은 논밭에 물이 얼면 썰매를 탔고, 골목골목에 아이들이 모여 뛰어나디며 제기도 차고 삼팔선 놀이도 했다. 서울은 산이 많은 복 받은 도시라서, 주말이면 어디든 산에서 뛰어놀 수가 있었다. 도시에서도 자연을 벗하여 살 수 있었으니 운이 참 좋았다.


나이가 더 들면 산이든 바다든 자연 속에 언제든 쏙- 들어갈 수 있는 곳에 살아야겠다고 결심하고 장기적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은 생은 이리 살기를 소망했다. 사랑 많이 받고 살기를, 자연과 함께 하는 일상이기를, 나의 사소한 말과 행동이 우연히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를.


그러다가, 어느 날. 짠- 하고 나타난 남자를 따라 호주로 와서 아름다운 자연을 보고 사랑하며 살게 되었다.


인생은 알 것 같기도 하다가 전혀 알 수 없는 것도 같다.


삶의 굴곡이라는 것, 지금 있는 곳이 내리막인지 오르막인지는 내가 판단할 수 있는 범위 밖에 있는 것이 아닐까. 좌절과 기쁨은 인간 마음에 찰나의 스침일 뿐, 신의 세상에서는 그저 흐름 속에 하나 일뿐이지 않을까. 그저 순간들을 충만하게 느끼고 감사함으로 답하는 것, 굴곡 속에서도 사랑의 마음을 지키는 것이 나의 유일한 의무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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