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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9. Having

조심스러운 말이지만. 아주 미묘하게 세상이 나에게 귀 기울이고 있는 것 같을 때가 있다.


황홀한 감각 - 시드니 출장 중 숙소를 Manly beach 앞에 잡은 적이 있다. 하루는 출근 준비를 다 마친 후, 동이 트는 아침 바다로 나갔다. 손에 들고 있는 커피의 온기, 귀를 가득 채우는 바닷 소리, 바람이 몸을 휘감고 스쳐가는 감촉이 하모니를 이뤄, 비현실적으로 행복한 느낌을 주었다. 5분도 안 되는 그 짧은 순간의 황홀함은 20년 동안 잊히지가 않는다.


기쁨의 춤 - 온몸이 전율할 정도의 기쁨과 감사를, 아이러니 하게도 아주 어두운 시절에 느낀 적이 있다. 집이 IMF로 쫄딱 망해서 어른들의 울음과 혼돈, 분노가 가득찬 집에서 나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았다. 돈을 벌어야겠다고 아르바이트를 일찍 시작했는데, 할 줄 아는 게 뭔지도 모르니 일단 나를 세상으로 밀어붙였다. 야간 서빙을 하고 아이들을 가르치고 밥집 알바도 해 보니, 어디론가 이동할 수 있는 다리와,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팔과, 손님에게 인사를 건네고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는 목소리를 가진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건강한 신체가 있다는 것이 너무 소중해서 나는 신과 세상에 감사와 기쁨을 올렸다. 그 마음에 기뻐서 춤을 추듯 뛰어다닌 적도 있었다. 피곤에 절어 수업시간에는 매일 졸면서도 흘러넘치는 기쁨과 감사는 멈출 줄을 몰랐다.


나는 노년에 강원도 원주에 살 계획이 있었는데, 서울과 동해바다, 그리고 산이 모두 1~1.5시간 내에 닿을 수 있어서, 파도의 에너지, 산의 포근함, 사람의 움직임을 원하는 때 만끽하며 살 수 있는 거리상 완벽한 장소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시드니 Manly beach에서 충만했던 5분, 나에게 팔다리가 있다는 것에 기뻐 춤을 추던 그 날, 자연과 도시의 균형 속에 나의 정신이 온전 삶을 살수 있는 환경, 그 미묘한 균형점을 찾던 바램들은, 자연과 도시가 공존하는 시드니로, 다시 나 하나로 시작해야 하는 도전 앞으로 나를 데려왔다.


반대의 시간도 있다. 불만과 불안이 가득 차 오를 때, 기쁨 없이 분노를 누르며 일로만 빠져들때, 점점 더 높아지고 가진 것들이 많아지는 데도 불안과 불만이 가득차 '더 많이! 더 열심히!' 달렸고, 결국 무너졌다.


평온과 기쁨이 가득한 순간이 삶의 원형이 된다.

불안과 불만이 가득한 순간은 무너진다.

미묘하게 나에게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아서 신기하고, 조심스럽다.


태양은 매일 아침 떠오른다. 비로 땅에 내려온 물이 하늘에 구름으로 순환한다.

나도 삶의 순환 속에 흐르고 있는 것. 끝도 결론도 없다. 세상 기준의 좋고 나쁨의 구분도 없다.


그 순간에 보석 같은 기쁨들을 찾아내어 만끽하는 것. 그것이면 된다.


지금 이 순간의 보석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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