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가고 싶은 그때
나는 7살 때까지 역곡역 근처에 있는 반지하 빌라에 살았다. 그때 당시 나는 매우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우리 집안 형편이 힘들다는 걸 알지 못했다. 그저 우리 부모님은 용돈을 주지 않는 사람이라 학교 앞 300원짜리 컵 떡볶이를 사 먹지 못한 거라고 생각했다.
아빠는 어린 오빠와 나 그리고 사랑하는 엄마를 두고 해외로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 당시 엄마 아빠는 빚을 갚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해외에 있는 아빠 몰래 엄마는 일식집 서빙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5살 7살 두 어린아이는 매일 밤 엄마가 끝나는 시간만을 기다리며 종종 엄마가 일하는 식당 앞으로 마중 나가기도 했다. 엄마는 우리에게 밤에 어둡고 무서울 테니 식당 앞으로 오지 말라 했었다. 나는 굴하지 않고 오빠와 엄마가 끝나는 시간만을 기다리며 마중을 나갔다.
하지만 직장 사람들이 안 좋게 볼까 봐 찾아오지 말라는 속 뜻을 알게 되면서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 싶었다.
#여름기억
오빠와 나는 유치원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너무 심심했다. 저녁 먹을 시간이 되면 같이 놀던 친구들의 부모님은 그만 놀고 저녁 먹을 시간이라고 여기저기서 아이들을 불러들였다. 하지만 나는 늘 친구들과 놀던 그 자리에 혼자 덩그러니 남겨졌다. 엄마가 쉬는 날 나는 여느 날과 다를 바 없이 집 앞에 놀러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나날들이 많았던 작은 나는 ‘오늘은 내가 이 빗속에서 홀딱 젖으면 엄마가 날 찾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염없이 그 비를 맞으며 서있었다. 정확히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집에 있던 엄마는 밖으로 나와 비에 젖어 있는 나를 데리고 집에 들어왔다.
#겨울기억
눈이 내리는 추운 겨울밤이었다. 엄마를 기다리다 단잠에 빠져있던 나는 집 전화기 벨 소리에 깼다. 밖에 눈이 펑펑 내리니 같이 눈을 맞자는 엄마의 전화였다. 자고 있는 오빠를 뒤로하고 나는 엄마를 만나러 나갔다. 역으로 가는 집 앞에는 아주아주 높은 언덕이 있었다. 엄마와 나는 눈이 소복이 쌓인 언덕 위를 이리저리 구르며 무척 행복해했다. 매월 엄마는 월급을 받고 어느 정도의 빚을 갚은 뒤 남은 돈으로 오빠와 나를 데리고 삼겹살 집으로 향했다. 세 식구만의 근사하고도 소박한 외식이었다. 엄마는 삼겹살에 술 한잔을 곁들였다. 그렇게 삼겹살로 배를 채운 후 우리는 노래방으로 향했다. 코스로 보면 외식에 한 획을 그은 회식이었다. 아주 어릴 때여서 어느 기간 동안 이어진 외식인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그렇게 들르던 노래방은 어느덧 우리의 단골이 되었다. 주인아주머니께서도 우리의 사정을 아시게 되었고, 어린 나와 오빠를 위해 선물을 자주 주시곤 했다.
세상의 모든 둘째들의 공통사항 바로 위에 있는 형제의 물건들을 물려받는 것. 늘 새것을 갈망하는 것. 둘째만의 고통이라고 할 수도 있다.
겨울 어느 날 엄마는 시장에 있는 신발가게에 나를 데려갔다. 그곳에서 나에게 스웨이드 재질에 발목보다 조금 더 위로 오는 부츠를 하나 사줬다. 새것을 받았다는 것에 매우 기뻤다. 스웨이드 재질 특성상 물에 젖으면 안 됐다. 엄마는 나에게 ’ 이거 신고 눈에 들어가면 젖으니까 쌓여있는 눈에 들어가면 안 돼 ‘라고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는 엄마가 출근한 후 새 부츠를 신고 집 앞에 눈이 쌓여있는 곳에 들어가 눈을 밟으며 놀았다. 다 놀고 눈이 없는 곳으로 나온 나는 마음이 초조해졌다. 엄마 말대로 부츠가 눈에 젖어 거멓게 티가 났다. 퇴근 후 집에 돌아온 엄마는 내 신발을 보고 눈에 들어갔냐고 물었다. 엄마에게 혼날까 봐 겁이 났던 유치원생 나는 안 들어갔다고 순수하고도 멍청한 거짓말을 했다.
나는 기억력이 매우 좋은 편이다. 그래서 어렸을 때 역곡에 살 때 있었던 에피소드들이 또렷하게 생각난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그 기억들이 너무 아파서 매일 밤 울며 잠에 들었다. 가끔 나는 이런 기억들에 갇혀 있는 건 아닐까? 몸은 계속 자라나고 나이는 늘어나는데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반면 오빠는 아빠 없이 셋이 역곡에서 살던 그때 일들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했다. 어느 글에서 읽었던 말이 있다. 행복한 기억들은 오래 남고 잊고 싶은 기억은 기억을 못 한다고. 너무나 당연한 말이겠지만 오빠는 역곡에 있었던 때의 일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내 기억 속에는 또렷이 남아있어서인지 막이 없이 이어지는 2부작 연극과도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 역곡에서의 행복했던 기억을 아빠 앞에서는 한 번도 꺼내지 않았다. 내 인생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아빠는 그곳에 없었으니까.. 분명 씁쓸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아파올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