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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뺑그이 Jan 22. 2024

한 번 떠나면 잘 돌아오지 않으니까

"사장님!"


바쁘게 서빙을 하는데 여직원이 소리쳤다. 여직원은 수화기를 흔들면서 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고 불길함을 감지한 나는 얼른 카운터로 갔다.


"네, 전화 바꿨습니다."


"사장님이세요?"


냉기가 감돌았다.


"네,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나요?"


"제가 웬만하면 전화를 안 드리는데요."


"아, 네..."


"아니, 족발을 새우젓, 쌈장, 양파장도 없이 보내시면 도대체 어디에 찍어 먹으라고 이렇게 보내신 거죠?"


"아이고 정말 죄송합니다."


"그리고 막국수는 서비스라고 적혀 있던데 예초에 서비스라고 안 했으면 따로 시켰을 거 아닙니까? 이게 다 어떻게 된 거예요?"


"아이고 직원들이 바쁘다 보니까 정신이 없어서 깜빡 빠뜨렸나 보네요. 얼른 챙겨서 보내 드리면 안 될까요? 정말 죄송합니다."


"네, 빨리 보내주세요. 배고파 죽겠으니까."


"네, 알겠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뚜뚜뚜뚜......"


"아이고... 머리야... 거 좀 잘 챙기래도... 누가... 또... 하아...... 바빠 죽겠는데"


난 짜증스러운 말투로 혼잣말을 하면서 배달 접수를 하기 위해 마우스를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사장님이 빠뜨린 거 아니에요?"


옆에서 통화를 듣고 있던 여직원이 대뜸 내게 쏘아붙이듯이 말했다. 내가 고개를 휙 돌리니 그 옆에 또 다른 직원 하나는 아예 팔짱을 끼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날 노려 보았다.


"너네 왜 그렇게 봐? 어이가 없네."


"사장님! 사장님이 아까도 주먹밥 빠뜨린 거 제가 찾아서 넣었고요. 또 콜라 빼먹은 거도 제가 찾아서 기사 출발 전에 겨우 넣었고요. 기억 안 나세요? 이번에도 범인은 사장님인 거 같은데요."


"그 거는...... 내가 배달 기사가 픽업하기 전까지 다 포장한 거라도 마지막까지 꼼꼼히 확인하라고 한 걸 너네가 잘 지키고 있는지, 아닌지. 내가 테스트한다고 일부러 안 넣고 지켜봤던 거라고. 진짜야!"


직원들이 날 보며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됐고! 다들 배달 포장 더 신경 ! 그리고 다 된 거라도 한 번 더 꼼꼼하게 살펴보고 그래!"


겸연쩍으니 괜히 큰소리치고는 바쁜 척 가게를 두리번거렸다.


"사장님만 조심하면 돼요. 제발 집중 좀 하고 일하세요! 집중! 집중! 배달비 아깝지도 않으세요? 어휴......"


"이번엔 나 아니래도!"


"사장님 맞거든요!"


내가 말은 내가 아니라고 부인했지만 내가 생각해도 내가 빠뜨린 거 같았다. 왜냐면 직원들은 다 일을 잘하는데 내가 일을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가게에서 제일 오래된 사람인데 내가 일을 제일 못한다. 물론 내가 잘하는 것도 있다. 주로 힘을 쓰는 일인데 무거운 걸 나른다던지 족발을 삶는다던지 여러 잡다한 것들과 전자제품들이 고장이 났다던지 하수구를 뚫는 다던지 혹은 손님들과 농담 따먹기를 하면서 친밀감을 교류하는 일들은 내가 잘한다. 하지만 배달 포장과 주문받기는 내가 잘 못한다. 배달 포장을 하면 뭘 잘 빼먹고 주문을 받아오면 손님이 뭘 주문했는지 포스기에 입력을 해야 주방에서 조리가 시작되는데 난 손님이 뭘 주문했더라 멍해지기 일쑤다.


"사장님 13번 테이블 혹시 주문받았어요?"


"어? 13번 테이블? 아! 받았지..."


"입력 좀 바로바로 하세요! 주문이 뭔데요?"


"내가 안 찍었어? 아...... 뭐였지... 다시 물어보고 올게"


"집중하고 일하세요! 집중! 집중!"


내가 주문을 다시 확인하러 가면 직원들이 뒤에서 낄낄거리곤 한다.


난 어릴 때부터 그랬다. 가장 큰 요인으로 난 쓸데없는 잡생각을 너무 많이 . 우주도 떠올리고 아까 읽은 신문기사나 글들도 떠올리고 왜 생명 유지를 위해선 생명을 먹어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도 멍하니 잡생각을 할 때가 많다. 더군다나 요즘 학원에서 작곡을 배우다 보니 그 증세는 더 심해졌다. 가게에선 늘 음악을 틀어놓는데 음악을 들으면서 이 노래 구성은 이렇구나. 나도 이런 노래를 만들어볼까. 드럼은 이렇구나. 베이스는 저렇구나.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늘 리듬을 타고 있다.


친구가 그랬다.


"너 내가 방금 뭐라 그랬어?


"어? 뭐랬는데?"


"제발 대화에 집중 좀 해!"


군대에 가서도 그랬다.


"백일병! 내가 방금 뭐라고 그랬지?


"잘못 들었는데 말입니다."


"이 자식이 또 집중 안 하지? 대가리 박아!"


연애를 하면서도 그랬다.


"오빠 내가 방금 뭐라 그랬어?"


"응 나도 널 사랑해."


"또 얼렁뚱땅...... 대화에 집중 좀 해!"


잡생각이 많아서 집중력이 취약한 나는 물건도 정말 많이 잃어버렸다. 열쇠를 자주 잃어버렸고 보온 도시락, 실내화 주머니, 교과서, 공책, 필통, 리코더, 체육복, 가방 하여튼 몸에 소지한 건  번 이상씩은 다 잃어버리고 다녔다. 신고 있던 한쪽 신발이 없어져서 깨금발로 집까지 가기도 했다.


나이가 들어서도 마찬가지였다.


핸드폰은 하도 잃어버리니 나중엔 중고폰 매장에서만 폰을 샀다. 그리고 핸드폰을 낚싯줄로 바지 벨트와 묶어서 다니기도 했고 목걸이를 해서 목에 걸고 다니기도 했다. 그런 날 보고 약간 모자란 놈 취급을 하며 놀리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노력에불구하고 핸드폰은 희한하게 없어졌다. 지갑도 하도 잘 잃어버려서 호주머니에 현금과 카드를 꾸깃꾸깃 들고 다니니 예전 여자친구나 지인들은 내 생일 선물로 지갑을 선물해 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다음 해 내 생일이 되면 난 또 누군가에게 새로운 지갑을 선물 받았고 그걸 또 잃어버렸다. 그래서 나중엔 지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지갑은 그냥 집에 모셔두고 그냥 현금과 카드를 꾸깃꾸깃 들고 다녔다. 그리고 한 번에 모두를 다 잃어버리지 않게 돈과 카드를 여러 호주머니에 분산시켜서 넣고 다녔다. 그래서 예전에 입었던 옷에서 돈을 발견하거나 세탁기 투어를 마치고 흐리멍덩해진 지폐를 들고 운 좋게 공돈 생겼다고 좋아할 때도 많았다. 따지고 보면 어차피 내 돈인데 멍청하기 짝이 없다. 맞다. 차를 잃어버린 적도 있었다.


자주 잃어버리다 보면 단념이 되게 빨라진다. 많은 분실의 역사를 통해 스스로 체험하고 학습을 해왔기 때문에 빠른 단념이 스스로를 덜 힘들게 하는 것임을 깨닫되는 것이다.


사람도 그랬다.


어려서부터 미련을 빨리 버리는 학습을 해왔던 나여서 그런지 곁에 있던 사람을 잃어버리는 일이 생기게 되면 단념을 되게 빨리 하게 되었다.


어릴 땐 친구들이 참 많았는데 작년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부고장을 돌릴까 말까 카톡에 친구목록을 뒤적이면서 느끼게 되었다.


난 참 많이도 잃어버리는 삶을 살았던 거구나.


그러면서 하나를 깨닫게 되었다. 사람도 물건도 돈도 사랑도 안 잃어버리려면 항상 잘 챙겨야 한다는 사실이고 또 깨달은 하나는 잃어버린 물건들에게는 연락처가 없지만 잃어버린 사람들에겐 연락처가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난 설령 답이 오지는 않더라도 보고 싶은 혹은 미안했던 사람에 단체 새해 안부 메시지인척 카톡 메시지를 보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답장이 올 것 같은 사람들은 답장이 왔고 답장이 안 올 것 같은 사람에게서는 답장이 안 왔다. 단 두 명만 제외하면 말이다.


한 명은 평소 반말을 했던 사이임에도 '고맙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답장이 온 걸로 보아 내가 누군지 모르고 그냥 형식적으로 답장을 한 것 같았고 또 한 명은 되게 장문으로 왔는데 아무래도 딴 사람이랑 착각을 한 듯 생뚱맞은 내용들이었다.


'어? 답장하네?'라고 다시 톡을 보내니 둘 다 1이 사라졌음에도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다 며칠이 지나고 답장이 온 두 사람 중 후자인 장문의 답장을 쓴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난 그가 술에 취했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게 얼마만의 통화인가. 맙소사 12년 만이었다.


"뭐 하노!"


퉁명스럽지만 정겹고 참 그립던 말투였다.


"뭐 하긴 집이지. 술 뭇네?"


난 12년 전처럼 대꾸했다. 


"그러니 전화했지. 술 안 먹었으면 전화 안 했지. 아하하하!"


"잘 사나?"


"이 새끼 목소리 여전하네. 어제 통화한 거 같노. 하하하"


우린 거의 한 시간을 통화했다.


초등학교 6학 년 때부터 친한 친구인데 내가 우울증에 걸렸을 때 날 도와주고 날 챙기고 어려워진 사정을 알고 쓰라며 마누라 몰래 모은 비상금이라며 선뜻 700만 원을 내민 친구였다. 당시의 난 모두가 날 비웃고 비난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난 스스로를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자책했었다. 그러면서 친구에게도 모진 말들을 쏟으면서 사이가 틀어졌다. 한 시간을 통화하면서 친구가 말하길 친구는 그 당시에 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나서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한다고 해도 그 사고를 낸 사람을 탓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 정도로 힘든 시간들을 보냈었다고 했다. 그래서 자주 술을 마셨고 취한 김에 나에게 푸념을 한 번씩 했는데 내가 거친 말들을 쏟아내자 너무 큰 섭섭함을 느꼈다고 했다. 난 내가 제일 힘들다고만 생각했지 친구가 요즘 어떤 지 잘 챙길 여력이 없었다. 난 잘 챙기지 고 내팽개쳐서 친구를 잃어버린 것이었다.


난 미련 없이 단념을 빨리하는 것이 쿨한 사람이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다. 그런 척도 많이 한 것 같다. 그러면 내가 덜 힘들 거라고 착각도 했다. 하지만 난 지난 시간을 자주 돌아보고 미안해하고 후회하는 쿨한 것과는 거리가  사람이었다.


나와 인연이 닿은 많은 사람들과 내가 소지하고 있는 것들을 모두 소중히 여기고 잘 챙겨야겠다. 후회를 하지 않고 살 수는 없지만 일 잘하는 우리 직원들의 가르침대로 포장할 땐 포장에 집중! 주문받을 땐 주문에 집중! 사람을 대할 땐 그 사람에 집중! 대화를 할 땐 대화에 집중! 다른 사람의 마음도 아픔들도 잘 챙겨야겠다.


한 번 떠나면 잘 돌아오지 않으니까.


그리고


어차피 사람들은 모두가 다 떠나기 마련이다. 우린 결국 모두가 헤어짐을 맞이해야 하는 순간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 떠나보내야 하면서 후회하지 않도록 떠나야 하면서 크나큰 미련은 남지 않도록 감사해 하며 소중히 여기고 챙기 살갑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하는 요즘이다. 


그건 아빠로부터 배우게 되었다. 

요즘은 사람들 만나면 진심으로 부모님은 잘 계시냐고부터 묻게 된다. 정말 그게 너무 걱정이 되기 때문이다. 행여나 상을 치르거나 하면 난 꼭 참석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해서이다. 


아빠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 주고 떠나셨구나 하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배민 리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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