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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뺑그이 Feb 14. 2023

나는 개다

사람들이 예쁘다고 하면 동진이는 고맙습니다 했다. 사람들이 뭐예요. 하면 푸들이라고 했다.  한 번만 만져 봐도 돼요?라는 말만 말아주길 바랄 뿐이었다. 


사람들 말로 나는 푸들이었다.


나는 동진이와 산책하는 걸 좋아한다. 그런데 동진이는 가끔씩 귀찮아한다. 그럴 때면 나는 1단계 현관 앞에서 처량하게 낑낑거렸다. 2단계는 목줄을 물어다가 동진이 근처에 슬쩍 들이밀었고 그럼에도 '오늘은 좀 봐주라' 하면서 이불을 돌돌 말면 침대 위로 올라가서 으르렁거리다가 후다닥 거실을 한 바퀴 휘젓고 다시 침대 위로 점프해서 올라 가 으르렁거렸다. 그래도 버티면 그때부턴 얼굴을 핥으며 귀찮게 하다가 최후의 수단으로 짓었다. 그래도 이불속에서 꿈쩍도 안 하면 한숨을 푹 쉬고 체념했다.


체념이 하루 이틀 사흘이 되면 난 어쩔 수 없는 결단을 내려야만 했다. 동진이가 일어나서 첫 발을 딛는 곳과 출근 전 양말을 신는 곳에 오줌 지뢰를 매설했다.


오줌을 밟고 욕을 하는 동진이에게 최대한 주눅 든 모습을 하고 식탁 밑에 찡 박혀 있으면 동진이는 또 금세 마음이 약해진다는 걸 나는 알았다. 지뢰를 밟으면 '산책 안 나갔다고 심술이 단단히 나셨네. 그래도 그렇지. 오줌을 저기다 싸면 어떡해. 내가 응? 너 사료값 번다고 얼마나 고생을 하는데 특식이고 뭐고 안 줘야겠네. 너 또 여기다 오줌 살 거야? 누가 여기다 싸래. 누가.' 오줌 닦는 동안 쉴 새 없이 나를 갈궜다. 나도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사흘 내내 동진이도 집에만 꼼짝없이 갇혀 있어 본다면 아마 내 심정을 이해할 것이다. 


겨우겨우 동진이를 끌고 나오면 우린  바로 옆에 있는 공원으로 산책을 갔다. 나는 코스가 딱 정해져 있어서 그쪽으로 가는 게 좋은데 동진이는 짜증 나게 자꾸 새로운 길을 개척하려고 했다. 서로 가고자 하는 길이 엇갈리면 팽팽하게 기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동진이는 코가 발달되질 않아서 왜 내가 늘 같은 코스를 고집부리는지 잘 모르는 눈치였다. 코스로 가면 전봇대, 화단, 나무, 돌, 난간 같은 공통된 포인트마다 개들이 오줌으로 갈겨쓴 방명록들이 있다. 거기를 쭉 코로 찬찬히 읽으면서 누가 왔었는지 확인하고 나도 잘 지낸다고 방명록을 남겨서 서로 자주보지는 못해렇게나마 안부의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기 때문에 고집을 부린 거였다.


집 옆에 공원은 개들이 산책을 엄청 많이 나오는 핫플레이스였다. 나는 이곳으로 이사를 와서 그 점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여기 오기 전에 살던 곳은 시장 근처 주택가에 있는 원룸이었는데 거긴 미친 고양이들이 너무 많았다. 너무 스트레스였다.


"오드리. 오드리. 이리 와. 목줄 해야 나가지. 얼른."


일부러 바로 안 가고 뜸을 좀 들였다. 보채는 게 재밌었다.


"목줄 빨리 안 하면 안 나간다? 낑낑거리면서 조를 때는 언제고 꼭 나가자고 목줄 하자면 저게 꼭 고집부리네."


난 품으로 점프해서 쏙 파고들어 목을 내어주었다. 현관문을 열었다. 현관문이 열리면 내 온몸에 채워진 사슬이 다 풀려 나가는 황홀함을 느꼈다.


"날씨가 좋네요. 날씨가 좋아요. 오드리씨 날씨가 참 좋지요?"


뭐래? 난 들은 척도 안 하고 열심히 방명록의 흔적을 뒤지기 바빴다. 난 방명록 속에 특히 그녀와는 꼭 한 번이라도 마주치고 싶었다. 아주 향긋한 오줌 냄새인데 뭔가 사람을...... 아니지. 난 개지. 개인 나를 빨아들이는 마력의 체취를 었다. 이건 직접 맡아본 개코가 아니고서야 뭔가 설명하기 힘든 그런 향기다. 대략 나이는 한 살 전후 같았다. 금방 다녀간 따끈한 흔적을 마주해서 열심히 킁킁거리며 공원을 두리번거렸지만 매번 어긋나기만 했다. 난 동진이가 출근한 무기력한 오후에도 한 번씩 향기 속 그녀를 떠올렸고 텁텁한 사료를 씹을 때도 그녀를 떠올렸다.


"오드리 뛰자. 뛰어! 뛰어!"


방명록을 신나게  있는데 동진이가 별안간 뛰기 시작했다. 댓글 남겨야는데 그러지 못해 짜증이 좀 났지만 뛰다 보니 또 기분이 금방 좋아졌다. 우린 신나게 공원을 향해 달렸다.


"안녕하세요. 어머? 오늘도 나오셨네요."


더러운 침을 질질 흘리는 못생긴 퍼그를 키우는 여자가 동진이에게 말을 걸었다. 동진이가 이 여자와 요즘 썸을 탄다. 그래서 요즘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산책을 나왔다. 또 공원까지 답글도 못 쓰게 별안간 뛰기도 했던 이유도 이 여자 때문이었다.


"네, 저는 산책을 참 좋아해요. 우리 오드리와 함께 이렇게 공원을 거닐면 뭔가 정화되는 기분이랄까요? 하하하."


집에서 혼잣말로 연습했던 말들을 지껄였다.


"맞아요. 저도 우리 세바스찬이랑 이렇게 산책을 나오는 게 제일 행복한 시간인 거 같아요."


여자 사람은 퍼그를 쓰다듬었고 퍼그는 날 노려보았다. 난 저 침 좀 어떻게 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전에 살던 곳에선 모자를 푹 눌러쓴 동진이는 무릎이 다 늘어난 운동복 바지,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보통 산책을 했다. 그런데 이사를 와서 큰 공원에 산책을 다니자, 여자들이 어머. 어머. 하면서 달려들었다. 사진을 찍는 여자들도 있었고 만져 봐도 되냐는 여자들도 있었다. 만지면서 몇 살이냐는 둥. 자기도 푸들 키웠다는 둥. 여자들은 동진이에게 경계심을  풀고 말을 걸었다.


덕분에 나는 점점 피곤해진 일들이 늘어났다.


시선을 더 끌도록 미용을 자주 해야 했고 갑갑한 옷과 장식들을 자꾸 입히고 달았다. 뿐만 아니라. 동진이도 모자를 벗고 머리 미용을 하더니 새 트레이닝 바지를 사고 신발장에서 깨끗한 운동화를 꺼냈다. 어떤 때는 꾸안꾸 카디건을 걸치기도 했고 심지어 향수도 뿌렸다.


다.


어디선가 방명록 속 그녀의 향기가 스멀스멀 나기 시작하더니 향이 점점 더 진해져 갔다. 공원 벤치에 앉아서 퍼그 주인과 노가리를 까는 동진이의 무릎에 앉은 난. 향이 나는 쪽으로 내 모든 감각들을 집중시켰다. 점점 더 향이 짙어질수록 내 심장박동은 고장 난 기관차처럼 폭주하기 시작했다.


저기. 저기. 저 멀리에 뭔가 섬광이 비췄다. 총총거리며 뛰는 작은 점은 밤하늘에 떨어지는 유성처럼 빛났다. 그녀의 우아한 자태에 주위에 있던 몰티즈, 시츄, 웰시코기 수컷들이 일제히 그녀를 보았고 암컷들은 질투의 눈초리로 그녀를 흘겼다. 


나는 동진이 무릎을 박차고 날아올랐다. 내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왔던가.  


"어... 어! 오드리! 오드리!"


난 동진이가 목줄을 낚아채지 못하도록 혼신의 힘을 다해 달렸다. 그녀가 점점 더 가까워졌다. 그녀가 매섭게 달려드는 나를 보고 조금 당황한 듯 몸을 낮추었다. 난 그녀와 눈이 마주치자 다리가 후들거려 그 자리에 쓰러질 뻔했지만 단단히 힘을 주고 그녀 앞에 섰다. 매혹의 향이 진동을 했고 나는 자석에 끌리듯이 그녀의 똥꼬로 슬금슬금 다가갔다. 그녀가 이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렸다. 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똥꼬에 코를 박았다.


"어머, 이 새끼가 미쳤나 봐!"


그녀가 짧은 외마디를 외치며 날카로운 이빨로 내 콧등에 싸다구를 날렸다. 난 하나도 아프지가 않았다. 난 생채기난 코를 벌름거리며 그녀를 그윽하게 바라보았다. 그녀도 뭔가 자기가 너무 심했나 싶은지 눈을 피하며 겸연쩍어했다. 


"이 녀석이 안 그러는데 희한하네요. 키우시는 실버 푸들이 너무 예뻐서 얘가 친해지고 싶어서 달려들었나 봐요. 죄송합니다."


난 동진이에게 목줄을 잡혀 끌려가면서도 한 시도 그녀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내가 심드렁해 있자. 세바스찬 주인은 내 입에 육포를 쑤셔 넣었다.


"언제 시간 괜찮으시면 여기 공원에 다른 사람들처럼 돗자리 깔고 치킨에 맥주라도 한 잔 하실래요?"


"맥주요? 아 좋긴 한데... 음..."


"오드리랑 세바스찬 간식도 챙기고 음... 사실.  사람들 다들 치킨에 맥주 먹는 거 산책시키면서 구경만 했지, 한 번도 저렇게 앉아서 안 먹어봤거든요. 군침 나더라고요."


"그래요. 좋아요. 치맥 같이 먹어요."


"언제가 편하시겠어요?"


동진이는 눈으로 킁킁거리며 세바스찬 주인의 몸을 흘깃 훑어보았고 세바스찬 주인은 머리를 자주 넘기며 그녀의 체취를 자꾸 풍겨댔다. 둘이 아주 신이 나셨다. 내가 퍼그를 노려 봤다.


"뭘 봐?"


퍼그가 내 눈빛이 싫은지 투덜거렸다.

 

"넌 왜 그렇게 억울하게 생겼냐?"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푸들 주제에 까부냐?"


"야, 너 암컷으로 안 태어난 게 천만 다행히다야."


"코 싸다구나 맞고 다니는 게 뭐래?"


"아니 저 개......"


"꼴좋다. 개새끼야."


"그래도 상호 욕은 하지 말자."


"개한테 개새끼라 한 게 욕임?"


"말을 말자. 말을."


그녀는 향기만 남긴 채 자취를 감추었다. 동진이는 세바스찬 주인과 신이 났고 돗자리에 앉은 사람들도 저마다 치킨, 피자, 떡볶이 따위에 술을 마시며 신이 났다. 너무 신이 났던 지 군데군데 혀꼬인 술주정도 들렸다. 춥지도 않은데 담요를 덮고 꼼지락거리는 커플도 있고 돗자리 하나라도 더 팔려고 돌아다니는 할머니들도 있었다.


선선한 바람이 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실버푸들 그녀가 등장했을 때처럼 반짝이는 별이 있었고 보름달 안에 실버푸들 그녀가 나를 보고 미소 지었다. 나는 달을 보며 울부 다.


"어머 동진 씨. 오드리 몸에 늑대 피가 흐르나 봐요."


늑대는 내가 아니라 동진인데 못생긴 세바스찬 주인은 단단히 착각을 한 모양이다.


"여기들 계셨네. 안녕하세요?"


나이도 젊은 게 허리에 통증이 있다고 투덜거리는 숏다리 닥스훈트가 주인아줌마와 함께 나타났다.


"아이고 여기 친구들 많네. 인사하자. 인사. 옳지 옳지."


싸가지 없기로 유명한 앙칼진 포메라니안을 키우는 여자도 나타났다.


"아이고 뭐가 그리 재밌으세요들?"


이래도 흥 저래도 흥인 순둥이 래브라도 레트리버를 키우는 아저씨도 왔다.


"앉아. 손. 빵야. 하이파이브. 굴러. 아이고 잘하네. 다시. 앉아. 아니야. 아니야."


여대생의 스파르타 훈련에 지친 슈나우저도 왔다.





난 동진이가 좋다.


통유리 속 나를 밖에서 가리키며 안으로 들어왔던 겨울날. 아크릴 상자 안에 있는 나를 조금 차가워진 손으로 꺼내 주었을 때부터 좋았다.


사료를 물에 불려서 손가락으로 휘이휘이 저어서 내가 먹는 걸 신기하게 보던 눈빛도 좋고 다 먹고 트림하면 귀엽다고 웃던 모습도 좋았다.


배변 패드에 오줌 잘 샀다고 나를 안고 볼 비비던 때도 떠오른다.


오토바이나 자전거가 지나 가면 나를 품속으로 얼른 끌어안고 놀랬냐며 가슴 쓸어 주던 것도 떠오른다.


동진이가 치킨에 소맥을 마시다가 잠들었는데 다음날 내가 남은 치킨을 다 먹은 걸 보고 놀래서 술냄새 풀풀 풍기며 동물병원으로 미친 듯이 달려갔던 것도 떠오른다.


공원 옆으로 이사 오기 전. 


시장 근처 원룸에 살 때 집에 자주 오던 혜원이가 어느 순간부터 오지 않던 날부터 동진이는 매일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고 잠들었다가 누워서 토했던 날이 있었다. 호흡이 불안정해서 놀란 난 코와 입속에 토사물들을 핥아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동진이가 술을 마시고 잠들면 옆에 가서 수시로 숨소리를 확인한다.


나는 엄마, 아빠를 본적이 없다. 형제를 본적도 없다. 동진이가 유일한 내 가족이다.


지금도 문 앞에 몇 시간째 웅크리고 앉아 복도계단에 동진이 발소리가 울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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