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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뺑그이 Feb 18. 2023

나는 소나무다

나는 소나무다.


아파트 단지 109동 옆 구석진 놀이터


미끄럼틀이 정중앙에 있고 왼쪽에 그네가 있다. 오른쪽으로는 시소가 있으며 그 옆엔 삼단 높이 철봉도 있다. 놀이터 사면의 테두리는 어른 허벅지 높이 정도의 회양목이 둘러져 있고 입구엔 정자가 있다.


사각 정자 옆에 늘 서 다.


"야, 소식 들었어?"


벚나무가 말했다.


"무슨 소식?"


가 말했다.


"어제 저 뒷산에 나무가 번개를 맞고 죽었대."


" 좋은 나무. 난 언제쯤 죽을 수 있으려나."


그랬다.


내 소원은 번개에 맞거나 태풍에 뿌리째 뽑히거나 불에 활활 타서 죽는 것이다. 고통이 걱정스럽지만 지긋지긋한 사슬을 끊을 수만 있다면 충분히 감내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아파트 관리인과 조경사는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추워지면 죽지 말라고 볏짚을 내 몸에 둘렀고 예쁘게 잘 자라라고 주기적으로 가지치기도 했다. 잔가지와 잎시들수간주사도 놔줬고 어디서 비료와 퇴비를 잔뜩 가져와서 영양까지 보충해 주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경기도 화성에 1300살 느티나무 형님이 있고 경북 영주시에도 1300살 골담초라 불리는 형님도 있다고 했다.


비극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경기도 구리에 1200살 은행나무 형님, 경남 하동에 1200살 느티나무 형님도 다고 했다. 그 형님들은 이제 그만 살고 싶다는 푸념들도 안한다고 했다. 경지에 오른 체념인지도 모른다. 관할 시그들을 그냥 죽도록 놔두질 않았다. 온갖 영양제 주사 바늘을 꽂았다.


가장 끔찍한 건 저기 바다 건너 울릉도에 향나무 형님은 자그마치 나이가 2000살이라고 했다. 


내가 죽고 싶은 이유는 간단하다.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움직일 수가 없으 비가 오면 비를 다 맞아야 한다. 눈이 오면 차가운 눈이 팔과 어깨에 잔뜩 쌓여서 온몸이 시려도 털지도 못한다. 온도가 내려가 눈들이 얼어버리면 살을 도려내는 듯한 동상도 무감각해질 때까지 오롯이 버텨야 했다. 


사람들은 괜히 발로 차고 가지를 꺾었다. 강아지들은 오줌을 종일 내 몸에 싸대고 새들은 똥을 뿌려댔다. 특히 괴로운 건 개미들과 온갖 벌레들이 하루종일 내 몸을 기어 다니며 간지럽히고 이빨로 보금자리 구멍을 내느라 따갑게 살을 파고 드는 것이.


"밤나무가 부럽냐? 넌 번개는커녕 아주 천년만년 살게 될 거다."


"나보다 네가 사람을 더 죽였잖아. 그러니 네가 훨씬  오래 살겠지?"


벚나무는 전생에 사람을 여덟 명이나 죽였다고 했다. 벚나무는 중국 텐진이란 곳에서 살았는데 거기서 만두 가게를 했다고 했다. 그는 가게에 자주 오던 여자를 좋아했고 환심을 사려고 그녀가 오면 속을 더 꽉 채운 만두를 쪄서 주었고 서비스도 더 챙겨줬다고 했다. 그녀도 그를 보면서 감사하다며 생글생글 웃어주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녀의 미소에 용기를 얻어 그는 고백을 하기로 결심하고 꽃도 준비하고 편지도 써서 그녀에게 전했다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그다음부터 만두를 사러 오지 않았다고 한다. 이미 사랑이 커질 대로 커진 벚나무는 그녀를 찾아 나섰고 그녀의 집을 알아내어 집 앞에서 그녀가 나타나길 하루종일 기다렸다고 했다. 그녀가 나타나자 그는 얼른 그녀 앞으로 달려 가 무릎을 꿇었다.


"사랑합니다. 제 사랑을 받아주세요. 정말 온종일 당신만 생각합니다."


그때 뭔가 번쩍였다고 했다. 눈을 떠보니 그녀의 아버지와 그의 하인들에게 실컷 두들겨 맞은 후였다고 했다.


"네가 만두집 그 놈이로구나. 어디서 주제도 모르고 감히 내 딸을 추근거려 한 번만 더 나타나면 널 죽여버리겠다. 알아 들었으면 얼른 꺼져!"


그는 온몸에 통증을 참고 절뚝거리며 힘들게 만두 가게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만두 가게는 어질러져 있었고 그의 어머니는 널브러진 테이블과 의자 사이에 누워 있었다고 했다. 겨우 병원에 데리고 가니 넘어지면서 허리를 다쳐 당분간 만두 가게 일은 못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매일 누워만 있었고 소변과 대변을 벚나무가 치워야 하는 일들도 생겼다. 그는 화가 나서 매일 술을 마시며 지냈는데 어머니의 몸은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더 악화되었다. 술에 잔뜩 취한 그는 기름통을 들고 모두 잠든 새벽에 그녀의 집 입구 문을 쇠막대기로 걸어 잠그고 기름을 뿌려 불을 지르고 도망쳤다.


술과 잠에서 깬 그는 다음날 총 여덟 명이 죽었다는 말을 듣게 되었고 그는 땅을 치고 후회했지만 모두 주워 담을 수 없는 일이란 걸 깨닫고는 죄책감과 압박감에 뒷산으로 가서 나무에 목을 맸다고 했다.


소나무인 나도 전생에 사람을 죽였다.


나는 미국 펜실베이니아에서 회사를 다니던 평범한 비즈니스맨이었다. 결혼한 지 세 달 만에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나는 회사에 있다가 아무래도 느낌이 안 좋아 불시에 집으로 가서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는데 마누라가 새파랗게 젊은 놈과 나뒹구는 것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하고는 눈이 뒤집혔다. 서재 책장 서랍에서 권총을 꺼내고 침실 문을 활짝 열었다.


"내 집 그리고 내 침대에서 뭐 하는 짓들이야!"


침대에 둘을 쏴 죽였다. 환희에 찼던 그들은 놀란 눈으로 총을 맞았다. 크게 뜬 눈은 감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정신을 차린 나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황급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폴리스라는 외침을 듣고는 절망감에 내 머리에도 방아쇠를 당겼다.


아파트 단지 109동 옆 놀이터 주위에 있는 조경수들은 말했다.


어쩌면 우리는 전생에 저지른 죗값의 징역을 지금 치르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고.


전국 각지에 1000년 이상 나이를 먹은 형님들은 아마 전생에 전쟁을 일으킨 왕과 장수들일지도 모른다고.


감나무는 사업이 망하자. 자신의 아이와 부인을 먼저 죽이고 자살했다고 했다. 버들나무는 베트남 전쟁에 참전해 민간인에 총을 쐈다고 했다. 측백나무들은 데모를 진압했고 자백을 받아내는 고문 전문가로 근무했다고 했다. 내 옆에 소나무는 뺑소니로 사람을 쳐서 죽였는잡히지 않고 공소시효가 지나 미해결 사건이 되었다고 했다. 그런데 세월이 흘러 자연사 하고 눈을 떠보니 나무가 되어 있었다고 했다. 놀이터 테두리 회양목들은 강도 살인도 있었고 유괴 살인범도 있었다. 배에서 조업 중 다툼으로 다른 선원을 바다에 밀어버린 녀석. 돈 갚기 싫어서 친구를 죽인 녀석. 부모의 재산을 노린 패륜아도 있었다. 그리고 직접 죽이지는 않았지만 남미의 커피 농장과 인도네시아 공장에서 일을 시키고 임금을 주지 않아 사람들을 굶주리게 만들고 벼랑 끝으로 내 몰은 농장주와 사장도 있었다. 뒷산엔 자신이 전생에 히틀러였다고 우기는 별종도 있었다.


"야! 벚나무."


"왜?"


"그래서 넌 다음엔 뭐로 태어나고 싶냐?"


"나? 있지. 하나 있어."


"뭔데?"  


"니 마누라."


"미친놈."


"그럼 소나무 너는 뭘로 태어나고 싶은데?"


"난 여기 아파트 단지에 오기 전에 저기 숲 속에서 살 때 말이야. 그걸 봤어."


"뭐?"


"UFO를 타고 온 외계인."


"UFO는 아파트 위에도 종종 오잖아."


"그 외계인이 우리 나무들에게 물었어. 자기는 전생에 춘천에 있는 고아원 출신이라고 했어. 같은 고아원 출신인데 자살하고 나무로 환생한 이지연이라는 여자 애를 찾고 있다고. 그 여자를 수소문해서 찾아주면 산불을 내주겠다고 제안했지. 타 죽을 수 있는 기회라니. 우린 다 솔깃했어. 협상이 진행중일 때 망할 이 아파트 단지로 왔지 뭐야. 젠장. 근데 멋지지 않냐? 외계인이 나무를 찾으러 다니는 거. 난 그 외계인으로 환생하고 싶어. 지구를 달을 태양을 온 우주를 날아다니는 외계인말이야."


벚나무와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초가을 티 없이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이 떠 있었다.


"야."


"왜?"


"귀 막을 준비해."


각 정자 쪽으로 한 무리 할머니들이 먹구름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예전 109동에 있는 복도 창문을 열고 여자 애가 뛰어내린 적이 있었다. 그 여자 애는 놀이터에서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돈도 뺏겼었던 아이다. 우리 나무들은 그날 별로 말이 없었다.


괴롭힌 아이들은 내가 겪은 바로는 나무로 태어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뛰어내린 여자 애도 정신을 차리고 보면 분명 후회가 따를 것이다.


사람들은 잘 모른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지.


걸을 수 있고 뛸 수 있다.


은 퇴비나 거름이 아닌 맛있는 걸 먹을 수도 있고 가뭄에 타는 듯한 갈증으로 하늘만 보면서 비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가려우면 긁을 수 있다. 가렵다고 긁어달라고 하면 긁어줄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오는 날. 눈이 오는 날.


천 년의 시간이 아닌 단 하루만 밖에 가만히 서 있어 본다면 내가 그동안 얼마나 행복하게 살았는지 금세 알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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