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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뺑그이 Feb 22. 2023

사랑받으려면 설거지를 잘하세요.

"얘들아 일할 준비해."


내가 말했다. 난 뇌다.


"뭐? 또?"


위가 의아해했다. 


"너무하네. 너무해. 이미 똥이 한가득이라고!"


대장이 투덜거렸다.


"자기는 야근하면 온갖 짜증을 다 내면서."


스트레스에 지친 간이 화를 냈다.


몸의 주인인 상식은 상식에 맞지 않는 식습관을 가졌다. 야채는 거의 안 먹고 기름진 육류 안주에 술을 즐겼고 해장은 짬뽕이나 라면 같은 걸로 했다. 편의점에서 도시락과 사발면으로 때울 때도 많았다. 그리고 제일 문제는 무엇보다 야식이었다. 치킨이나 피자에 소맥을 마시다가 취하면 그대로 쓰러져 잠들어 버렸다.


오늘도 여지없이 야식으로 치킨을 시켰고 소화기관들은 또 밤샘 일거리를 마주하자 화가 단단히 나버렸다. 위가 메스꺼움으로 토로했지만 만고 허사였다.


"왜 이렇게 눅눅하지. 별테러 해야겠네!"


상식은 후라이드 치킨을 한 입 먹고는 눅눅하다고 투덜거렸다. 못마땅한 표정으로 후라이드 껍질을 손으로 눌러보다 500cc 컵에 따라놓은 소맥을 단숨에 들이켰다. 


3년 전엔 우리 소화기관들도 좀 살만한 시절이 있었다. 상식은 헬스장을 등록했고 거금을 들여 태어나 처음 PT도 받았다.


몸통은 하나의 싱크대라고 생각하면 된다. 싱크대에 삼겹살을 구워 먹은 그릇들이 잔뜩 하다면 찌꺼기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금방 부패할 것이다. 그러지 않게 하기 위해 우리들은 설거지를 하게 된다. 그런데 찬물에 퐁퐁과 수세미도 없이 맨손으로 설거지를 한다면 당연히 기름때는 잘 닦이지 않을 것이고 설거지를 마쳐도 뽀드득의 부재로 찝찝함이 남을 것이다.


운동 특히 러닝은 뜨거운 온수이자 수세미이며 퐁퐁이다. 러닝은 몸통 싱크대 구석구석 낀 내장지방 기름 때도 박박 닦아준다. 췌장 같은 구석진 곳의 기름때는 특히 잘 닦이지 않지만 장거리 러닝을 꾸준히 하면 뜨거운 물로 오래 불리고 퐁퐁도 잔뜩 도포하기 때문에 결국 닦이고 만다. 기름때들을 안 닦으면 싱크대 구석에 곰팡이가 피고 썩은 냄새가 나듯이 몸 싱크대에 기름때들은 안 닦아내면 암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러닝은 간이 도맡은 스트레스와 노폐물도 이마와 온몸에 땀으로 분출시켜 줘서 간이 해야 할 일을 거들어 주게 된다. 간이 업무가 줄어 일상생활에 활력이 넘치게 되어 상식은 일의 업무 능률이 훨씬 좋아졌었 직장 상사의 인정과 사랑도 독차지했었다.


하지만 그때의 상식은 온데 간데없었고 불규칙으로 그의 대장엔 용종마저 생겼다. 러닝이라는 설거지가 귀찮으면 물만으로도 설거지가 가능한 야채나 기름때가 적은 음식을 먹으면 대장 용종까지는 가지 않는데 그는 운동 부족 인스턴트와 기름진 육류에 술과 업무 스트레스까지 매일 같이 5단 콤보를 구사했다.


"아, 나 힘이 없어서 일 못하겠어."


대장에 근무 중인 유익균이 말했다.


"야, 유익균 그게 네가 지금 할 소리야? 힘 좀 내라고. 너한테 생긴 용종이 곧 암이 되면 이때까지 고생만 한 우리도 다 죽게 된다고!"


허파가 헉헉거리며 열변을 토했다.


"난 양배추, 채소, 유산균 같은 섬유질을 먹어야 일을 할 수 있어. 근데 상식이 이 자식은 전혀 먹질 않잖아. 아무것도 안 먹고 무슨 힘으로 일을 해."


유익균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왜? 상식이가 얼마나 맛있는 걸 많이 주는데 으하하하. 난 천국이 따로 없는데?"


대장에서 근무 중인 유해균은 기세등등했다. 유해균은 기름진 음식과 인스턴트를 많이 먹을수록 힘이 강해졌다. 

상식은 하루 한 끼밖에 못 먹고 일할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상식은 왜 하루에 한 끼만 먹는데도 살이 잘 안 빠지지 했다.


대장에 유익균이 많으면 체중이 잘 유지되고 유해균이 많으면 적게 먹어도 살이 잘 빠지지 않는다는 걸 상식은 상식이 없는지라 잘 모르고 있었다.


"요새 발이 왜 이래 아프지. xx!"


화장실에 가려고 일어서던 상식이 욕을 했다. 상식은 요즘 요산수치가 부쩍 높아져 통풍 증상이 서서히 생기기 시작했다. 고기와 맥주를 많이 먹으면 잘 발생하는 예전엔 부자들이나 걸리는 귀족병이었는데 가난한 상식은 부자도 아닌데 이 병까지 맞이하고 있었다. 이것도 다 고기와 맥주를 제때 설거지하지 않아서였다.


"아. 오줌발도 영 시원치가 않네."


그는 조물딱거리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주로 인해 발기도 시원찮고 과식과 비만으로 인해 신장도 약해졌다. 3년 전 PT를 받았을 때 그는 체지방이 11퍼센트까지 내려갔었다. 싱크대가 아주 번쩍번쩍 광이 다. 잘 생기고 10년은 젊어진 몸으로 상식은 여자 친구도 생겨서 섹스도 활기차게 했고 우리 온몸의 장기에 엔도르핀을 주기적으로 뿌려줘서 참 행복했었다. 그땐 이런 몸 속이라면 100년은 살고 싶은 마음이었다. 하지만 10개월 전 이별하고나서부터 그는 매일 술독에 빠졌고 지금은 체지방이 34프로를 오르내린다.


상식은 금세 술에 취했다. 폰을 집더니 헤어진 여자 친구의 인스타를 눌렀다. 비공개 세 글자를 한 참 보더니 한숨을 푹 쉬고는 DM을 검지로 눌렀다. 그는 무언가를 자꾸 썼다가 지웠다.


"저런 병신 같은 걸 주인으로 모시고 사니 참 삶이 고달프다."


위가 닭과 술을 주므르며 말했다.


"누가 아니래냐. 또 술 들어온다. 술. 내가 언제까지나 침묵할 거 같으냐. 나도 그냥 확 손 놔 버리는 수가 있어."


과묵하기로 유명한 간이 요즘 자주 투덜거렸다.


"아 배고파 나도 먹을만한 거 좀 줘. 예전엔 치킨 시키면 양배추 위에 케첩, 마요네즈로 버무린 거 주더니 요샌 왜 안 줘? 야, 눈아 양배추 있는지 좀 봐줘."


유익균이 배고픔에 절규하듯 말했다.


"양배추 그런 거 없다. 있어도 먹겠냐? 그나저나 뇌야 상식이 DM 쓰면서 감정 올라왔으니까 눈물 좀 보내줘. 오랜만에 좀 씻자. 요새 이 새끼 맨날 스마트 폰만 봐서 아주 뻑뻑해 죽겠어."


상식은 스마트 폰에 눈물 한 방울을 뚝 떨어뜨리고는 벌러덩 누워 잠이 들었다.


"아우, 저 돼지. 설거지만 잔뜩 주고 지만 처 자네. 지만. 일어나면 또 라면 먹을 텐데. 아 진짜 기름때 잘 지워지지도 않고 할 짓이 아니다. 할 짓이. 아우 지겨워."


끄지 않은 텔레비전 모니터 속에 기안 84는 상식이처럼 바닥에 앉아 해괴망측한 음식에 소주를 마시고 있었고 상식은 코를 드르렁 곯았다.


상식은 사람들에 친절하고 잘 도우며 배려도 잘한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자신의 지갑을 여는 걸 마음 편해하는 착한 사람이다. 하지만 그는 누구보다 아끼고 사랑해야 할 자신의 몸속 친구들에게는 세상 누구보다 못되고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상식의 몸속에 기거하는 친구들은 오늘도 철야 설거지 작업에 여념이 없었다고 한다.




금식은 건강에 이롭다고 합니다. 소화기관에 금식은 휴가기간이 아닐까요.


본인이 휴가가 간절하듯이 열심히 근무 중인 소화 기관에 주기적으로 휴가를 줘 보는  어떨까요.


설거지 마치고 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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