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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뺑그이 Feb 24. 2023

부서진 우산.

사람에 치이고 술에 치이다가 겨우 자리를 모면했는데 하늘에선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냥 좀 맞지 뭐. 하는 순간 호통이라도 치듯 빗줄기가 굵어졌다. 에라이. 우산 그 몇 천 원은 왜 이리도 아까운 것인지. 투덜거리며 편의점 문을 열었다. 카운터 옆에는 내가 올지 미리 알고 나를 기다린 듯한 우산들이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었고 나는 그중 제일 싼 투명 우산을 집었다.


빗속에 서서 택시를 잡으려는데 전방엔 이미 우산 부대들 몇몇이 진을 치고 있었다. 에라이. 금방 택시를 잡기는 틀려 먹었고 저번에 깔려다가 말은 택시 어플이 생각나서 폰을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우산 손잡이를 목과 어깨로 고정시키고 엉거주춤 패턴을 풀었더니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겨우 모면했는데 모면은 모면이 아니었다.


바로 전화를 걸 것인가. 나중에 걸어서 이미 집에 도착했다고 할 것인가. '오늘 양곱창 너무 잘 먹었습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라고 미리 문자를 보내지 않은 게 후회로 밀려왔다. 문자를 보내고 택시에서 잠들었다고 하면 약간은 그럴싸하기 때문이다.


최사장.


그 사람은 매우 집요하다. 타인이 자신에게 한 말과 행동을 곱씹기를 잘했고 난 이미 너를 다 알고 있어. 속일 생각 하지 마. 넌 이미 내 손바닥 안이야. 자신이 굉장히 예리하고 똑똑하다는 것을 꼭 사람들에게 확인시켜 주려는 술버릇이 있었다. 자신의 뛰어난 수사력과 심리분석을 동원해 결국 자백 아닌 자백을 받아냈고 걸 영웅담처럼 얘기할 때가 많았다. 그 말은 곧 엄포였고 어명이었으며 협박이었다. 자백하고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 용서하는 방법도 특이했는데 그 용서는 언더락 잔을 가득 채운 위스키 원액을 주고 원샷을 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자신 앞에서 양주 원액을 마시고 괴로워 하는 모습을 보며 굉장히 즐거워 했다.  500ml 양주병을 언더락잔에 따르면 가득 두 잔이 나왔다. 난 연거푸 세 잔까지 마셔보았다. 권력이 가득 담긴 잔은 더럽게도 독하고 쓰렸다.


"사장님 제가 비가 와서 전화 온 지를 몰랐습니다. 전화 주셨네요."


내가 말했다.


"어, 어디야?"


"네 지금 택시 잡으러 왔는데 비가 와서 안 잡히네요."


"그렇군. 난 또 일부러 안 받나 했네."


옆에서 여자들이 웃는 소리가 들렸고 몇몇은 일부러 안 받은 거 맞다니까.라고 말하며 낄낄거렸다.


"아이고 그럴 리가 있습니까. 안 그래도 양곱창 잘 먹었다고 문자 보내려던 참에 부재중 본 거예요."


"그래? 음... 그건 그렇고 지금 여기 보물섬이야. 같이 한 잔 더 하지 뭐. 싫음 말고."


"아이고 저야 좋죠. 보물들이 많나요?"


"보석은 없고 죄다 14k 들이네."


바지 밑단과 신발 그 안에 양말 그리고 내 마음속까지 축축해진 채로 난 겨우 택시를 잡고 보물섬으로 향했다.




보물섬 입구에 들어가자. 양복을 입고 인이어 이어폰을 착용한 30대 초반 남자가 나를 안내했다. 그의 뒤를 따라 걷는데 그가 갸우뚱하더니 다시 나를 돌아봤다. 난 멀뚱하게 그를 보았다.


"손님 괜찮으시다면 우산은 제가 보관했다가 가실 때 드려도 될까요?"


그가 말했다. 난 우산을 보았다. 대리석 바닥에 어울리지 않는 싸구려 우산 아래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걸어온 곳을 돌아보니 물방울이 발자국처럼 찍혀 있었다. 난 그에게 꾸벅 인사하고 우산을 건넸다.


"왔어? 저기 앉아 저기."


최사장은 턱으로 자신의 왼쪽 빈자리를 가리켰다. 나는 가서 앉자마자 그가 따라주는 위스키를 언더락 잔에 받았다. 최사장 옆에 앉은 여자가 내 잔에 얼음을 넣으려 했다.


"넌 나만 신경 써야지. 안 그래? 뭐 하는 거지?"


"맞다. 오빠 미안해요. 내가 잔만 보면 집게부터 잡는 게 습관이되나서."


"됐고 마담 불러. 이 친구도 하나 앉혀야지."


여자들이 주르르 들어왔다. 누가 내 옆에 앉든 내게 큰 의미가 없었다. 여기는 내가 노는 곳이 아니라 일터기 때문이다. 나는 이왕이면 그중에 돈을 제일 못 벌 거 같은 친구를 선택했다.


"이야 우리 실장님 눈이 완전 삐꾸네. 삐꾸. 3번이 그나마. 어이 마담 3번 앉히고 그 여자 2차 되지?"


"아이고 사장님 룸에 들어오는데 이미 다 엄선했죠. 무슨 사달이 나려고. 저 양주 저번에 원샷하고 다음날 출근 못 했어요."


"왜? 한 잔 더 줘?"


"아유 오빠. 제발 좀 살려주라."


3번은 내 옆에 앉아서 내 잔에 얼음을 넣으면서 '안녕하세요. 서연이예요'라고 했다. 서연이 실론티를 따르려는데 김사장이 서연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김실장 자네 실론티 마셔?"


". 저 뭐 아무 거나."


"이런 싸구려 마시니 다음날 숙취가 심한 거 아냐. 자 이거 마셔 이거."


"이게 뭡니까?"


"이거 VIP한테만 주는 자연산 생칡즙이야. 간에 얼마나 좋다고 마셔."


칡즙이란 말에 눈꺼풀에 경련이 일었다. 어릴 때 처음 먹어본 그 강렬한 칡향에 너무 놀랬는데 몸에 좋다고 그걸 억지로 먹여서 그게 트라우마처럼 남은 향이었다. 난 계피와 칡을 먹지 못했다.


"우와 눈이 번쩍 떠집니다. 간이 바로 살아나는 거 같아요. 우와 역시 VIP는 음료도 차원이 다르네요. 저같이 천한 것은 모텔에도 깔린 매실 우롱이나 마시다가 아주 사장님 덕에 호강하네요. 감사합니다."


속에서 올라오는 역한 향을 겨우겨우 참아가며 말했다.


"사장님 우리도 매일 술 먹어서 간이 아파요. 우리도 주세요."


아가씨 두 명이 애교를 부렸다. 칡즙이 먹고 싶어서가 아니라 마담의 신신당부로 인한 것임이 뻔했다. 김사장이 시킨 로열살루트덕 아니겠는가. 우리 넷은 주거니 받거니 항아리처럼 생긴 더럽게도 양 많은 위스키를 비워냈다.


"김실장 분위기도 띄울 겸 한 잔 하고 노래 한 곡조 뽑아 봐."


"넵."


노래방 화면에 김건모의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가 뜨자. 최사장은 취소 버튼을 눌렀다.


"그거 말고 그거 김실장 그거 잘하잖아. 와다다다다 그거."


"아 역시 자수성가하신 우리 최사장님 주제가 아니시겠습니까. 제가 목이 터져라 한곡 부르겠습니다. 노래 일발 장전! 받들어 마이크! 충성!"


난 마이크를 들고 최사장에서 거수경례를 했다. 최사장이 무슨 위원장처럼 기쁨조를 끼고 앉아 내게 박수를 쳐줬다. 그리고 난 노래했다.


"네가 보는 지금의 나의 모습 그게 전부는 아니야. 머지않아 열릴 거야. 나의 전성시대대대대대. 갈 길이 멀기에 서글픈 나는 지금 맨발의 청춘. 나 하지만 여기서 멈추진 않을 거야. 간다. 와다다다다다다다. 어차피 인생은 한판의 멋진 도박과 같은 것 자 맨발에 땀나도록 뛰는 거야. 내 청춘을 위하여"


최사장은 기쁨조와 뽀뽀를 하고 있었고 3번 서연이는 물수건으로 아까부터 테이블을 박박 닦고 있었다. 왜 그렇게 닦냐고 아까 물었을 때 그녀는 그게 자기 술버릇이라고 했다. 아무도 내 노래는 귀담아듣지 않았다.


"안주가 이렇게 부실해서야. 야 내 전화기 좀 줘봐."


최사장 파트너가 최사장에게 폰을 건넸다.


"어이 나야 나. 여기 보물섬인데 자연산 참가자미 한 접시 좀 보내."


최사장은 자기 말만 하고 전화를 끊었다.


"김실장 여기 옆에 참가자미 집이 좀 해. 지금 딱 추울 때 기름이 바짝 올라오거든. 옆에 이 아가씨처럼 말이야."


"최사장님 옆에만 붙어 있으면 좋은 건 다 먹네요. 제가 미천해서 대접도 올케 못하는데 면목 없습니다."


나는 회와 술을 같이 먹으면 설사를 심하게 했다. 조금 지나자 일식조리사 복장을 한 요리사가 직접 회를 가지고 왔다. 그는 회에 대한 설명을 하고는 최사장에게 술도 따르고 자신도 넙죽 술을 받아 마셨다. 난 눈치를 보며 회를 입으로 구겨 넣고 로열살루트와 생칡즙으로 목구멍 아래로 회를 넘겼다.


"오빠도 나도 참 고생이야. 그지?"


"그러게나 말이다."


최사장이 화장실을 간 사이에 서연이가 내게 말했다.




난 보물섬 건물 앞 포장마차에서 어묵도 먹고 담배도 피우면서 최사장이 나오기를 기다렸다. 지하는 보물섬이고 지상은 소규모 호텔이었다. 담배가 떨어져 편의점에 갔다가 우산이 떠올랐다. 그치긴 했지만 비는 아직 부슬부슬 내렸다. 난 보물섬에 들어 가 날 안내한 양복 입은 남자에게 내 우산을 건네받았다. 우산에 물기는 다 말라있었다. 행여나 최사장이 나왔을까 봐 황급히 보물섬을 나와 호텔 로비 쪽을 보고 있었다.


보물섬에서 취해 나오는 몇몇은 내가 발렛인줄, 대리인줄 알고 말을 걸었다. 그러는 사이 최사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나는 호주머니에 데워둔 여명을 만지작거리며 최사장에게 갔다.


"어이 김실장. 안 가고 여기서 뭐 해?"


나는 얼른 우산을 최사장에게 씌워줬다.


"아 저도 방금 딱 마무리하고 나온 참입니다. 근데 딱 사장님도 나오시네요."


"거짓말하고 있네."


"저도 방금 나왔습니다. 정말입니다. 사장님 집 가는 택시까지는 잡아 드리려고 기다렸습니다. 와우 저보다 강하시네요. 자 여기."


나는 왼손은 우산을 들고 오른손으로는 여명 캔뚜껑을 따느라 혼자 서커스를 하는 꼴이 되었다. 최사장은 여명을 벌컥벌컥 들이 켜고 빈깡통은 다시 내게 주었다.


"김실장 덕에 잘 먹었어. 아니 술값까지 계산하면 내가 미안하잖아. 내가 불렀는데."


"아이고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희 회사 팔아주시는 게 얼만데요."


"그래. 내가 앞으로도 쭉 거래할 거고 자네 사장한테도 말 잘해 두지. 수고했어."


"아이고 감사합니다. 사장님."


난 미리 불러 놓은 모범택시에 최사장을 태워 보내고 난 큰 길가로 가서 일반 택시를 잡았다. 새벽이라 그런지 인파가 없어서 택시는 금방 잡혔다. 택시에 앉자마자 모든 플러그가 다 뽑히는 기분이었다.


이제 겨우 모면이구나.


"안녕하세요. 친구마을에 니가가라하와이 아파트 108동 앞까지 좀 가 주세요."


기사는 인사도 대꾸도 없이 급하게 액셀을 밟고 출발했다. 난 기사를 흘깃 보았다. 뭔가 잔뜩 화가 난 표정에 내가 뭐 못 갈 곳이라도 가자고 했나 싶어 눈치가 보였다.


"동수시장 앞에 내려주면 되겠네."


기사는 짜증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하아 땅이 꺼질 듯 한숨이 났다.


동수시장 앞에 내리면 아파트로 가는 신호등 건널목이 있었다. 차로 아파트에 진입하려면 800M 앞에서 유턴을 해야 했고 아파트 입구엔 주차된 차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차가 못 다닐 정도는 아니고 내가 사는 108동 앞까지 충분히 진입이 됐다. 동수시장에서 내리면 족히 10분은 걸어 올라가야 했다.  그럴 여력이 남아있질 않았다.


"아니, 사장님. 동수시장이 아니고 제가 아파트 108동 앞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


"그러니까. 시장 앞에서 내려서 건너가면 되지. 젊은 사람이 그게 뭐가 그래 힘들다고."


"아니, 사장님. 그러려면 돈을 더 지불하면서까지 택시를 왜 탑니까. 편하려고 새벽에 할증까지 내면서 원하는 목적지까지 편하게 가려고 택시를 타는 거 아니겠습니까? 안 그래요?"


"그 아파트 들어가려면 유턴도 해야 되고 그 입구도 좁아터져 가지고 그 윗동까지 올라갔다가 나오려면 영 복잡하다니까. 내가 그 좁은데 들어갔다가 차라도 긁어 봐. 그러면 오늘 일 헛하는 거야. 젊은 사람이 좀 걸으면 되지 그 거리 그거 얼마나 된다고. 쯧쯧쯧."


"아니, 사장님. 그게 아니고. 하아 사장님......"


"내가 차라도 긁으면 자네가 책임질 겐가?"


술도 취하고 몸도 피곤한데 별안간 눈물이 나려고 했다.


"아니, 사장님...... 아니..."


감정이 잘 추스러지질 않았다


"내가 오늘 먹고 산다고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요? 못 먹는 칡즙도 먹고 딸랑거리면서 노래도 부르고 못 먹는 회까지 처 먹어가면서 일했다고요. 내일 접대비로 법카 왜 이렇게 많이 나왔냐고 또 욕 쳐들어야 되는데 사장님 내가 지금 어려운 거 부탁해요? 어려운 거 부탁하냐고요? 친구마을에 니가가라하와이 아파트 가 달라고요. 난 왜. 내 집 가는 것도 마음대로 선택을 못하는 건데요? 아저씨도 일해야지 일! 왜 나만 말 잘 들으면서 일해야 되는데요. 아저씨는 뭔데? 도대체 왜 일을 똑바로 안 하냐고!  그딴식으로 할 거면 차 세워! 차 세우라고!"


난 택시 문을 쾅 닫았다.

 

손에 쥐고 있던 싸구려 우산을 바닥에 마구 치고 마구 쳤다. 그런데 찌그러진 우산이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이 활짝 펴져 뒤로 벌러덩 나자빠지고 말았다.


"에이 씨발. 진짜!"


순간 호통이라도 치듯이 빗줄기가 굵어졌다. 부서진 우산과 난 바닥에 패대기 쳐져서 그대로 비를 맞고 누워있었다.


눈을 뜨려는데 자꾸 빗방울이 내 눈동자를 때렸다. 난 게슴츠레 하게 눈을 뜨고 겨우겨우 가로등 불빛 아래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을 보았다.


얘네 빗줄기들과 내가 만나서 부딪힐 확률이 과연 몇 퍼센트의 확률이길래 무슨 대단한 인연이길래 지금 이렇게 서로 부딪히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자.


갑자기 헛웃음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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