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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뺑그이 Apr 12. 2023

가자! 보물섬으로

1987년 월촌리에 태풍이 온 다음 날이었다. 


비닐하우스는 찢어지고 벼들은 논바닥바짝 드러누웠다. 위에 우리집 세숫대야와 바가지가 보였다. 감나무가 뿌리를 드러냈 감들은 마당에 나뒹굴었다. 누렁이 집은 날아가 부서져 있었고 누렁이는 간밤에 얼마나 무서웠는지 꼬랑지를  내리고 애처로운 눈빛으로 보았다. 푸세식 화장실 문짝은 텃밭으로 날아가 상추들을 짓누르고 있었고 깻잎은 처참하게 찢어졌다. 대파도 뽑히고 고추도 다 떨어진 텃밭은 텃밭이 아니라 쑥대밭이었다. 놀란 눈으로 마당 여기저기를 보다가 신발을 신고 후다닥 옆집 상조 집으로 달려갔다.


"상조야 노올자! 박상조 노올자!"


상조가 대문을 열고 나왔는데 옆에 문갑이도 같이 있었다.


"어? 둘이 같이 있네?"


"어! 안 그래도 뺑그이 느그 집으로 갈랬는데 니가 먼저 와뿟네."


"우리 집에는 왜?"


"문갑이랑 저기 낙동강에 갈 건데 니도 같이 가자고."


"낙동강에는 뭐하러 갈라꼬?"


"태풍 지나가낙동강에 배구공, 축구공, 로보트, 장난감 하여튼 오만 거 때만 거 다 떠내려 온다. 주으러 가자. 작년에 씽씽도 주웠다. 맞다 느그 공작새 본 적 있나?"


"아니."


"죽은 공작새도 있었다. 그리고 같이 간 형들이 옛날에 돼지가 떠내려 가면서 수영하는 것도  봤다고 했다. 수영 쳐가꼬 살아 나와서 자기 집으로 뛰어가서 기다리던 주인한테 안겼다더라."


"뻥치지 마라 새끼야! 돼지가 얼마나 무거운데 금방 가라앉는다! 그리고 돼지가 자기 집을 우째 찾아 가는데!"


"못 믿겠으면 빨리 가 보자! 가 보면 알 거 아니가 진짜로 별 거 다 있다니까!"


"알았다. 가 보자! 가서 좋은 거 있으면 내가 먼저 다 주워야지롱."


"잠시만 내 뭐 좀 챙겨 올게."


상조는 잔뜩 신난 표정으로 뭘 가지러 간다며 얼른 다시 집 안으로 들어갔다. 문갑이와 나는 들뜬 마음으로 상조를 기다렸다. 조금 있다가 상조가 왔는데 상조는 플라스틱 장난감 칼을 허리에 차고 손전등과 큰 비닐봉지 그리고 바람 빠진 튜브를 가지고 나타났다.


"그게 다 뭐꼬?"


"장난감 많이 주웠는데 옆동네 평촌 애들이 뺏들라고 하면 싸워야지. 느그도 작대기 하나씩 허리에 차라. 그리고 어두운 굴 같은데 좋은 장난감 들어 가 있을 수도 있잖아. 후라시비춰 봐야지. 그리고 작년에 나룻배에 장난감 걸쳐져 있었는데 작대기로 툭툭 치다가 놓쳐서 떠내려갔다. 그래서 튜브도 가지고 왔다."


"미쳤나. 낙동강이 얼마나 깊은데 빠지바로 죽을 걸?"


"밧줄로 튜브 묵으면 된다. 요 있네 밧줄."


"그거 빨랫줄 아니가?"


"그게 그거지. 빨리 가자!"


나와 문갑이도 작대기를 하나씩 주워서 칼처럼 허리에 찼다. 


"가자! 보물섬으로!"


상조가 칼을 뽑아 들고 외쳤다.


"가자! 보물섬으로!"


나와 상조도 작대기를 들고 외쳤다. 우리 삼총사는 높이 들었던 칼을 늠름하게 허리에 차고 보물섬으로 향했다.


월촌리에는 슈퍼가 딱 하나 있었다. 슈퍼도 아니고 그냥 구멍가게였다. 월촌은 동네에 음식점도 하나도 없었고 문방구니 철물점이니 하는 그런 가게 하나도 없는 작은동네였다.  버스정류장도 그 구멍가게 앞에 딱 하나가 있었다. 버스는 한 시간에 딱 한 대씩 왔다. 그리고 구멍가게 앞에는 엄청 큰 버들나무가 있었다. 일 년에 한 번씩 동네 아저씨들이 그 버들나무 아래서 돼지를 잡았다. 난 그 광경을 보고 한동안 돼지고기를 먹지 못했다. 버들나무 바로 아래 하천이 흘렀는데 우린 거기서 물놀이를 자주 했다. 형들은 버들나무 위에 올라가서 뛰어내리기도 했다. 우린 낙동강으로 가기 위해 하천에 놓인 다리를 건넜다. 태풍 때문에 하천의 수위는 평소보다 훨씬 높았고 또 물도 세차게 흘렀다.  무서운 물줄기를 보니 장난기가 발동해 문갑이 등을 잡고 하천에 미는 척을 했다.


"웍!"


"야이 새끼야. 물에 빠지면 바로 죽겠는데 왜 미는데! 놀래라!"


"문갑이 니는 거기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사자 같다. 겁쟁이 사자. 으하하하."


"조용해라 그러면 니는 거지 같으니까 허수아비다. 으하하하. 근데 우리 집도 도로시 집처럼 회오리에 날아갔으면 좋았을 텐데. 그럼 학교에 안 가도 되는데 아깝다."


"맞다. 우리 집도 허리케인에 날아가서 오즈의 마법사에 착륙하면 깡통로봇이랑 겁쟁이 사자랑 허수아비랑 모험도 하고 재밌었을 텐데."


"한국은 허리케인 없다. 도로시는 미국 사람이다이가. 미국은 허리케인이 있어서 집도 저 멀리까지 날리는데 한국 태풍은 미국보다 약해서 나무나 전봇대밖에 못 날린다. 한국 아이들은 그래서 오즈의 왕국에 못 가는 거다."


"맞다. 미국 애들 부럽다. 나도 크면 미국에서 살고 싶다. 미국은 월촌이랑 다르다. 부자다. 로켓트 타고 달에도 놀러 가잖아."


우린 기와가 날아간 지붕을 보고 웃었고 무너진 돌담을 괜히 발로 찼다. 쓰러진 나무 위에 올라 가서 재밌다고 방방 뛰었다. 우릴 보고 짖는 개한테는 돌멩이를 던지고 작대기로 쑤셨다. 으르렁거리자 작대기로 팼다. 깨갱깨갱거리자 우린 막 웃었다. 태풍에도 겨우 살아남은 돌틈에 피어있는 꽃을 괜히 툭툭 꺾으며 우린 걸었다.


강둑에 다다랐다. 강둑에 오면 우린 삘기라는 풀의 속살을 뽑아서 껌처럼 씹었다. 우린 삘기를 질겅질겅 씹으며 강둑 위로 다.


우린 강둑 제일 높은 곳에 서면 늘 강건너에 있는 금곡스포츠랜드를 보았다. 건너는 큰도시인 부산이었다. 부산에 금곡동이란 동네에 있어서 금곡스포츠랜드라고 부른다고 했다. 금곡스포츠랜드에는 거대한 수영장이 있다고 했다. 수영장에는 회오리처럼 꼬인 거대한 미끄럼틀도 있다고 했다. 그 높이와 속도가 얼마나 대단했으출발 전에 미끄럼틀 앞에서 애들도 어른들도 무서워서 오줌을 질질 싸면서 포기할 정도라고 했. 그리고 변신도 한다고 했다. 여름엔 수영장이고 겨울엔 롤러스케이트장으로 변신한다고 했다. 마치 메칸더 브이가 출동하는 야구장처럼 변신을 한다는 거였다. 난 그 말을 듣자마자 우와 탄성을 질렀다. 월촌은 버스가 다니는 도로도 자갈이 깔린 비포장 도로였고 죄다 흙길이라 누가 롤러스케이트를 거저 줘도 탈 곳이 없는 촌동네였다. 부산에 갔을 때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애들을 넋 놓고 본 적이 있었다. 난 낙동강으로 걸어오면서 금곡스포츠랜드에서 롤러스케이트 하나가 떠내려 와있길 간절히 바랐다.


"우린 언제 저기 금곡스포츠랜드에 가 보겠노. 저긴 오즈의 마법사 같은 환상의 세계겠다. 맞제?"


상조가 누런 코를 질질 흘리면서 말했다.


"금곡스포츠랜드는 엄청 크고 높아서 제일 쌘 허리케인 날리겠다."


문갑이가 삘기를 질겅질겅 씹으면서 말했다.


"내가 우리 셋 중엔 금곡스포츠랜드에 등으로 가 볼 거다. 으하하하."


내가 말했다.


"내가 1등으로 갈 거다."


상조가 버럭 했다.


"아니다. 내가 1등으로 갈 거다."


문갑이도 합세했다.


"그러면 누가 일등으로 가나 천 원 내기하자!"


"너무 크다. 오백 원으로 하자."


우린 누가 금곡스포츠랜드에 일등으로 가게 되는지 거금 오백 원 내기를 약속하면서 강둑 아래로 내려갔다.


강물은 평소보다 혼탁했고 물살은 무섭도록 빨랐다. 강가와 둑에는 붕어와 메기 그리고 이름 모를 잡어들이 널브러져 죽어있었다. 난 그걸 보자 집 앞마당과 텃밭이 떠올랐다. 


"야! 저기 축구공 있다. 축구공!"


"와! 진짜네. 아싸라비야 먼저 잡으면 임자!"


셋은 축구공을 향해 달렸다.


"오야르! 여기 자전거 있다!"


"앗싸! 여기 비행기 있다!"


"오예! 야구 글러브다!"


"레고 블록이다. 레고!"


우린 태풍이 죽여 놓은 것들 사이에서 태풍이 선사한 것들신나게 주워 담았다.






"야! 박상조."


내가 말했다.


"뭐?"


상조가 말했다.


"보물섬은 무슨 보물섬 완전히 고물상이구만."


자전거는 바퀴가 없었고 비행기는 날개가 없었다. 글러브 안에는 피라미가 죽어있어서 손에 비린내가 진동했다. 깨진 안경 찌그러진 냄비와 반파된 자동차 장난감 도대체 어떻게 떠내려 왔는지 모를 변기 뚜껑과 부서진 장롱 그리고 눈알 없는 곰인형, 발가벗은 채 팔다리가 없는 바비인형 상조 말대로 정말 오만 때만 게 다 있었는데 쓸만한 건 별로 없었다. 우린 고르고 고르다 쓸모 없는 것들은 죽은 물고기가 널브러진 곳으로 휙 집어던졌다.


우린 물컹한 축구공에 모든 희망을 걸고 삘기를 씹으면서 다시 월촌으로 돌아왔다. 


"어? 어? 어? 들어 가나? 들어 가나?"


자전거 바람 넣는 펌프로 열심히 무릎을 구부렸다 폈다 펌프질을 하면서 상조가 물었다. 난 신중하게 손끝에 온 신경을 집중해 공을 눌러보았다.


"어? 어? 어? 땡땡해지는데?"


"봐라 인마 보물섬에서 그래도 보물 하나 주웠잖아. 으하하하."


상조는 명예 회복이라도 된 듯이 더 신나게 무릎을 구부렸다가 폈다를 반복했다.


우린 돌멩이 두 개로 골대를 만들어 놓고 축구를 시작했다. 우리가 축구를 하고 있으니 지나가던 영삼이 형이 합세했다. 또 재정이 형이 합세했고 정아 누나도 끼어들었다. 영희가 왔고 철수가 왔고 바둑이도 와서 멍멍 짖으며 꼬리를 흔들었다. 인원은 점차 점점 늘어났다.


"근데 이 축구공 누구 건데?"


처음 온 영삼이 형이 물었다.


"보물섬에서 주워왔는데요."


내가 말했다.


"보물섬?"


내가 자초지종을 다 설명했다. 그랬더니 동네 형들과 누나들이 수근수근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전부 낙동강으로 가 버렸다. 가 봐야 다 쓸모없는 것들밖에 없다고 말해도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해야겠다며 다들 강으로 갔다.


상조가 잠깐 기다리라고 말하고는 갑자기 집으로 뛰어갔다. 조금 있다가 상조는 집에서 매직을 가지고 왔다. 그러고는 축구공에 매직으로 이름을 쓰기 시작했다.


'박상조 배문갑 뺑그이'


"야! 뺑그이! 보물섬을 왜 사람들한테 다 가르쳐 주는데! 또 태풍 오면 우리가 제일 먼저 좋은 거 주워야 되는데 왜 가르쳐줬냐고!"


듣고보니 뭔가 손해를 본 기분이 들었다. 난 보물섬을 알려준 걸 금방 후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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