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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뺑그이 Jan 21. 2023

인생 첫 아르바이트

1988년 부산시 북구 구포2동

아빠는 공사장에 다닌다. 엄마는 신발 공장에 다녔다. 누나는 맨날천날 꿀 발라 놨는지 마니또 영미 누나 집에 다. 집에 아무도 없는 여름방학 12시가 되면 아침을 거른 탓에 굶주린 짐승처럼 허기가져서 냉장고를 뒤졌다. 배추김치. 파김치. 깍두기. 풀. 풀. 풀과 김치만 잔뜩 하다. 찬장에 라면도 없다. 집에 라면이 있으면 아빠가 화내서 엄마는 사더라도 저 구석에 숨겨 놓지만 구석구석 샅샅이 뒤져도 라면은 없다. 군침도는 먹이 찾기는 그만 단념한 굶주린 짐승은 늘 먹던 대접밥에 날계란과 간장 참기름을 넣고 밥을 비볐다.


밥을 먹으면서 보려고 텔레비전을 트니 유선방송에서 '쟈니윤 쇼' 재방송이 하고 있었다. 미국식 신사 개그라는데 하나도 재미가 없다. 영구와 땡칠이가 백배는 재밌는데 어른들은 저게 뭐가 재밌다고 신사 개그라고 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대충 밥을 먹고 델몬트병을 꺼내 오참물을 마셨다. 엄마는 늘 동서보리차로 물을 끓였다. 낙동강에 등 굽은 생선이 출몰했다는 뉴스 이후로 더 열심히 끓였다. 무슨 강박이 있는 사람처럼 떨어질까 겁내하며 커다란 노란 주전자를 꺼내 물을 채웠다.


"부시맨. 노올자. 노올자."


친구들이 부르는 소리가 들려 창문을 열었다. 


"뭐 하고 놀 건데."


배가 부른 나는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병 주우러 갈 건데. 니도 갈래?"


아 진작에 병 주워서 라면이나 끓여 먹을 걸, 그 생각을 못했네 하면서 신발에 발을 구겨 넣었다. 문을 닫고 열쇠로 잠근 뒤 잘 잠겼나 문을 두 번 밀고 당겼다. 누가 몰래 보고 있나 주위를 살피고 얼른 장독대 옆 화분 아래에 집 열쇠를 숨겼다.  


친구 두 놈은  검은봉다리 세 개를 미리 준비해 와서 나에게 하나를 건넸다. 우리는 골목골목. 또랑. 동네 뒷산을 매의 눈으로 쏘다녔다.


주택 대문 옆에 쓰레기통 녹색 철뚜껑을 열어 몇 집을 뒤졌지만 별 소득이 없었. 쓰레기통 뒤지느라 더러워진 손을 코로 가져가 냄새 한 번 킁킁였다가 오만상이 되었다. 쌓여있는 연탄재에 정체 모를 액체들을 슥슥 문질러 닦아냈다. 친구 눈치 한 번 보고는 몰래 혼자 희죽거리면서 주먹으로 연탄재를 툭툭 쳐서 부서진 한 덩이를 집어 들었다. 그걸 친구 대갈통으로 세게 던졌다. 살색 연탄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아야! 새끼야. 돌았나."


"나 잡아 봐라."


연탄재 들고 쫓아오는 친구를 돌리려고 연탄재 안 맞고 피하려고 갈지자로 골목을 신나게 질주했다.


또랑에 도착하니. 진흙이 뭍은  냄새나는 하수구 물에 반쯤 잠긴 병들이 몇 개 보였다. 또랑은 물도 더럽고 진흙구간도 있어서 빈병들도 더럽지만 늘 병이 몇 개씩 있으니 지나치기 아까운 코스였다.


"우와! 저거 꺼다. ."


친구에게 뺏길까 후다닥 먼저 요령있게 달려 가서 빈병을 낚아챘다. 얼마 전 바닥에 잔뜩한 미끄러운 초록 이끼를 잘못 밟아서 미끄러져 또랑에 빠진적이 있었다. 친구들은 배를 잡았고 내 옆을 지날 때마다 '어디서 하수구 냄새가 나노.' 두고두고 나를 놀렸었다. 또랑에서 제법 두둑해진 '깡깡' 병 부딪히는 소리를 흥겹게 내는 검은봉다리 휘날리며 동네 뒷산으로 갔다.


동네 뒷산에는 앞머리에 스프레이 잔뜩 뿌려서 동그랗게 말아 올린 누나들과 무스로 왼쪽 머리는 내리고 오른쪽 머리는 바짝 뒤로 넘긴 형들이 정겹게 본드도 빨고  아지트가 있었다. 형과 누나들은 비싼 에라스토V 청바지와 니코보코 운동화, 의자 여럿 부셔먹은 리복 광고에 나오는 운동화도 신은 멋쟁이들이었지만 눈 마주치기도 무서웠다. 그들이 골목에 등장 하면 전봇대나 벽 뒤에 몸을 숨긴 채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최신 스타일이라 볼거리가 가득했다. 오후 4시나 5시 사이 출몰하므로 그 시간대엔 아지트 쪽은 얼씬도 안 했다. 


산길을 따라서 오르다가 산길을 벗어나 나무와 숲이 좀 우거진 구석진 곳으로 가다 보면 학교 철망 담벼락에 난 개구멍처럼 한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통로가 있었다. 거기를 몸을 조금 낮추고 들어가면 사방이 나무로  가려진 작은 공터가 나왔다.


"오예! 먼저 주우면 임자."


"내 거다. 내 거."


"야 좀 비켜라. 나도 좀 줍자."


역시 포인트답게 오랜만에 왔더니 풍년이었다. 지저분한 은박 돗자리가 있고 박스와 신문지도 깔려있었다. 88. 솔. 한라산 담뱃갑과 꽁초들도 널려 있다. 다 짜낸 쭈그러진 오공본드와 부탄가스 그리고 검은 봉다리들도 잔뜩 했다. 피가 묻은 여자 팬티를 봤던 어느 날엔 친구들과 '와아아아아아아 피다아아아아아아......" 외치면서 황급이 산을 내려오고 무서워 한동안 거기에 가질 않았다. 본드를 빨다가 싸움이 났고 깨진 병으로 누가 누군 가의 어디를 찔러서 피가 나니 급한 대로 팬티로 피를 닦았을 거라고 우린 추측했었다. 지금 생각하니 그 피는 그 피였거나, 그 피였던 게 아닌가 싶다. 


엄마는 우르르 다니는 형누나들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


"저렇게 깡패들처럼 우르르 다니면 봉고차가 와서 잡아간다. 이도 길 가는데 봉고차가 따라오면 얼른 도망치야된데이. 이 놈하고 잡아간다. 세수도 잘하고 옷도 흙장난하고 드릅게 다니지 말고 깡패, 거지처럼 하고 다니면 봉고차가 잡아간다. 알겠나."


"아. 또 그 소리가 알았다 쫌. 근데 엄마. 엄마도 화승이나 국제상사 다니면 안 되나?"


"와?"


"친구들이 내 신발은 보세란다. 월드컵이랑 프로월드컵이 다르나? 월드컵은 시장에서 팔고 프로월드컵은 태일이 엄마가 다니는 화승 르까프랑 정우 엄마가 다니는 국제상사 프로스펙스처럼 백화점에도 있다던데. 내 는 프로가 앞에 없으니까 시장표 보세라고 하면서 놀렸다. 그러니까 엄마도 신발 공장 메이커로 옮기면 안 되나."


"뭐라꼬? 공부나 해라. 어디 몬땐 거만 배우고 댕기노. 메이커라고 떡 부치놓고 돈만 비싸게 받지. 신발 다 똑같다. 엄마가 만드는데 그것도 모르겠나. 누가 그라드노. 그 아 공부도 몬하제? 그런 아랑은 같이 어불리지도 마라."


친구들과 나는 검은봉다리를 한 곳에 모아놓고 하나하나 수를 셌다. 덜 주운 애한테 내 거 하나 줬다. 많이 주운 애 덜 주운 애 결국엔 똑같이 나눌 거면서 주울 때마다 셋은 먼저 줍겠다고 와아 달렸다. 공평하게 공병을 나눈 우리는 뭘 먹을지 신나는 고민을 하며 슈퍼로 갔다.


"아줌마 빈병 바까 무도돼요?"


"어 그래 몇 개고. 세알리 보자."


소주 공병 20원, 맥주 공병 30원. 델몬트 공병 100원. 하지만 델몬트를 주울 확률은 굉장히 희박했고 주운 날엔 골목 친구들이 부러워하며 다음에 자기도 가 보게 어디서 주웠는지 정확한 위치를 캐물을 정도였다. 한 번씩 나는 오참물이 담긴 델몬트 병을 확 팔아버릴까 하는 충동에 휩싸이기도 했지만 엄마의 열정적인 물 끓이기를 보노라면 차마 팔아버릴 수는 없었다. 소주병 5개면 소고기면, 해피라면, 안성탕면을 지겨운 김치, 풀반찬대신 끓여 먹을 수 있다. 10개면 치토스를 먹을 수 있다.


씻지도 않은 더러운 손으로 소고기면 부셔서 누구에게 뺏길까 봉지 입구 꽉 쥐고.


씻지도 않은 더러운 손으로 치토스 한 봉지 더. 스티커 스릴 넘치게 긁고.


씻지도 않은 더러운 손으로 오란다. 밭두렁. 쫀듸기 쭉쭉 찢어 먹으면서 오징어게임 한창 중인 골목 친구들에게 달려갔다.


"묵고 싶제? 안 줄 거지롱. 메롱. 먹고 싶으면 행님아 하면서 절해 봐라. 그라면 내가 쪼매줄 수도 있고."


"드릅다. 안 묵는다 새끼야."


"왜? 나는 절할 수 있다. 절하께."


나는 얼른 라면봉지를 열고


"퉤. 퉤. 퉤! 우야꼬 침 묻어뿌따."


노동한 만큼 맛있는 것도 먹고 친구도 맛있게 놀려  내 인생 첫 아르바이트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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