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희로애락
"20% 먹고 나왔지!"
옆에 앉은 차장님의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들렸다. 주식 단타에 성공하며 벌어들인 수익을 팀원들에게 자랑하고 있었다. 그 순간 보고서 작성하던 내 손은 멈추었고, 힘겹게 모니터를 응시하고 있던 내 건조한 눈동자는 집중력을 잃었다.
전 세계에 재테크 열풍이 시작되던 2년 전, 난 묵묵히 일만 하고 있었다. 주식은 폭락 이후 급등하기 시작하고, 코인은 돈복사 버그라고 불렸다. 부동산 뉴스는 연일 신고가 경신을 알렸으며, 유튜브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에서 재테크 인플루언서들이 증가했다. 그렇게 불어온 재테크 바람은 사무실 안까지 들어왔고, 모두가 재테크에 빠져들게 되었다.
모두가 재테크에 빠져들었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재테크 성공을 위해 노력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 일확천금의 꿈을 꾸면서 찌라시들을 추종하고, 신뢰성이 담보되지 않는 인터넷 정보에 자신들의 월급을 맡겼다. 그래서인지 돈을 번 사람보다는 잃은 사람이 더 많았지만, 여전히 몇몇의 작은 성공신화들은 화두였다.
그렇게 옆자리 차장님의 작은 성공신화도 직원들에게 화두가 되었고, 이것은 나의 '화'를 일깨웠다. 업무시간에 매일 주식 단타로 돈을 버는 차장님의 모습에 불편함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평소 동료직원들의 업무태도에 관심을 두고 있진 않았다. 각자 생각하는 업무태도에 대한 기준은 다를 것이고, 굳이 남의 인생을 내 기준으로 평가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업무를 같이 하더라도, 내가 조금 더 하는 것에 불만은 없었다. 어차피 나도 업무시간에만 최선을 다하려는 '내 기준'대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은 나만 일하고 있는 모습에 '화'가 났다.
'화'가 난 근본적인 이유는 나만 일하는 '바보'라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회초년생인 나조차 느낄 정도로 시대가 많이 변했다고 한다. 평생직장의 개념은 사라진지 오래며, 회사에서의 성공보다는 화목한 가정을 가치 있게 여기는 사람이 많아졌다. 새로운 직업들이 생겨났을 뿐 아니라, 사람들의 직업 선호도가 달라졌다. 사회적 명예보다는 경제적 자유를 더욱 추구하게 됐으며, 이른 나이에 경제적 자유를 실현하고 회사를 그만두는 파이어족들도 생겼다.
나 또한 그렇다.
회사생활을 시작하기 전에는 나름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꿈'과 '직업'을 동일시하기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현실에 순응한 것인지, '꿈'을 위한 여정보다는 편하게 살고 싶은 것인지 모르지만, 현재 '직업'에서 원대한 성취를 하겠다는 강한 의지는 다소 부족하다. 다만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해서 직무역량을 쌓고, 이직시장에서 매력 있는 사람이 되고자 하는 작은 소망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언제부턴가 회사를 생계 안전장치로 여겼고, 업무적 성과를 위해 힘들기보다는 워라밸을 중요시했다. 그래도 난 업무시간만큼은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내 기준'을 지켜나갔다. 근데 이런 내 모습이 바보 같았다.
20% 수익을 냈다는 차장님은 평소에도 회사생활에 전혀 미련이 없어 보였다. 성과에 관심 없을 뿐 아니라 어떻게든 일을 줄이려 역량 없는 모습을 보였다. 오로지 관심 있는 것은 '부의 축적'. 그리고 나에게 회사생활에 목매지 말고, 돈을 벌 궁리를 하라며 매번 강조했었다. 과거에 팀장까지 하면서 정말 열심히 일했었지만, 결국 나에게 남은 것은 없다며 말을 덧붙였었다. 또 회사에서 승진하며 월급을 아무리 올려도, 부동산 가격과 물가상승을 쫓아가지 못한다며 회사가 전부가 아님을 내게 숙지시켰다. 모두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래도 나와 처한 상황은 달랐다. 난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한 초년생으로 투자를 위한 시드머니조차 없었고, 30년 넘게 일해야 하기 때문에 직무역량을 쌓아나가야 했다. 그리고 난 아직 승진의 단계가 많았고, 차장님은 정년퇴직까지 10년도 안 남긴 상태였다. 그래서 난 업무시간에는 회사생활에 집중하고자 노력했고, 내 나이에는 이게 정답이라고 느꼈다. 하지만 그날따라 이 생각이 바보 같았다.
집에 노트북을 챙겨갈 정도로 자발적 야근을 마다하지 않았지만, 당장 눈에 보이는 보상은 없었다. 1년 동안 열심히 땀을 흘려 작물을 길러내 수확하는 농부처럼, 직장생활의 보상은 연말에 이루어지는 '인사평가에 따른 급여인상'였다. 이것을 위해 대부분의 직장인은 매년 힘겨운 인내 과정을 보내게 된다. 하지만 이 보상은 요즘의 물가상승과 비교하면 부족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직장생활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고 여기게 된 것이다. 이 생각은 내 머리를 거쳐 감정에까지 도달했다.
바보 같이 나만 일하지 말자...
감정이 크게 요동치기 시작했고, 내 손은 스마트폰으로 증권계좌의 비밀번호를 다시 찾았고, 코인거래소 어플을 설치했다. 그리고 옆 차장님의 성공신화 이야기를 듣는데 동참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주식과 코인을 안 하면 진짜 바보라는 것에 확신이 생겼다. 그렇게 몇 주간 주식&코인과 회사업무 사이에서 방황했다. 초심자의 행운이었을까, 선택하는 종목마다 수익이 발생했고 욕심이 더해져 시드머니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이때부터는 '도박'과 다름없었고, 갈수록 회사업무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리고 마지막에 큰 손실을 보기 전까지 계속됐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노력 없이 도박처럼 행한 재테크의 결과였다. 다행히 손실은 투자수익을 잃고 원금을 보전하는 수준에서 멈췄다. 하지만 천만원 단위의 손실은 흐려진 내 정신상태를 바로 잡아주었다.
내 기준을 지키는 것이 최고의 재테크
뱁새가 황새 따라가면 가랑이가 찢어진다고 했다. 난 가랑이가 찢어질 뻔 한 뱁새였다. 계속 수익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내 실력도 초심자의 행운도 아니었고, 상승장의 흐름에 올라탔을 뿐이었다. 그래서 장 흐름에 따라 수익과 손실을 오가며 뇌에 도파민이 폭발해 이성이 마비됐었던 것 같다. 스스로 자신을 공격적인 투자가 가능한 위인이 못됨을 직감했고, 내 삶의 기준을 다시 선택했다. 그 후 회사업무에도 다시 집중하기 시작했고, 나름의 원칙으로 재테크를 병행하게 됐다.
하지만 그 후에도 혼란스러운 마음은 계속됐다. 집값이 계속 오르면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더욱 커져갔고, 옆에서 주식과 코인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아쉬움이 남았다. 하지만 '내 기준'에 따라 행동했다. 그래서 승진이라는 보상도 얻게 되고, 내집마련과 재테크에도 후회 없는 선택들을 할 수 있었다. 지금은 혼란스럽지 않다.
각양각색(各樣各色)
사람마다 모두 생긴게 다르고 얼굴빛이 다른 것처럼, 모두 자신만의 인생 스토리를 가지고 있다. 물론 더 나은 환경에서 인생을 시작하고,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부의 증가가 이루어지는 인생이 부럽기도 하다. 그러나 타인과의 계속된 비교는 '내 인생 스토리'의 기승전결을 해칠 것이다. 삶의 기준을 명확히 하고, 나와 맞는 방법으로 부단히 노력한다면, 내게도 분명히 좋은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 의심하지 않는다. 그런 기회가 내게 주어졌을 때, 선택할 수 있는 마음가짐을 만드는 것이 중요해 보인다. 그래서 이렇게 난 글을 써본다.
PS. 옆자리 차장님은 그 해에 퇴사했습니다. 그 후 우연찮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출근을 안 하니 절대적인 시간이 많아졌고 재테크에 더욱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부동산으로 큰 수익을 얻었고, 자신의 사업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제게 다시 강조한 것은 항상 눈과 마음을 열어두라는 것입니다. 회사생활을 열심히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하지만, 찾아온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회사 밖의 상황과 재테크에도 계속 관심을 두는게 꼭 필요하다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