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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비비레밸 Jul 22. 2022

직장인들의 잔혹동화 '내집마련'

직장인 희로애락

10년이 넘도록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곳이었다

 

사회에 첫발을 내딛고 가장 먼저 결심한 것은 '주거의 안정성' 확보였다. 제발 하루라도 빨리...



고등학생 때 6인1실 기숙사 생활을 했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2인1실 기숙사, 단칸방 고시원, 3인 원룸에 살았다. 입사 후에는 회사사택에서 모르는 선배와 동거했다. 그리고 개인공간을 갖고자 빌라 1.5룸으로 이사했다. 정말 많은 주거의 변화가 있었지만, 난 이번에도 투룸 빌라로 이사했다. 잦은 이사를 하다보니, 10년이 넘도록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단순히 잠을 자는 곳이었다.


기숙사, 고시원, 원룸들은 활동이 불가능한 작은 공간이었다. 하루종일 집에 있으면 답답함이 극에 달해 두통을 겪었다. 그래서 코로나 영향으로 재택근무가 도입되어도 난 즐겁지 않았다. 답답한 이 공간을 벗어나기 위해, 그냥 출근하는 것을 원했다.


집을 휴식공간이라 여기지 못했다. 이럴수록 여러 욕구 중에서도 '주거 안정성'을 최대한 빨리 이루고 싶었다. 내가 '주거 안정성'을 느낄 수 있는 기준은 명확했다. '내집마련'. 더 이상 2년마다 계약갱신이나 이사를 다니지 않아도 되는 것. 바로 내집마련이다. 이사를 원치 않다보니 추가적인 기준들도 생겼다. 첫째, 출퇴근에 큰 무리가 없어야 한다. 둘째, 결혼과 육아까지 가능한 크기와 편의시설


오랫동안 집에 대한 결핍이 있었기에, 사회초년생이 가질 수 없는 이상향에 가까운 기준들이었다. 그래서 현재의 불편함을 감수하기로 했고, 다소 불편한 자취생활을 이어갔다. 하루라도 빨리 이루기 위해. 그래서 조금 더 안락한 집을 선택할 수 있음에도 원룸생활을 고집했고, 가구나 가전에도 돈을 지출하지 않았다. 어차피 집에 있는 시간도 적으니, 괜찮다라며 편안함과 멀어졌다. 


'내집마련'을 위해 살고 싶은 동네와 아파트도 골라두고, 엑셀에 자금계획을 세웠다. 나름 분기별로 관리해가며 희망찬 미래를 꿈꾸었다. 시간이 흐르니 달성 불가능해 보였던 '내집마련'이 1년 뒤로 다가왔음을 실감했다. 조금만 더 불편하면, 앞으로 최소 '주거 안정성'을 누릴 수 있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잔혹했다



부동산 정책의 변화가 생기더니, 갑자기 부동산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아파트 매매가는 연일 신고가 경신을 반복했다. 그 결과 '내집마련' 계획의 저축목표는 달성했지만, 실현 불가능한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다. 충격적이고 혼란스러웠다. 이 시기를 위해 불편함을 감수해왔는데, 아파트 가격이 2배 이상 올라버리다니...


내 계획에는 치명적 오류가 있었다. 바로 시장변화에 대한 고민이 없었다는 것이다. 나는 멍청하게도 집 값이 오를 것이란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었다. 심지어 가격이 오르기 시작하고, 주변 친구들이 대출로 집을 살 때도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어리석었다.


나는 집을 주거 안정성의 목적으로만 바라봤는데, 누군가에게는 좋은 투자처였다. 혼란스러운 시장상황이 지속될수록 아파트 가격은 계속 올랐다. 걱정이 앞서다가도 막상 올라버린 집값 앞에서 내 계획은 요지부동이었다. 계획이 무용지물이 되고 난 뒤, 아쉬움과 후회가 가득했다. 특히나, 불편함을 감수하며 지내온 나 자신이 너무 한심했다. 짜증과 분노를 지나 자아성찰을 하며 수개월을 보냈다. 주변에서 2배가 된 집값을 자랑하는 유주택자를 부러워하는 마음을 최대한 숨긴 채...




나에게도 기회는 분명히 있었지만, 경험과 용기가 부족했다. 아쉬움이 미련이 되어버리자, 나는 매일 밤 아파트 시세 변화를 살폈다. 하지만 그 어디에도 정답은 없었다. 심지어 내가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저 시간이 흘러 내게도 행운이 찾아오기를 막연하게 기다렸다. 집값이 내려가기를 한참 기다렸고, 마침내 부동산 거품, 조정에 관한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다 금리인상 소식과 전쟁, 물가상승 등 실물경제에 적신호가 선명해졌다. 내가 생각한 기다림은 이게 아닌데...


혼란스러웠다. 집값이 내려가면 매매하려 했지만, 하락장에 대한 공포심에 휩싸여 혼란만 가중됐다. 집값이 오르면 오른다고 못 사고, 떨어지면 떨어진다고 못 사는 전형적인 개미의 모습이었다. 그러다 문득 결심이 섰다.



잔혹한 현실을 인정하자



움직이지 않고 기다린게 실수였다. 그리고 분수에 넘치는 이상향을 쫓은 것도 실수였다. 남들 모두가 원하는 아파트는 현시점의 내가 매수할 수 없다. 그리고 모두의 관심을 끄는 로또청약도 내가 될 리가 없다. 무리한 영끌은 금리가 오르면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불확실한 미래변수를 너무 고려하진 말자.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받아들이고, 현재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을 하자.


마음을 가다듬고 상대적으로 관심도가 낮아진 분양정보에 눈을 돌렸다. 실거주에 무리가 없으며, 분양가 부담이 적은 곳으로. 그리고 얼마 뒤, 분양가 상한제 아파트 청약에 당첨됐다. 속이 후련해졌다. 지금은 중도금 대출까지 마치고 신축 아파트 입주에 부푼 꿈을 꾸고 있다. 지금은 아파트 매수세가 더욱 하락했지만, 걱정이 들진 않는다. 몇 해에 걸쳐 도달한 다짐에 따른 선택이고, 아파트 1채가 인생의 전부가 되는 영끌선택을 한 게 아니기 때문이다.


어둡고 긴 터널을 방하다 끝내 출구에 도달했다. 비록 내가 터널에 들어설 때 기대한 출구는 아니지만,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이 만들어진 것 같다.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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