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곳에 있는 건
나를 아껴줄 좋은 핑계가 된다.

프롤로그① - 뉴욕의 낮과 밤에서

by 김인규



익숙한 장소를 떠나오는건 나를 아껴줄 좋은 핑계가 된다.

지난여름, 나는 한국에서 가장 멀어질 수 있는 곳으로 갔다.

오랜 시간 날 아프게 하는 것들이 있었는데 그것들로부터 멀어지고 싶었기 때문이다.


뜻도 모르는 글자가 좋았다.

아무 말이나 아무렇게 말해도 알아듣지 못한다는 건 반가운 일이었다. 어떤 말이든 그들에게는 알 수 없는 말일 테니까. 그게 좋았다. 외국에서 한글을 끄적거리는 일은 안심되는 일이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들 틈새에 섞여있는 걸 좋아했다. 그 사이에 둘러싸여서 그들도 역시 알아듣지 못할 말을 조용히 써 내려가곤 했다. 안전한 비밀처럼 느껴지던 그 시간이 날 위로했다.


한강 작가도 <소년이 온다>의 집필을 마치고 <흰>을 구상하는 동안 한국을 떠나 있었다고 했다. 허수경 시인도 시를 쓰며 먼 나라에서 고고학을 공부했다고 들었다. 누구보다 한글을 정확하게 사용하고 발굴해낼 이들이 한국을 떠나 있다는 건 신기한 일이다. 더 정확해지기 위해서 떠나야 하는 때도 있는 걸까? 사랑이 지나가야 사랑을 이해할 수 있듯이, 행복에서 멀어져야(물리적으로든, 시간적으로든) 행복을 자각할 수 있듯이.

사람을 이해하는 법에 대해서 배우고 싶다. 읽다 보면 알 수 있을까. 내가 책에서 찾은 표정만큼 나는 세상을 이해할 수 있는 걸까.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쓰는 만큼 우리는 나아질까. 믿지도 않으면서 나는 읽고, 또 쓴다.




뉴저지로 넘어가는 버스에서 바라본 맨해튼

뉴욕의 낮에서


"미국에서 나는 외국인 노동자였다."

미국에는 'Small talk'라는 문화가 있다. 얼굴을 마주치거나 업무상 해야 할 말이 있을 때 안부를 묻거나 꼭 짧은 대화를 나눈다. 다행히 짧은 인턴 생활이라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나는 사실 영어를 잘하지 못했다. 그래서 저 멀리서부터 누군가 걸어와 Small talk가 시작될 조짐이 보이면, 쉽게 알아들을 수 있고 자연스럽게 대답할 수 있는 주제로 선수를 쳐야만 했다. 매일매일 말 걸 핑계를 미리 고르고, 대답을 준비해 가곤 했다. 하루 종일 사람을 관찰하고 책상에는 뭐가 있는지 살펴보다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말을 한 번 걸어볼까 고민했었는데, 그럴 때면 꼭 짝사랑을 하는 기분이었다. 먼저 말을 걸어 자연스럽게 대화를 한 날에는 그게 그렇게 뿌듯하고 신기했다. 사람들과 대화하는 게 스트레스가 아니라 즐거울 수도 있다는 걸 느낀 건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런 날엔 정말 사람과 사랑에 빠질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가끔 나에겐 저 삶은 어떤 삶일까 상상하게 만드는 단상들이 있다. 내 발표를 지켜보는 교수님의 미묘한 표정이나 사뿐사뿐 바른 자세로 잘도 걷는 사람들 혹은 어쩐지 쓸쓸한 부모님의 뒷모습 같은 것들. 뉴욕의 낮에서 마주한 단상 중 하나는 홈리스(Homeless)였다. 화려한 도시의 풍경과 모순적이게도 뉴욕 여기저기에는 종이 박스에 'Fuck you, Trump'라는 글을 적어두고 아무렇게나 누운 홈리스가 즐비했다. 미국에선 홈리스를 만나고 온 날이면, 그러니까, 거의 매일 그 삶을 상상하며 소설을 읽었다. 주로 잘못도 없이 비참한 결말을 맞는 주인공의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런 이야기들은 세상은 잘못이 없어도 얼마든지 비참해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는데, 그건 결국 내 모습을 거기서 찾고 싶어서였다. 나는 그 주인공처럼 별다른 잘못 없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랐을 뿐인 불쌍하고 어찌할 바를 모를, 그런 상황에 처해있다고 믿으며 스스로 위로받곤 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그때의 낮을 견딜 수 없었다.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에서 바라본 어느 날의 우리

뉴욕의 밤에서


"안녕."

나는 안녕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안녕이라는 인사는 만날 때도 헤어질 때도 안녕이라서 만나면서도 헤어질 것 같고 헤어지면서도 다시 만날 것만 같다. 내게 와서 돌려줄 수 없는 걸 두고 간 사람들이 있었고, 돌려받지 못할 것들을 가져가 버린 사람들도 있었다. 좀 더 오래 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언제나 어려웠다. 관계에서 금이 간 걸 발견할 때마다 접착제를 발라두었는데, 그 때문에 오히려 지저분한 모습으로 깨어졌다. 멀리 떠나보면 떠나는 마음도 이해할 수 있을 줄 알았다. 비행기를 타고 14시간을 날아왔는데, 어디까지 가야 하는 걸까.

우리는 모두 남이다. 당신에게 내 슬픔은 너무 쉽게 지겹고 나 역시 어떤 날들의 당신에게 잔인했을 거다. 예술은 삶을 긍정하고 껴안기 위해 한다는 명제를 믿는다. 예술은 기존 질서를 위반함으로써 태어난다고 한다. 기존 질서를 위반하고 새로운 것을 창조하려는 노력에 실패하는 모든 행위를 예술이라고 부를 수도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아마도 실패하겠지만, 더 나은 삶을 향해 애쓰는 삶 자체가 예술일 수도 있겠다. 그런 이유로 나는 창작을 한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만든다. 그러나 글은 살아온 깊이만큼만 쓸 수 있는 것이어서 언제나 부끄럽다. 더 나아지고 싶어 창작을 하지만 할수록 부끄러워지는 이 모순을 견디기 힘들었다.

그런 부끄러움 속에서 나를 질투하게 만들었던 사람들이 있다. 더 많이 읽어야 하고 배워야 한다는 건 누구나 안다. 그러나 가끔,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지켜보다 보면 그러고 싶어 지는 삶을 사는 사람들 혹은 작품이 있다. 작은 방 안에서 오래도록 질투하게 만들었던 작품들이 나에겐 있다. 그런 사람들(작품)에 대한 글을 쓰고 싶다. 그들에 관한 이야기라면 처음 보는 사람과 밤을 지새울 수도 있다. 책상 위에 올려진 책이, 핸드폰 플레이리스트 목록이, 계속 돌려보는 영화 목록이 그 사람을 설명한다고 믿는다. 잊지 못해 몇 번씩 돌려보는 콘텐츠가 그 사람을 조금씩 만들어 나간다. 나의 많은 부분을 만들어온 작품들이 있다. 나를 소개해야 한다면 앞으로 써 내려갈 이 작품들과 함께 소개되고 싶다.

미국에서 해가 질 때쯤이면 반딧불이 옆에서 책을 읽는 일이 퍽 즐거웠다. 옛 선조들은 반딧불이를 모아 책을 읽었다길래, 스무 마리쯤 모아 책을 읽어본 적도 있다. 마당에 반딧불이가 있는 밤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반짝일지 몰라 더 소중하고 아름다웠다. 우리의 오늘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무책임한 기대를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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