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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규 Nov 13. 2019

오늘 하루가 원망스러웠다면

김애란 작가의 『비행운』을 읽고

 오늘 하루가 원망스러웠다면, 이 소설을 읽어보길 권한다. 

김애란 작가의 소설집 『비행운』이다.『비행운』 『『비행운』비행운』 『비행운』





< 비행운, 비행운(非幸運), 비행운(飛行雲) > 


 우찬제 문학평론가가 해설에서 지적하고 있는 것처럼 이 책의 제목은 비행운(飛行雲)과 비행운(非幸運) 두 가지로 읽힐 수 있다. 하나씩 살펴보자. 먼저 소설 속 직접적으로 언급되는 부분을 살피면 비행운은 “안도의 긴 한숨 자국“(p176, 「하루의 축」)이다. 좀 더 단순하게 읽으면 비행운(飛行雲)은 비행기가 지나간 궤적이다. 하나의 삶이 하나의 비행이라고 볼 때 삶이 지나가는 궤적으로 읽힐 수 있다. 또 그것이 비행기라는 점에서 지금의 삶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겠다. 행운이 아니라는 뜻의 비행운(非幸運)도 적절해 보이는 이유는 김애란의 소설에서 삶을 사는 것이 행운/비행운의 문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소설 속 인물들이 삶에 대해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거나, 큰 잘못을 저질러서가 아니라 평범하게 노력하다 운이 없게도 삶의 막다른 골목을 마주하는 과정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물속 골리앗」에서 ‘나‘가 아버지를 잃고, 세상을 뒤덮는 장마에서 어머니마저 잃는 일이 소년의 부주의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 그건 어린 그에게는 ”한쪽 편만 드는 십자가“(p.112)를 원망해야 할 만큼 운이 없는 사건일 뿐이다.「벌레들」에서 아이와 '돈벌레'가 겹쳐져 보이게 서술될 만큼(p.58) 부담스러운 일이었겠으나 부부가 아이를 가진 걸 잘못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남편이 일을 하느라 전화를 받기 어렵다는 정황을 공들여 설명하고 있고(p.68,70,72,75), 핸드폰을 잠시 잊은 것 정도를 큰 잘못이라고 말하기도 어려우니 이들에게도 '운이 없었다’는 표현이 적당해 보인다. 「서른」에서도 주인공은 ‘혜미’를 식물인간으로 만드는 직·간접적 이유이기는 하지만 그건 이미 주인공의 비행운(非幸運)에 의한 결과이다. 그녀가 가르친 학생들처럼 열심히 공부해서 ‘겨우 자라 내가’(p.297)됐지만 학자금 대출에 취직은 되지 않고, 아버지의 사고로 집안이 휘청거리다 전 남자 친구에게 속아 ‘다단계’에 빠지게 된 그녀에게도 나쁜 사람보다는 비행운(非幸運)이라는 말이 적절해 보인다. 『비행운』의 다른 소설도 이런 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비행운』은 비행운을 그리고 싶었지만(‘지금의 삶으로부터 떠난다’와 ‘안도하고 싶다’는 복수의 의미에서), 비행운(非幸運)을 마주하게 된 이들이 그리는 비행운(飛行雲, 삶의 궤적)인 셈이다. 





< 비행운(非幸運) - 표정의 궤적 >


 앞에서 설명한 이유로, 이 소설은 비행운(非幸運)의 궤적을 따라가며 읽는 게 효과적일 듯하다. 논리적인 해석도 중요하지만 예컨대 “제목을 알 수 없는 노래… 생각도 잘 안 나면서 잊을 수 없는 음악”(p.147,「그곳에 밤 여기에 노래」)으로 각자에게 다가오는 장면들에 주목하면서 인물들의 비행운(非幸運)에 동참해야 한다고 믿는다. 

 보통 내가 ‘어떤’ 표정이라고 부르는(설명할 수 없고, 설명하고 싶지도 않은), 내 마음은 흔드는 것은 이런 순간이다. “정착의 느낌을 재생 반복하기 위해“(p.214) 손톱을 관리받던 여자가  부서진 부케와 여행 가방 옆에서 ”멀리 쫓겨난 사람처럼“(p.244) 벤치에 앉아 있거나(「큐티클」), 여행에서 ”말하자니 쩨쩨하고, 숨기자니 옹졸해지는 무엇“(p.271) 때문에 틀어진 두 여자가 관계 회복의 실마리인 다빈이 오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되고 맥없이 먼 곳만 바라보는 순간.(p.286「호텔 니약 따」) 또는 방에 돌아와 선배가 내 팔에 남긴 멍과 어느 날 내가 병만의 팔에 남겼던 멍자국을 생각하며, 선배를 원망하지도 못한 채 상복을 입고 방 안에서 가지 못한 병만의 장례식을 홀로 울며 치르는 순간. 

 책에는 이런 단편 8개가(혹은 표정들이) 비행운처럼 늘어서 있다. 책을 읽으며 우리의 마음에도 가느다란 비행운 한 줄이 새겨지기를, 지금껏 몰랐던 표정을 당신의 얼굴에서 발견하기를 가만히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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