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공연 [리뷰] 아빠와 아들의 뜨거운 브로맨스 - 트롯열차 피카디리역
폭우가 쏟아지는 날이었다.
아버지는 혼자 지하철을 타고 오셨고 나는 서울에서 그를 맞이했다. 함께 오고싶었으나 회사 일이 밀려 휴가를 쓰지 못한 탓이다. 평소보다 많은 양의 업무를 단시간 내에 압축해 해결하고 조금 일찍 건물을 빠져나왔다.
비는 여전했다. 다행히 기세가 조금 줄어들었는지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있었다. 나는 걷기로 했다. 이만하면 금방 가겠지 싶어서였다. 그런데 웬걸. 빗방울이 다시 거세지기 시작했다. 주변은 온통 물웅덩이가 됐고 들이치는 비를 막을 순 없었다. 신발에는 물이 찰랑거렸고 바지 밑단이 온통 젖어 무거워졌다.
잠시 더 걷다보니 공연장이 나왔고 그 근처 카페에서 홀로 차를 한 잔 마시고 있던 아버지가 보였다. 그 역시 바지 밑단이 조금 젖은 채였다. 폭우를 뚫고 혼자 서울까지 올라왔을 모습이 눈에 선했다. 내 마음도 덩달아 무거워졌다.
아버지는 웃으며 내게 차 한 잔을 권했다. 평소보다 더 과중했던 업무 끝에 비를 맞으며 걸어온 내 모습을 보고 마음을 풀어주려 했을 것이다. 괜히 울컸했다. 하지만 오늘은 좋은 날. 근처에서 간단히 끼니를 해결하고 공연장으로 들어섰다.
공간은 생각보다 넓었고 무대는 가까웠다. 아빠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장면을 나는 봤다. 이렇게 가까이서 가수들을 볼 수 있는거냐고 아이처럼 신나하는 모습이 낯설었고 좋았다. 곧이어 공연이 시작됐다.
열차를 통해 과거로 돌아간 우리는 그 시절의 추억으로 거슬러갔다. 나에겐 실제로 없는 추억이지만 당신에겐 실제였을 그 시간을 함께 돌아보며 그의 인생을 떠올려봤다. 곡 하나하나가 이어질때마다 분위기는 달아올랐고 현장의 분위기도 좋았다.
좋은 공연에 부모님을 데려가고 싶어도 부담스러운 경우가 종종 있다. 요즘은 보다 자유로워진 분위기지만 공연장에서 타인에게 피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하는 문화가 강하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을 앉아있어야하는 공연시간이 부모님께 답답하지는 않을까, 비싼 티켓 값을 지불하고도 주변 관객으로 인해 만족하지 못하실까 걱정되기도 하다.
하지만 '트롯열차 피카디리역'은 그야말로 부모님과 함께하기 최적인 공연이다. 타겟층이 트로트를 사랑하는 윗세대인만큼 부모님을 모셔가면 사랑받을 수밖에 없다.
평소 티비 프로그램에서 자주 보던 혹은 경연 프로그램에서 응원하던 트로트 가수를 실제로 만날 수 있는 기회 내 생각보다 아버지를 훨씬 신나게 만들었다.
과거의 추억부터 전부 훑어내려가며 다양한 시간을 표현하는 점과 희노애락을 전부 표현하는 방식의 노래 구성도 좋았다. 먼 지방에서 공연을 보러 왔을만큼 애정을 가지고 계신 분들도 많고 트로트 가수 특유의 살가움도 더해져 신나게 즐길 수 있는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와 상기된 얼굴로 웃는 아버지와 잠시 앉아 대화를 나눴다. 평소 가고싶으셨던 해외여행보다 이게 더 좋으시다고, 비슷한 공연이 있으면 시간을 빼놓을테니 꼭 다시 같이 가자고 말했다.
대화를 나누는 사이 아버지가 좋아하던 한 가수가 퇴근을 하고자 나왔고 나는 사진 한 장을 같이 찍어드렸다. 덕분에 좋은 추억이 하나 더 생겼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많이 왔다. 택시를 불러준다고 하니 평소 택시는 커녕 버스도 잘 타지 않으시는 아버지가 잠깐의 고집 끝에 순순히 택시에 타셨다.
한동안 더 감상을 쏟아내던 아버지는 잠에 들었다. 바쁜 일정을 마치고 혼자 서울까지 올라와 비를 맞은 시간들이 그대로 무겁게 그를 덮은 듯했다. 하지만 얼굴은 웃고있었고, 나는 비가 오는 창밖을 쳐다보며 감상에 잠겼다.
쉽게 잊고싶지 않은 추억이 마음에 또 하나 자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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