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밤, 소설
내가 소설을 읽는 이유는 어떤 표정을 발견하기 위해서이다. ‘어떤’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는 표정의 사람들을 나는 찾아다닌다. 특별히 게으르거나 못나서가 아니라, 나쁜 짓을 잔뜩 해서가 아니라(물론 그런 인물도 종종 존재한다.) 눈앞의 삶을 충실히 살아가다 보면 돌연 피어나는 얼굴. 하릴없이 마주한 삶의 진실 앞에서 저마다의 표정을 가지고 서성이는 이들이 있다. 그런 표정을 바라보는 일이 괴롭다. 그래서 소설을 읽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왠지 그것은 내가 어딘가에서 만났던 과거인 것 같아서, 예정된 내일인 것만 같아서. 도저히 피할 수가 없다. 주어진 길을 열심히 걸었을 뿐인데 인생의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게 되는 인생도 종종 있다는 것을 소설을 읽는 동안 이해하게 되었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어딘가에서 누군가 그런 표정을 짓고 있다는 것을 떠올리면 나는 어쩔 도리 없이 다시 소설을 꺼내 든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그냥 그 표정을 자꾸만 만나고 싶다. 그리고 알아봐 주고 싶다. 거리에서 그런 표정을 실제로 만나게 돼도 알은체 할 용기나 딱히 해줄 말은 없지만 마음이 그렇다. 어느 책에서 읽은 것처럼 당신에게 내 슬픔을 너무 쉽게 지겨울 테니까. 나 역시도 당신들이 지겨웠을 테니까. 어쩌면 남의 일이어서 쉽고, 잔인했던 날들에 대한 반성 같은 건 아닐까. 소설을 읽는 일이 이렇게나 두렵고 매혹적인 일이었나.
진실은 어린 시절 긴 밤을 지나 크리스마스 아침에 머리맡에 놓여있는 선물을 열어보니 빈 상자였다는 이야기 같아서 언제나 기대를 배신하고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비어있는 허무함뿐 이라면 좋겠지만 그 상자는 사실 판도라의 상자 같은 것이어서 오랜 시간 기다렸는데 원했던 것은 거기 없고, 도리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진실이 물밀 듯 밀려온다. 그럼에도 언제나 희망만은 우리 곁에 남는 것이어서 나는 읽고 또 쓴다.
요즘 나에게 소설 읽는 일은 그렇다. 설명할 수 없는 표정을 마주하고,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나도 따라 망연한 표정을 짓는 일. 그리고는 하릴없이 또 다른 표정을 찾아 나서는 일. 더 읽다 보면 조금은 나은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은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사실을 믿지도 않으면서 계속 읽어나간다. 내가 소설을 읽으며 지었던 표정을 이제 당신이 내 글을 읽으며 짓게 되길 가만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