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여행은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다.

프롤로그② - 한국의 낮과 밤에서

by 김인규

모든 여행은 일상으로 다시 돌아온다.

나를 아껴줄 핑계 없이도 우리는 계속 살아가야 한다.


인턴을 하면서도 주말마다 여행을 다니곤 했는데, 자주 갔던 장소는 미술관이었다.

전 세계 예술의 최전선이라는 뉴욕에서 보는 작품들은 짜릿, 하기에는 내가 미술을 너무 몰랐다.

인터넷으로만 보던 그림의 붓질 자국 하나하나를 실제로 보거나, 아름다운 색감에 둘려 싸여있는 일이 즐겁기도 했지만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작품도 있었다. 특히 현대 미술이 나에게 그랬다. 이제 나는 저 문장이 어떤 말인지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실제로 미술관에서 이보다 더한 걸로, 새하얀 캔버스 위에 가늘고 붉은 줄 하나를 세로로 찍 그어놓은 작품도 봤다. 헤어 실버맨에게 그 붉은 줄 그림에 대해 언급하면서, 그런 건 나도 하겠다고 했더니, 선생님이 자신만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안 했잖아.”- 매튜 퀵의 소설 『용서해줘, 레너드 피콕』 중에서-


그 무렵 나는 글을 쓰지 못했다. 문화콘텐츠학과에 와서 다양한 장르의 많은 작품을 보고 그 매력을 알게 된 건 큰 행운이었는데, 좋은 작품 보기를 즐기다 보니 눈이 너무 높아져 언젠가부터 <쇼생크 탈출> 정도 되는 영화의 시나리오가 아니면, 신형철 문학평론가만큼 작품을 해석한 글이 아니면 만족할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대학교 3학년에 불과한 나는 당연히 그런 글을 쓰지 못했고, 스스로가 부끄러워 자꾸만 쓰지 않게 돼버렸다.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의 글을 바라볼 때면 ‘에이 저 정도는 나도 하지.’하며 건방져지던 중이었다.

가능성만 남겨두며 삶을 지켜보기보단, 이제 부끄럽더라도 여기에서 다시 시작하려 한다.



한국의 낮


낮에 우리는 사람을 만나야 한다. 보통 사람을 만나는 일은 학교나 일 그리고 복잡한 관계가 얽혀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어렵다. 좀 더 가벼워졌으면 좋겠다. 두둥실 흘러가듯이. 일상을 너무 진지하고 무겁게 보낼 필요는 없는 것 같다. 가벼운 마음으로 일상을 살고 싶다는 말을 쓰지 못해 이틀이나 고민하고 있는 걸 보면, 나한테는 정말 필요한 것 같기도 하다.

좀 더 가볍고 편하고 싶지만 나 역시 그 관계에서 잘 해내고 싶다. 그래서 때론 억지로 웃기도 하고 맘에도 없는 말을 주고받는다. 사람들은 누구나 '페르소나'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고 한다. 그 뒤에 숨겨진 '진정한 자아'를 마주하는 일의 중요성 같은 이야기를 하기도 하지만, 페르소나를 쓰고 살아가는 게 나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너무 솔직해지면 서로 부담스럽지 않을까. 나도 대부분과의 사람들과는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다. 공손한 얼굴로 환하게 웃으면서 즐겁게 지내고 싶다.


그런 마음으로

낮에는 가볍고 공손한 에세이를 쓴다.



한국의 밤


글은 천천히 말하는 방법이라서, 글 쓰는 게 어렵다면 너무 쉽게 말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우리는 글처럼 생각하고 글처럼 말해야 한다. 나는 항상 말이 쉽고 글은 어려웠다. 그리고 어쩐 일인지 오래 고민하다 적어 내려 간 글이 더 부끄러웠다. 글은 기록으로 남고 말은 휘발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 말도 누군가에 마음에는 남는다. 결국 나에겐 부끄러움을 모르는 말하기와 부끄러움을 아는 글쓰기가 있던 것이다.

그러니까, 글을 쓴다는 것은 생각한다는 것이다. 관성에 저항하기 위해서 나는 글을 쓴다. 읽지 않고 쓰지 않을 때는 자꾸만 익숙한 것을 선택하게 된다. 익숙한 것은 쉽고 편안한 것이어서 때론 이기적이고 무례하다. 혹은 사람을 상대하는데 서툴고 쉽게 당황하는 어느 날의 내가 맘에도 없는 소리를 자꾸 내뱉곤 한다. 그런 날엔 내 마음의 무언가가 자꾸만 메모장을 열게 만든다. 쉽게 뱉어버린 말들을 떠올리며 쓰는 일은 부끄럽다. 불공평하게도 쉽게 한 말들이 쉽게 지워지지는 않아서 오래도록 떠올리며 글을 쓴다. 나의 글쓰기는 언제나 참 쓰다.

그런 밤엔 말하고 싶다. 상처 주고 싶지도 상처 받고 싶지도 않았다고, 그러나 오늘도 실패했다고. 누군가의 말처럼 솔직하되 노골적이지 않기 위해 시나 소설을 써보기도 한다. 어떤 날엔 영상이나 게임을 만든다. 하지만 정말 쓰고 싶은 말들은 쉽사리 쓰이지 않고, 만들고 싶었던 작품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무참한 표정을 하고 돌아다니다 보면 내가 하고 싶었던, 그러나 하지 못하는 것들을 해내는 사람들(작품들)을 마주한다. 그런 것들을 읽다 보면 원망스럽다. 부끄럽고 또 부럽다. 그런데 그 질투가 자꾸만 내일을 기대하게 만든다. '어떤'표정을 짓고 있을 때 나를 위로했던 것들이 있다. 나는 행복해지는 방법에 대해서라면 잘 모르겠다. 그러나 행복해지기까지 내 곁에서 함께 견뎌준 작품들이 있다. 그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다.


이 밤의 우리가 시간이 걸려도 반드시 행복해지길 바란다.


그런 마음으로

밤에는 질투하는 것들에 대해서 쓴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