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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인규 Feb 22. 2024

소설과 과학이 중첩되어 있는 슈뢰딩거의 단편소설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 소설일까 과학일까


더 나은 삶을 상상하기 위해 


상상력은 삶의 좋은 재료이다. 돌이켜보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은 상상력을 통해 발전해왔다. 새처럼 하늘을 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비행기를 만들었고, 멀리 떨어져있는 사람과 대화할 수 있을 거라는 상상이 전화기를 만들었다. 아파트도 자동차도 창밖의 거리와 음식도 물론 상상력에 의해 탄생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스템이나 평등과 자유의 가치, 공정함의 가치도 마찬가지다.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은 상상력의 소산이다.


상상력의 영역은 콘텐츠에 활용되는 픽션이나 허무맹랑한 공상에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는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고 꿈꾸고 그것을 실현해나간다. 그러므로 나는 지금 상상에 머물러 있는 것들도 언젠간 현실이 될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품으며 상상을 멈추지 않으려 노력한다. 기술은 상상을 실현시키지만, 상상은 기술이 나아갈 방향성을 제시한다. 그래서 상상력은 중요하고 소중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상상하는 일은 쉽지 않아진다. 반복되는 하루하루를 살다보면 눈 앞의 현실에 더 집중하게 되고 어느새 상상하지 않는 것에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새로운 것을 상상하는 여유는 사치처럼 여겨지곤 한다. 이처럼 냉소적이 되기 좋은 세상이지만 이상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현실주의자가 되기를 꿈꾸며 상상력을 잃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나는 더 나은 세상을 꿈꾸기 힘들어지는 순간마다 다양한 작품을 뒤적거린다. 그러다 종종 SF소설을 꺼내든다. 거기서는 유독 독특한 상상력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슬픈 일이지만 이제 우리에게는 매개체 없이 상상하는 일이란 어려워졌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우리의 상상력이 영영 메마르지 않도록 돕는 것들이 있다는 건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 대신 상상의 세계를 구현하고 그 세계 속으로 초대하는 작품들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소설일까 과학일까 


그런 마음으로 원종우 작가의 SF소설 <나는 슈뢰딩거의 고양이로소이다 >를 골랐다. 팟캐스트 <파토의 과학하고 앉아있네>로 유명한 그의 이번 책은 형식부터가 독특하다. 과학과 소설이 결합된 기묘한 형태이다. 작가의 말에서 언급하고 있는 것처럼 한국에서 SF장르는 불모지(시장의 크기 측면에서)이기는 하지만 소설에 과학적 지식을 결합하는건 사실 드문 일이 아니다.


작가가 소설의 앞이나 뒤에 기획의도를 담은 작가노트나 작가의 말을 덧붙이는 경우도 많으니 어쩌면 이 책은 조금 더 친절한 책일 뿐 특이한 책은 아닐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내가 이 책을 독특하다고 말하는 것은 앞설과 뒷설이 마치 과학 도서처럼 과학지식을 함께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배경이나 작품에 대한 설명도 아끼지 않는다. 

작가들에게는 작품으로만 말해야 한다는 강박같은게 존재한다. 모파상, 오 헨리와 더불어 세계 3대 단편 작가였던 안톤 체호프의 말을 빌리면 이렇다.





“달이 빛난다고 말하지 말고, 깨진 유리 조각에 반짝이는 한 줄기 빛을 보여줘라”




이 문장의 원래 맥락은 글을 쓸 때 단순히 설명하지 말고 묘사하라는 것이겠지만, 좀 더 폭넓게 적용해볼 수도 있지 않을까. 작가는 자기 작품의 빛나는 부분이 어디라고 말하지 말고, 작품 그 차제로 빛나도록 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에 직접 해석이나 각주를 다는 것은 작품이 작품 그 자체로 충분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한다고 생각하는 관점도 더러 있다.


그렇다면 이 책이 설명하기를 아끼지 않는 것은 과한 친절일까. 그럴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책이 지향하는 바가 달랐다고 말하고 싶다. 그는 ‘앞설‘에서 배경이 될 과학지식을 본격적으로 설명하고, ’뒷설‘에서는 작품의 아이디어나 설명을 풀어 놓는다. 소설의 앞뒤에 과학 이야기를 풀어놓는 이 책은 소설이면서 과학책 같기도 하고, 과학책이면서 소설이기도 하다.


물론 장단점은 존재한다. 어려운 개념들을 쉽고 편하게 풀어나갈 수 있는 것은 분명 과학 커뮤니케이터로 오래 일해온 그의 실력일 것이다. 그 해설과 함께하는 과학과 소설은 부담스럽지 않고 재미있다. 그런 덕분인지, 이 책은 누군가가 들려주는 이야기 같았다. 소설 자체가 기본적으로 이야기이지만 좀 더 친근한 느낌이다. 문학작품이라기보다는 친근한 동네 아저씨가 들려주는 재밌는 이야기 같달까. 접근성이 좋은 소설이다. 과학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쉽게 읽힐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러나 이 책의 아쉬운 지점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SF소설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음에도 소설이라기보다는 과학을 소개하기 위해 고안된 이야기 같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일부 작품은 앞설과 뒷설을 함께 읽지 않으면 단번에 이해하기 쉽지 않은 이야기나 설정도 있었다. 개인적으로 몇몇 작품은 앞설과 뒷설을 제외하고 소설로만 바라봤을 때 아쉬웠다. 과학 설명을 위한 재밌는 이야기가 아니라 소설로써 보여줘야 하는 그 무언가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면 앞설과 소설 그리고 뒷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도 말할 여지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나름의 성공을 거둔 형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판단은 독자 각자의 몫이다. 이 책은 소설일까 과학책일까 혹은 둘 다 일까.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관찰되기 전까지는 죽었는지 살았는지 확정되지 않은 것처럼 책을 열어 직접 읽어보기 전까지는 그 무엇으로도 확정되기 전인 슈뢰딩거의 단편 상태일 것이다. 독자에게 읽히지 않는 글이란 아무 의미도 가질 수 없으니까. 각자의 감상으로 이 책을 확정해주시길 기대한다.  


아트인사이트 전문: https://www.artinsight.co.kr/news/search.php?q=김인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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