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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Sep 25. 2017

나도 없어요.

사이 좋은 우리 이웃의 이야기

내방 2층 창문에서 3층으로 연결된 빨랫줄을 통해 쪽지가 내려왔다. 

- 혹시 물 남은 게 있나요? -

조잡한 글씨로 적혀있는 쪽지는 작성자의 심정을 표현하듯이 다급하게 작성되어 있었다. 내용은 간결했지만, 정말 다급하게 써 내려간 글씨였다.


그 문장을 이해하는데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 쪽지를 읽는 순간 내가 의식하지 않기로 했던 욕구 하나가 불쑥 피어올랐다. '갈증'

갈증을 떠올리자, 내 목이 타들어가긋 조여오고 입술이 바짝 말랐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고, 책상 위에 있던 아무 책이나  한권 꺼내서 페이지 위에 다급하게 글씨를 써 내려갔다. - 아뇨 나도 없어요. - 종이를 찢어 빨랫줄에 묶은 뒤 줄을 2번 정도 짦게 당겨서 신호를 보냈다.


쪽지는 빨랫줄을 통해 끌려 올라갔고, 20분 뒤쯤 다시 쪽지 하나가 내려왔다. 

- 아무래도 골목 옆에 있는 슈퍼마켓에 가봐야 될 것 같습니다. - 


나는 그 쪽지의 모호한 표현에 짜증이 치밀었다. 쪽지에 적혀있는 슈퍼마켓에 물을 구하기 위해 밖에 나간다는 위험한 표현은 -가봐야 될 것 같습니다.-라는 표현으로 자신이 출발한다는 뜻인지 함께 가자는 표현인지 모호하게 적혀 있었고, '물을 구하러 가야 될 것 같지만 혼자서는 두렵습니다. 당신도 같이 가야 되지 않을까요?' 라는 돌려서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곧바로 답장을 작성하지 않았다. 골목이 내려다 보이는 창문으로 걸어가 조용히 커튼을 살짝 열어 밖을 내려다봤다. 3층 남자와 나를 집 밖으로 나갈 엄두를 못내게 만들고 지기 집안에 처박히게 만들었던 존재들이 여전히 골목을 맴돌고 있었다. 그때와 똑같은 모습으로 말이다.


1층의 노부부가 탈출을 시도한 게 3일전, 그들은 경찰을 불러오겠다며, 집을 뛰쳐나와 골목을 밖으로 벗어났지만, 잠시 뒤 귀를 찌르는 소름 돋는 비명만 들렸을 뿐 다시는 그들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그 뒤로 3층 남자와 나는 목소리를 내는것  자체도 그것들에게 들릴것처럼 서로 약속한 것처럼 쪽지로 대화를 시작했다.


나는 3층 남자에게 보낼 답장을 작성했다. 

-저는 군대에서 무릎을 다친 뒤로 달라기를 못합니다. 함께 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

빨랫줄에 쪽지를 걸고 3번 정도 당겼다. 쪽지는 빨랫줄을 통해 올라갔다. 한 시간 정도 뒤에 3층 남자의 답장이 도착했다.


-그렇군요, 제가 혼자 가겠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슈퍼에 도착한다고 해서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을것 같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남은 음식을 들고 갈수도 없구요. 혹시 필요하시다면 집에 있는 상비약이랑 음식을 좀 내려다 드릴까요?- 

마침 배가 고팠다. 날짜가 지난 식빵을 뜯어먹은 지 이틀. 나는 쪽지만으로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아니 고픈 수준을 넘어 속이 쓰렸다. 3층 남자는 짧은 쪽지로 사람을 목마르고 배고프게 만들 수 있는 재능을 가진 게 틀림없다.


내 답장을 기다리지도 않고 3층 남자는 작은 에코백을 빨랫줄에 묶어 육포와 땅콩, 쌀, 라면 3봉지 정도를 담아 나에게 내려보냈다. 그 외에도 감기약과 두통약, 붕대 같은 가정에 필요한 상비약들도 들어 있었다.


나는 3층 남자에게 감사의 표시로 쪽지를 작성하며, 허겁지겁 생라면을 씹어먹었다. - 너무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 조심히 가세요 라는 표현이 거슬리기 시작했다. 살아 돌아오세요? 마치 죽으러 가는 걸 아는 것처럼 느껴질까? 가세요라는 표현은 다시 돌아오지 마세요. 처럼 느껴질까? 그렇다고 조심히 돌아오세요 라고 말하면 이상하지 않을까? 3층 남자는 무사히 도착해도 여기로 못 돌아 올것 같다고 했는데?


그냥 깊게 생각하지 않고 처음 작성한 - 너무 감사합니다. 조심히 가세요. - 쪽지를 에코백에 담아 남자에게 보냈다. 답장이 없었다.

3층 남자는 곧바로 떠날 거라고 생각했다. 물도 떨어졌고, 음식도 나에게 다 보냈다면, 고민 없이 서둘러 나가는게 그나마 자신의 체력이 온전하게 상태로 탈출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창문의 커튼을 살짝 열어서 한쪽 눈만으로 3층 남자가 밖으로 나가는 모습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10분 정도 지났을까? 3층 남자가 가방을 메고 한 손에 야구방망이를 든 상태로 집 밖을 나서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남자의 모습에 나까지 긴장이돼서 커튼을 쥐고 있던 손에 땀이 차기 시작했다.


남자는 빌라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가, 골목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남자를 발견한 팔 하나가 뜯겨있는 그것 하나가 남자를 향해 돌진했다. -퍽- 남자의 방망이에 그것은 머리를 맞고 바닥에 꼬구라졌다. 나도 모르게 주먹을 움켜쥐었다. 남자는 곧이어 쓰러진 그것들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고 달렸다. 골목 밖으로 사라져가는 남자의 모습을 보자 나도 모르게 희망이 떠올라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나 잠시 뒤 남자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들려오며 그의 모험이 실패했음을 알게 되었다. 나는 다시 커튼을 닫고 소파에 앉았다. 머리를 쥐어짜며 이제 이 건물에 나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뭔지 모를 외로움이 느껴졌다. 그러고 보니 3년을 같은 빌라에 살면서 무슨 직업을 가졌는지, 이름은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책상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놓여있던 페트병을 집어 훌쩍거리며 물을 벌컥 벌컥 마셨다. 오늘 너무 긴장했다. 목이 마를수 밖에 이제 물이 부족해서 1.5리터 5병만 있다는 사실에 나는 또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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