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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뽈삐래 Aug 04. 2022

02. 재스퍼 국립공원 여행기

#1 캐나다 꼬질이

 본격적으로 국립공원 여행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당장 필요한 건 음식과 조리 도구였다. 제일 먼저 한 일은 한인 마트 가기. 한식을 안 먹은 지 고작 5일째인데 눈앞에 한식이 아른거렸다. 들어서자마자 이것저것 신나게 장바구니에 담고 냄비까지 야무지게 사서 출발.


 도심을 빠져나가 재스퍼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길, 캐나다 운전 2일 차인 드라이버 루나 언니가 버벅거리며 운전을 했다.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데 초록불이 떴다. 직진만 가능한 신호인 줄 알고 계속해서 정차하니 클랙슨 소리가 뒤에서 울렸다. ‘아 좌회전도 함께 가는 거군요. 갑니다 가요.’ 우리를 이내 추월한 뒤차의 운전자는 창문 바깥으로 가운뎃손가락을 높이 드셨다. 캐나다 운전 매너는 세계에서 손꼽힌다면서요? 아닌가요? 차 뒤에 ‘초보운전’이라고 크게 붙여놨어야 했나.


 밴쿠버에서 재스퍼 국립공원까지는 8시간이 소요되는데 아직 운전에 익숙하지 않은 루나 언니를 배려해 그 중간인 ‘캠룹스 Kamloops’에서 하룻밤 지내기로 했다. 예약해 둔 캠핑장이나 숙소는 없었지만 현장에 직접 가서 결제를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캠핑을 위한 쇼핑으로 많은 시간을 소비한 탓인지 캠룹스에 해가 한참 지나고 나서야 도착을 했다. 우린 어제와 마찬가지로 주차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기로 했다. 노숙도 식후경이라며 주변에 유일하게 문을 연 맥도널드에서 늦은 저녁 식사를 하였다.


 매니저에게 맥도널드 주차장에서 하룻밤 보낼 수 있냐고 문의하니 24시간 운영되는 곳이 아니라 불가하니 옆에 위치한 24시간 주유소를 추천해주었다. 주유소에 가서 주유를 한 뒤 (그래도 최소한의 예의는 있었다) 주차장 구석에서 하루 묵어도 되냐고 물었다. 거절할까 조바심을 냈었는데 그러라며 조금도 개의치 않아했다. 주유소에 딸린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세수와 양치를 했다. 이틀 동안 샤워를 안 하니 몸이 찝찝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었다. 내일은 씻을 수 있겠지라는 희망을 가져본다.  


 이미 경험이 한번 있다고 다들 소리 없이 준비를 착착하고 추운 새벽을 대비하기 위해 옷을 주섬주섬 입는다. 고작 하루였을 뿐인데, 적응력이 어마 무시하다. 무인도에 떨어트려도 분명 살아남을 거다. 침낭 속에 몸을 쏙 넣고 누우니 찬바람이 전혀 들어오지 않아 어제와는 천지차이였다. 오늘 산 신상 침낭에 대해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며 숙박비 굳었다고 흐뭇하게 잠을 청했다.  

캐나다 재스퍼 국립공원_안개인줄 알았는데 산불이었네
캐나다 재스퍼 국립공원 가는 길

 다음 날, 캡룹스에서 재스퍼로 출발했다. 안개가 껴있었지만 가는 내내 펼쳐지는 초록 풍경과 맑은 공기에 감탄하고 감탄했다. 역시 캐나다지, 이런 게 국립공원이지. 그러나 이건 완벽한 착각이었다. 알고 보니 2018년 여름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의 대규모 산불로 인한 피해는 여전히 계속되었고, 세계 각지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캐나다 군인이 산불 진압을 위해 돌아올 정도로 국제적으로도 심각한 산불이었다. 그 여파로 안개가 아닌 연기로 인해 시야가 좋지 않았고 심지어 타는 냄새도 났는데 미세 먼지 속 한국에서 온 우리는 하늘이 맑다며 이것이 캐나다의 대자연이라고 노래를 했던 것이다. 머쓱.

캐나다 재스퍼 국립공원

 국립공원에서는 우리가 그리던 여행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했는데 찜해 놓은 캠핑장이 만실이었다. 결국 성수기를 위해 마련해 둔 ‘오버플로 캠프 그라운드 Overflow Campground’에서 묵게 되었다. 이곳은 변기 하나만 있을 뿐 그 외에 편의 시설이 전혀 없는 곳으로 역시나 씻을 수가 없었다. 옷이 여러 벌 있지 않아도 깨끗하게 세탁해서 입고 다니는 깔끔한 여행자가 되고 싶었는데. 캐나다 꼬질이 세 명은 다음날 온천을 가기로 결심하며 이틀 안 씻은 거나 삼일 안 씻은 거나 크게 다르지 않다며 정신 승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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